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2. 1.7.
1. 6. 저녁 점호시간이 끝난 뒤, 우리 분대원들 모두 불 꺼진 주방에 등장하는 바퀴벌레들 마냥 일사불란하게 움직였다. 훈련병 a의 생일을 축하하기 위해서였다.
훈련병 b가 센스 있게 약밥 케이크를 꺼냈다. 모두가 작은 소리로 '오~'하고 엄지 척을 했다.
그런데 아뿔싸, 강원도의 겨울을 생각을 못했다. 약밥이 얼어서 초가 들어가지 않았다.
이때 훈련병 c가 관물대에서 주섬수섬 오예스를 꺼낸다. 모두가 '와~~~'하고 작지만 큰소리를 냈다. 공기반 소리반 같은 방법으로 말이다(JYP는 옳았다).
어떻게 오예스를 가지고 있는 거지 싶었는데, 지난번에 종교행사에서 받은 오예스를 잘 숨겨두었던 것이라고 했다. (이런 말도 안 되는 일이 가능했던 건, 곧 훈련소 퇴소를 앞두고 있었기에 간부님들과 조교님들도 우리를 봐주고 있었기 때문이다. 원래는 종교행사를 다녀올 때 옷을 탈탈 털어서 이런 일이 없게 한다. 우리나라 조교들 얄짤 없다. 내가 조교였기에 보장한다.)
그렇게 전우애가 넘치는 생일파티가 시작되었다.
작은 소리로 생일축하노래를 기어코 불렀다. 불침번을 서는 친구는 웃겨서 죽을 지경이었다. 그러던 중 가장 정신 나간 녀석인 훈련병 d가 폭죽을 꺼내 들고 쏘며 "적포탄 낙하!"라고 하는 게 아닌가?
모든 훈련병이 "적포탄낙하"라고 복명복창하며 소산 및 은엄폐를 하여 침대밑으로 기어들어갔다. 이걸 보고 정말 우리 모두 군인이 되었구나 싶었다. 얼마나 웃기던지, 정말 군대에서만 느낄 수 있는 happy birthday였다.
그리고 묵묵하던 훈련병 e가 건넨 행군에서 아껴온 건빵 선물, 잘리지 않는 약밥을 꺼내 들고 다시 한번 큰소리로 "사람 불러야 돼(그 당시 개그콘서트에서 유행하던 유행어다)"라고 외치는 훈련병 d. 억지로 자른 약밥을 그냥 통째로 홀라당 먹어버린 훈련병 f.
곧 퇴소에다가 생일인 훈련병까지 있으니 봐주려고 했던 조교님도 폭죽 소리에, 우리의 숨길 수 없는 웃음소리까지 무시할 수는 없었다. 결국 우리 분대 전원은 엎드려뻗쳐를 할 수밖에 없었고, 그 와중에 미친놈처럼 끊임없이 드립을 치는 훈련병 d 때문에 엎드린 채로 웃다가 몇몇 훈련병들이 픽픽 쓰러졌다. 그랬으니 당연히 또 걸려서 팔 굽혀 펴기로 얼차려를 받을 수밖에. 이렇게 하루가 끝이 났다.
나중에 알고 보니, 폭죽은 조교님이 알아서 해보라며 준거라고 했다. 그런데 정말 이 모양으로 난리 칠 줄은 몰랐다고 했다. 역시 훈련병 d는 대단했다.
이 문장은 취침등 밑에서 작성한 것인지, 글자도 이상했고, 줄도 제대로 맞춰져 있지 않았다. 그리고 생일자인 훈련병 a이 이름이 없는데, 아무리 생각해 봐도 며칠이 지났지만 이건 내 생일인듯하다. 내 생일이 아니었으면 훈련병 c가 오예스를 꺼낼 일도 없었을 테고, 조교와 간부님도 이만큼 우릴 봐줄 일이 없었을 것이다. 당시 내가 최우수 훈련병으로 선발이 되기도 했고, 소대장 훈련병으로 고생을 좀 했다. 훈련병 c와는 지금도 연락하는 사이다.
그리고 몇 장 뒤를 넘기다가 '너무 잊을 수 없는 생일을 보냈다'라는 문장을 찾았다. 이 생일은 내 생일이구나.
더 신기한 건 글을 쓰는 동안 우리가 놀던 모습은 새록새록 기억이 난다는 것이다. 그런데 왜 내 생일인 건 기억이 나지 않는 걸까? 아마도 생일을 별로 챙기지 않고 지내왔던 터라 내 생일일 거라고 생각도 안 하는 게 기본 값인 것 같다.
다시 생각해 봐도 정말 값진 생일 기억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