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을 읽을 때면,
마음에 드는 문장, 중요해 보이는 내용에, 때론 자를 대고 연필로, 때론 그냥 검은 볼펜으로 좍~, 가끔은 형광팬으로 알록달록하게 밑줄을 긋습니다. 다음에 읽겠다고 필사를 하기도 하고, 주변 여백에 빼곡히 자신의 생각을 적어보기도 하지요.
비록 다시 보지 않더라도, 그때의 주의 깊은 만남은 생각과 마음속 어딘가에 영향을 미치게 됩니다.
일상을 읽을 때는,
오감을 사용합니다. 때론 육감을 사용하기도 하지요. 모든 것을 보고 느끼지만, 그렇다고 모든 것을 자세히 보지는 않지요. 내 주위를 끄는 것을 보며 밑줄을 긋고, 내가 좋아하는 것엔 형관팬으로 줄도 치고, 행복했던 경험은 곱씹으며 메모도 남깁니다. 물론 마음에 들지 않은 부분은 눈살을 찌푸리고 외면을 하기도 하고요.
이때의 경험은 삶의 한구석에 흔적을 남기게 됩니다. 자신은 모르더라도.
이런 모습이 책 읽기와 너무 닮았습니다.
이처럼 일상을 살아가는 것이 책 읽기와 같은 것이라면, 너와 나 사이에 아주 많은 다름이 있을 것 같습니다.
같은 책을 봐도 그 책의 밑줄은 색깔부터 모양까지 다르기 마련인데, 서로 다른 책을 살아가고 있으니 말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대화라는 걸 하지요. 이따금 침묵이 편안한 사람을 만나면 그토록 신기합니다.
마음을 열어 서로의 밑줄을 보여주며 '너도 여기가 마음에 들었구나?'라고 반가워하기도, '넌 여기가 왜 좋았어?'라며 추가적인 설명을 부탁하기도 합니다. 정말 다른 책을 읽고 있다는 것에 놀라워하기도, 의외로 너무 닮을 삶을 읽고 있어서 또 반가워하기도 합니다.
그런데 이렇게 나누다 보면, 표현의 빈곤을 경험합니다.
도저히 이걸 어떻게 표현해야 하는지 모르는 그 느낌 말입니다. 내가 먹은 맛있는 미슐렝 음식을 "그거 참 맛있어, 내가 좋아하는 맛이야"라는 함축적인 문장 그 이상으로 말하지 못하는 것 같은 경험 말입니다. 언어의 한계라고 인류의 유한함을 탓해보고 싶지만, 아직은 나의 한계인 것을 잘 알지요.
내 삶을 더 표현하기 위해, 다른 사람의 표현을 빌리기 위해, 책을 읽고, 다른 사람들의 이야기도 들어봅니다. 이 과정에서 다른 사람의 밑줄도 구경하게 됩니다. 내가 긋는 밑줄만이 능사가 아니었다는 걸 또 알게 됩니다. 이땐 불현듯 여태 살아온 삶이 잘못된 건 아닌가 하는 걱정도 함께 하기도 하고요.
그렇다고 어쩌겠어요. 지금부터 부지런히 새로운 방식으로 읽어나가는 수밖에요. 점점 더 풍성해지는 삶을 부족한 언어에 담기 위해 노력하면서 말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