brunch

매거진 사진일기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JOFRAU Jul 17. 2021

야구는 동적인 스포츠 아닌가요?

part 1. 맑은 날씨 : 더운지도 몰랐던 그해 여름

(표지 사진 : Photo by. @JOFRAU)


1

야구는 동(動)적인 스포츠인 줄 알았다. 프로 농구 경기나 배구 경기를 보면 속공이 이런 거구나 싶을 만큼 빠른 공격 장면들에 정신을 못 차렸다. 그래서 나도 모르게 자꾸 경기를 찾아보게 되었다. 신기하고 멋있었기 때문이다. 어떻게 저렇게 공을 주고받는 거지? 흔히 말하는 공 하나에 경기장 안의 모든 사람들이 울고 웃고 하는 게 신기하지 않냐는 누군가의 그 말이 무슨 말인가 했는데 어느 정도 공감이 되었다. 


그에 반해 야구는 동적인 스포츠라고 생각했다. 경기시간도 길고, 심지어 경기시간이 정해진 것도 아니고, 이닝 당 1명도 아니고 3명이 아웃되어야 공수교대가 진행되고, 투수가 바뀌면 광고가 나오고, 점수도 적게 나고 농구처럼 한 몇십 점 혹은 백점 이상 나와야 재밌지 않은가...? 학생 때 나에게 야구는 그랬다. 그런 내가 아이러니하게도 매년 야구 시즌 때마다 야구를 보게 되었다. 아빠가 야구 광팬 이셨기 때문이다. 물론 아빠는 지금도 변함없으시다. 그 덕분에 나는 야구 룰도 잘 모르면서 한국 KBO 뿐만 아니라 미국 MLB, 일본 NPB도 봤다. 보다가 진짜 모르겠으면 아빠한테 물어보면서 그렇게 봤었다. 단, 6-7회부터. 야구 경기가 시작되면 나는 조용히 방으로 들어갔다. 


“야구 안 봐?”

“점수 나면 볼래요.”



2

성인이 되어서도 나에게 야구는 여전히 조금은 지루한 스포츠였다. 친구들은 주말에 야구장에 간다는데 나는 잘 다녀오라고 하며 그 귀한 티켓을 양보하고 그랬다. 야구 시즌에 집에 가면 아빠는 변함없이 야구를 보셨고, 나는 아빠랑 같이 조금 보다가 방으로 들어가곤 했다. 방에서 이것저것 하다가 거실로 나와서 야구를 보면 아직 3-4회가 진행 중이거나 1회에 한 팀이 고전했을 때는 2회인 경우도 종종 있었다. 


“엥? 아직 4회? 오늘 길어지겠어요.”

“그건 모르지.”


화장실에서 머리를 감고 있는데 아빠의 박수소리가 들렸다. 나는 궁금함을 참지 못하고 수건으로 대충 머리를 감싸고 나왔다.


“점수 났어요?”

“응. 아 오늘 재밌네.”


우리 팀이 역전을 했다. 



3

나는 어느새 아빠 옆에 앉아서 같이 야구를 봤다. 이제 9회, 우리 팀의 마지막 수비. 결과는 우리 팀의 승리였다. 경기가 끝나자 소파에 앉아 계시던 아빠는 갑자기 텔레비전 앞으로 가서 정확히 3번 점프를 하셨다. 

콩콩콩.


“아빠... 지금 점프 뛴 거예요? 좋아서?”

“응.”


처음 보는 아빠의 모습에 나는 너무 놀라서 또 너무 웃겨서 한참을 아빠랑 웃었다. 또 얼마나 크게 웃었는지 방에 계시던 할머니께서 나오셨다. 할머니께서는 거실 소파에 앉으시면서 뭐가 그렇게 재밌냐고 물으시며 나와 아빠를 번갈아 보셨다. 그날 퇴근이 좀 늦으셨던 엄마도 그때 마침 집에 도착하셨고, 정신없이 웃고 있는 나에게 이겼냐고 그래서 이렇게 웃는 거냐고 물으셨다. 나는 웃느라 바로 대답을 할 수 없었다. 이겨서, 그래서 좋아서 그런 거라고 겨우 말했다. 한참을 그렇게 웃고 나서 아빠가 말씀하셨다.


“아 배고프다. 아이스크림?”


그 한 마디에 우리 가족은 다 같이 웃었다.



4

그날 이후였을 것이다. 내가 야구에 푹 빠지게 된 게. 나는 아빠, 엄마랑 야구를 챙겨보는 건 기본이고 재방송도 보고 또 봤다. 야구가 조금은 지루한 스포츠라고 생각했던 나의 생각이 짧았음을 느끼며 특히 좋아하는 플레이를 계속 돌려봤다. 공격도 공격인데 야구에서의 수비는 정말 멋지다고 생각했다. 컴퓨터 모니터를 보며 저 작은 공을, 게다가 또 빠른, 저 작은 공을 어떻게 잡아서 어떻게 멀리까지 정확히 던지는 건지 감탄했다. 


이렇게 내가 야구경기를 보는 것을 좋아하기 시작하면서부터 우리 집엔 규칙이 생겼다. 

야구 경기를 볼 때 절대 자리를 비우지 말 것


“와! 홈런! 빨리 나와 지금 화장실에 있을 때가 아냐. 지금 역전 역전!”

“그러게 빨리 나와봐! 오오오! 짝짝짝!”

“누가요 누가! 누가 홈런 쳤어요? 역전?”

“뻥이지. 지고 있어.”

“아니 엄만 아빠가 박수 치라 그래서 같이 쳤지.”


가끔 부모님은 이 재미에 야구를 보시는 게 아닌가 싶을 때가 있다. 나도 물론 아빠나 엄마가 자리를 잠깐 비우시면 무조건 소리부터 질렀지만.


야구는 나에게 동(童)적인 스포츠다.

매거진의 이전글 쉼, 이 필요해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