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윙~"
조용하기만 하던 전화기가 부르르 떨었다.
화면엔 "a"라는 이름이 떠있다.
같이 공부하며 친해진 동생이다. 분명한 가치관으로 똑 부러지게 살아가는 그런 동생. 세상 돌아가는 것에 관심도 많지만 그렇다고 자신이 가는 길에서 많이 벗어나지 않는 스타일의 현명한 친구.
이런 친구다 보니 함께 대화를 나누면 배우는 것도 많고 마음도 편안해진다. 여유와 유익함을 함께 누릴 수 있으니 그 대화가 얼마나 재밌겠는가.
불편한 사람의 전화라면 옆 버튼을 눌러 무음 모드로 돌려버렸을지도 모르지만, 이 친구의 전화는 끊어질까 무섭게 받아 들었다.
"오~ a~a~, 오랜만이야 잘 지내?"
"저야 잘 지내지요, 조각스도 잘 지내요?
"나야 똑같지"
"요즘은 무슨 책 읽어요?"
"플라톤도 읽고, 아리스토텔레스도 읽고, 칼 포퍼 책에 관심이 생기는 중이야"
"형도 진짜 신기한 책 많이 읽네요. 이참에 책에 관해 설명하거나 감상을 쓰는 걸 업로드해 봐요. 재밌을 것 같은데?"
"누가 그런 걸 관심을 가지겠어, 그리고 내가 제대로 이해하는지도 모르겠고, 내가 책을 읽는 건지, 책이 날 읽는 건지,,,"
"그래요? 그래도 혹시 심심하거나 시간 나면 해봐요. 누가 보든 말든 해보는 거지 혹시 알아요? 어디 예쁜 분이 형을 좋아하게 될지?"
이게 벌써 몇 년 전 대화일까? 곰곰이 생각을 해봐야 할 만큼의 시간, 거의 10년도 전에 한 대화라는 걸 깨닫는다.
그리고 요즘에서야 뭔가를 끄적이기 시작했다.
게으름 때문에 미룬 건가? 아니다. 정말 아는 게 없었나? 지금도 똑같이 모르는 것이 더 많다. 그러면 무엇이 10년 가까이 걸리게 한 걸까?
10년에 해당하는 이유가 한 줄로 요약된다면 그것도 신기한 일일 것이다.
그러나 하나는 분명히 알 것 같다.
'내가 말한 것을 지킬 수 있을까? 말이 너무 혼자만 앞서 가버리면 어떻게 하지? 주변 사람들 보기에 부끄럽고 민망할 것 같은데'와 같은 생각을 번번이 했던 걸로 봐서, 나는 스스로 내뱉은 말에 책임을 져야 한다는 부담과 압박을 꽤나 잘 받는 편이었던 것이다.
'내가 손에 물 묻히고 살지 않게 해 줄게'라는 허풍을 잘 못 치는 그런 류의 사람 말이다. 이런 말을 함과 동시에 머릿속에서 '내가 없을 땐 어쩔 수 없이 물을 묻히게 되겠지', '양치, 세수는 어차피 스스로 하는 거잖아?', '손에 물을 묻히지 않게 하겠다는 건' 너무 성의 없는 거짓말이 아닐까? 와 같은 말이 꼬리에 꼬리를 물고 떠오른다.
그러나 어느덧 나도 나이가 먹었다.
이런저런 굽이굽이에 부딪히며 말과 생각처럼 다 되는 게 아니라는 걸 체득하는 중이다(아직도 말과 생각처럼 되게 하겠다는 고집을 모두 버리진 못했지만).
그 덕분에 스스로에게 조금은 너그러워지고 관대해졌달까.
마음대로 안되기에, 마음대로 해도 되는 자유를 누릴 수 있다는 아이러니를 느끼는 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