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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JOFRAU Jul 06. 2021

미끄럼틀 타 본 사람

여행일기(스위스)

(표지 사진 : Luzernersee, Schweiz / Photo by. JOFRAU)


1

남편은 그게 불만이었다. 왜 요즘 날씨는 평일엔 맑다가 주말엔 천둥번개가 치는가. 나도 그게 불만인데 주말에 맘 편히 쉴 수 있는 남편은 얼마나 실망이 클까. 작년 스위스 날씨가 이랬었나 싶을 만큼 올해 여름은 정말 변화무쌍한 날씨 때문에 빨래를 하는 것조차 곤란할 때가 너무 많다. 그리고 정말이지 평일엔 맑다가 주말엔 천둥 번개, 폭우가 친다. 그래서 지금 취리히 인기 차트 1위*가  Sommergewitter**인 걸까.

*참고 : City Charts Top 25 Zürich, Apple Music

**Sommergewitter : 여름의 나쁜 날씨 (여름 악천후, 여름 뇌우) / 독일 래퍼 Pashanim의 노래 제목



2

“오늘이다!” 

주말 아침, 느지막이 일어난 남편이 발콘에 나가더니 외쳤다. 나도 얼른 일어나서 나가보니 해가 반짝 떠 있었다. 주말인데 날씨가 맑았다. 예전부터 등산 리스트에 넣어두었던 필라투스 등반을 할 수 있는 날이 드디어 온 것이다. 우리는 서로 고개를 끄덕이고 각자의 역할분담을 수행했다. 남편은 한번 더 루트 확인하기, 나는 주전부리 짐 싸기. 시간상 정상을 등반하기에는 조금 무리일 듯싶었다. 우리는 아쉽지만 정상은 다음 기회에 가기로 하고 플랜 B 였던 Fräkmüntegg에 가기로 결정했다. 

“가자”



3

Fräkmüntegg 까지는 약 3시간 정도 소요되는데 뷰 맛집으로 소문이 나있는 곳이고, 무엇보다 Toboggan Run(: Fräkigaudi Sommer)이라는 스위스에서 가장 긴 '미끄럼틀'을 탈 수 있는 곳으로 유명하다. 알아볼 때까지만 해도 내가 정말 미끄럼틀을 타게 될 줄은 몰랐지만.


Fräkmüntegg까지 가는 길은 생각보다 힘들었다. 난이도 중급에 해당하는 코스였는데 예전에 한 단계 낮은 난이도의 코스를 올라갔을 때랑 꽤 달랐다. 도착할 때까지 계속 오르막 길이었다. 평지도 거의 없었다. 초반에 만난 드넓은 초원을 빼고는 계속 오르막 길이었다. 숨도 차고 땀도 나고 힘들고 물도 계속 찾고. 그래도 고개를 들면 보이는 푸르른 루체른 호수와 깨끗한 스위스 자연경관을 보면 절로 힘이 났다. 미소가 지어졌다. 힘든데 힘들다는 말보다 예쁘다 라는 말이 먼저 튀어나왔다. 이렇게 예쁜 모습을 보려고 그동안 계속 미뤄졌던 건가 싶은 생각이 들었다. 


조금만 더 가면 쉼터가 보인다! / Photo by: @JOFRAU


목적지에 도착하니 사람들이 엄청 많았다. 토보건도 있고, 자연 그대로의 모습 안에서 여러 가지 체험을 할 수 있는 액티비티가 많았기 때문에 아이들을 포함한 가족단위의 사람들이 많이 보였다. 모두들 행복한 모습이었다. 우리는 잠시 숨을 고르고 곧바로 토보건을 타러 갔다. 나는 이런 액티비티에 익숙하지 않은 겁쟁이라 우리 진짜 타는 거냐고 남편에게 되물어 보면서도 나도 모르게 락커에 짐을 넣고, 대기줄에 섰다. 

‘나 왜 이러지. 왜 줄 섰지?’ 

기분이 어지간히 들떴던 게 분명하다.



4

토보건은 썰매에 앉아 스틱으로 가속과 브레이크를 조절하며 내려가는 것이었다. 담당 직원은 밀면 가속이고 당기면 브레이크라는 중요한 설명을 간단하게 마치고 나를 보냈다. 생각해보니 설명이 간단할 수밖에 없었다. 내 앞에 초등학생들로 보이는 친구들도 아무렇지 않게 썰매에 앉아 그냥 슝 내려갔으니까. 나는 긴장한 채로 힘껏 스틱을 밀며 출발했다. 그런데 뒤에서 직원분이 “푸시, 푸시, 푸시!”하고 외치는 소리가 들렸다. 

‘네? 더 밀어야 하나요? 지금 충분히 빠른데요?!’


“꺄악” 

나도 모르게 소리를 질렀다. 그렇게 스릴을 즐기며 신나게 타고 내려가는데 어느샌가 남편이 뒤에 바짝 따라 내려와서 “푸시, 푸시, 푸시!”하고 외쳤다.

“오빠 천천히 와악!”

“ㅋㅋㅋㅋ 너무 느려 더 밀어!”

“?!”


스릴 넘치던 '미끄럼틀 타기'가 끝나고 도착지에 와서 남편이 웃으며 말했다.

“위에 직원이 나 보고 내려가서 도와주라고 했어.”

“?!”


나는 엄청 빠르지 않았냐고 반박했지만 도착지에 있던 직원도 나에게 되게 천천히 내려 오더라 하고 안타까워(?) 했다. 나는 남편에게 한번 더 물었다.

“정말? 정말 나 안 빨랐어? 나 완전 스릴 넘쳤는데!”

“재밌게 탔음 됐어.”


Toboggan Run(: Fräkigaudi Sommer) / Photo by: @JOFRAU



5

만약 토보건을 타는 사람이 있다면, 물어본다면 이렇게 추천하고 싶다. 

나처럼 겁이 많다거나 혹은 겁이 ‘조금’ 많다면 보호자는 꼭 자신보다 뒤에서 타고 올 것. 나의 경우에도 뒤에 남편이 있어서 다행이었지 그렇지 않았다면 다른 사람들에게 훨씬 더 민폐였을 테고, 혹시 모를 위험에 노출될 수 있었을 것이다. 물론 출발지에서 직원이 확인하면서 안전하게 거리를 두고 한 사람씩 내려 보내지만. 

그리고 내려갈 땐 풍경보다는 스릴에 집중할 것. 나처럼 소심하게 푸시하지 말고, 스틱을 힘껏 밀면서 속도를 즐기길. 타고 내려간 뒤 다시 썰매에 앉아 처음 출발지로 자동으로 끌려 올라간다. 그때 충분히 풍경을 감상할 수 있으니 내려갈 때는 그저 속도에 익숙해지면서 스릴을 맘껏 즐기길. 

마지막으로 올라올 때는 눈에 보이는 것을 다른 것 보다도 눈으로 담을 것. 자연 속에 푹 파묻힌 느낌을 가질 수 있을 것이다. 자연이 주는 선물을 꼭 눈으로 받길. 


혹시 누군가 내 이야기를 듣고 '미끄럼틀' 또 탈 거 냐고 물어본다면, 나는 무조건 네! 



2021.06. Fräkmüntegg 등반, 스위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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