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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여행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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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JOFRAU Jul 14. 2021

여행이 끝나갈 때 어떤 기분이 드시나요?

여행일기(이탈리아)

(표지 사진 : Piazza di Spagna(스페인 광장), Rome, Italy / Photo by. JOFRAU)


1

이탈리아 여행 마지막 날 공항으로 가는 길에 나는 끝까지 조심하자 라는 생각을 했다. 메트로를 기다리는 동안 플랫폼에서 자꾸 눈이 마주쳤던 여자가 있었는데 조금 묘하게 느껴졌기 때문이었다. 곧 메트로가 도착했고 타려는데 갑자기 어디에 선가 서너 명이 달려들어 나를 감쌌다. 옴짝달싹 못하게 만들었다. 그리고 문이 닫히는 순간 다 같이 사라졌다. 불현듯 안 좋은 생각이 들어 가방을 확인해보니 지갑이 없었다. 여행하기 전 주의사항을 그렇게 읽고 또 읽었던 소매치기를 당한 것이다. 정말 순식간에 벌어진 일이었다. 그 안 좋은 일이 일어난 것도, 그로 인해 나의 기분이 변한 것도 순식간이었다. 


가까스로 정신을 차리고 한국에 있는 가족한테 연락을 해서 카드사에 연락을 취해달라고 부탁했다. 시차가 달라서 내가 직접 카드사에 연락하기에 어려움이 있었기 때문이다. 손과 다리가 너무 떨렸지만 즐겁게 여행하고 있을 내 연락을 기다렸던 가족에게 이 일을 설명해야 했기에 침착하려고 노력했다. 다행히 여권은 있다고, 지갑에 돈도 얼마 있지도 않았다고 괜찮다고 하며 놀란 가족을 달랬다. 생각해보면 그 말이 나 스스로에게 한 말 일지도 모르겠다. 그래도 감사하게도 조치는 빨리 이루어졌다. 그리고 나니 더 이상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없었다. 이미 사라져 버린 그 사람들을 쫓아 돌아갈 수도 없었고, 정해진 시간에 출국을 해야 했던 여행객이었기에 애써 화를 삭이며 공항으로 향했다. 


공항으로 가는 길이 너무 재미없었다. 설레고 부푼 마음을 품고 도착했을 때와 다르게, 30분 전 숙소에서 나와 집으로 돌아가는 길이 아쉬웠던 그 마음과 다르게 돌아가는 길은 너무 허탈했다.



2

공항버스를 타고 가는데 무릎에 놓인 가방을 보고 인상이 찌푸려졌다. 고개를 창밖으로 휙 돌리고 크게 한숨을 쉬었다. 창문에 비친 내 얼굴에 인상이 깊게 찌푸려진 것을 보고 시선을 둘 다른 곳을 찾았다. 


울퉁불퉁한 길이 유럽스럽다며 한 걸음 한 걸음 걸을 때마다 바닥을 느끼고 사진을 찍었던 어제의 내가 우습게 느껴졌다. 그렇게 감성적이었던 길이 불편한 길로 바뀌었다. 비가 와서 운치가 있다고 느꼈던 날씨가 그냥 비가 오는 습한 날씨로 바뀌었다. 시선은 다시 가방으로 향했고 낯선 사람들의 손이 들어왔다 나갔던 장면을 떠올렸다. 내가 직접 눈으로 본 건 아니지만 나도 모르게 그 장면들이 자꾸 떠올려졌다.


‘이 가방을 다시 멜 수 있을까?’



3

공항에 도착해서 수속을 마치고 기다리는데 손에 쥐고 있던 여권이 눈에 들어왔다. 


‘여권마저 없었어 봐, 지금 비행기 못 탔지.’


헛웃음이 나왔다. 이것도 경험이다 싶었다. 생각하면 손이 떨리고 기분이 정말 안 좋았지만 이만하길 다행이다 라는 생각도 들었다. 그리고 핸드폰 사진첩을 뒤적이며 맘에 드는 사진을 몇 장 골라 하트*를 눌렀다. 사진을 보다 보니 곧 탑승 시간이 되었고 비행기에 타자 마자 힘이 쫙 빠졌다. 

*하트 : 아이폰 사진첩 하트, My favourite


‘여행 마지막 날이라 다행이다. 오늘이 여행 첫째 날이었어봐…’



4

나는 여행을 계획할 때, 또 여행을 하는 중에 좋은 것만 생각했다. 어쩌면 당연한 일이다. 여행을 떠나는데 좋은 장소, 맛있는 음식, 재밌는 공연 혹은 관람을 계획하지 예상치 못하는 안 좋은 일들에 대해서는 크게 생각하지 않았다. 예상치 못하는 일인데 어떻게 생각할 수 있을까. 생각해 보니 그것 또한 말이 안 된다.


하지만 이탈리아 여행을 한 뒤로 조금 바뀌었다. 여행이 생각보다 좋은 일들 로만 채워지지 않을 수도 있다는 거. 여행 첫날부터 마지막 날까지 재밌고 행복하기만 하면 더할 나위 없이 완벽한 여행이 되겠지만 그렇지 않을 수도 있다는 생각도 같이 하게 되었다. 그리고 지금까지의 여행은 모두 더할 나위 없이 완벽한 여행이었다고 깨달을 수 있었다. 그동안 여행을 하며 아쉽고 불편한 일들도 많았지만 돌이켜 보면 재미있던 일들이 더 많았었고, 건강하게 또 무사하게 집에 잘 돌아갈 수 있었고 그 모든 게 새삼 감사한 일로 느껴졌다. 


비행기에 탑승해서 돌아가는 길에 여행은 오늘 같은 일이 일어날 수도 있는 일이라고 매번 재밌지만은 않고 내가 생각한 것만큼 좋지 않을 수 있다고 생각했다. 만약 불쾌한 일을 마주하게 된다면 바로 잊어버릴 수는 없으니 그때만 기분 나빠하고 여행의 모든 시간들을 망치지 말자고 생각했다.


이탈리아 여행을 떠올렸을 때 오늘 기억만 가지고 있다면 내가 하트를 눌렀던 사진들은 어디로 가겠어. 

수 없이 찍은 사진과 영상들은 그럼 누구의 추억이 되겠어.


Fontana di Trevi(트레비 분수), Rome, Italy / Video by. JOFRAU



2018.03. 이탈리아, 로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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