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각의 결 바꾸기, 자기연민보다 나대로 사는 법.
20대에 만났던 남자친구가 있었다. 그는 집이 꽤 잘 살았던 편이다.
건물도 있었고, 집에는 외제차가 몇 대씩 있었다.
어머니는 좋은 대학교를 나왔지만, 일평생 일하신 적이 없이 문화센터를 다니셨고,
네일아트를 받으며 고고하게 사셨다.
그리고 그 네일아트는 오랫동안 벗겨지지 않았다. 손에 물이 닿지 않았기 때문이다.
결혼식 때 종종, 그런 이야기를 한다.
"내가 손에 물 한 방울 안 묻히게 해 줄게."
그 어머니께서는 정말 그렇게 사셨던 것이다.
집에는 일을 도와주시는 이모님이 밥부터 설거지까지 다 해주셨기 때문이다.
그 친구의 어머니께서는 평생 가난하게 살아온 나에게는 없었던 뭔가 다른 우아함이 있었다.
나는 20대 아가씨이지만 아름다움이 느껴지기보다는 억척스러움이 더 강하게 느껴졌던 것 같다.
안목 역시 남달라서, 그가 사는 집에 놀러갔을 때는 화장실부터 거실에 있는 쇼파나 조명, 인테리어 하나하나까지. 참 이런게 럭셔리인가 싶을 정도였다. 그런 집에서 어렸을 때부터 자라왔으니, 그는 가난에 대한 이해도는 다소 부족해 보였다.
왜냐하면 내가 어떤 아르바이트를 열심히 할 때마다 그는 불쌍하다고 했다.
그는 미국에서 유학을 했는데, 영어에는 poor이라는 단어가 있다.
poor 규림이~는 약간 가엾은 규림이~
이런 느낌이었다.
그렇다보니까 한국어로도 불쌍하다라는 말을 많이 하는 것 같았다. 아르바이트를 하고 있으면, 멀리 미국에서 그가 skype로 영상통화를 걸어왔다.
"뭐해?"라고 묻는데, 순간 대답하고 싶지 않기도 했다.
왜냐하면 그 당시 20대 초반의 나는 항상 아르바이트를 하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또 불쌍한 규림이라고 할텐데.... 말의 힘이 참 강력하다. 그는 특별히 나에게 상처를 주기 위해 말한 것은 아니었지만, 나는 내가 불쌍하다고 믿게 되었다.
그를 만나기 전까지는 내가 조금 힘들게 살았긴 했지라고 생각만 했는데,
그가 불쌍하다고 하니까 정말 불쌍하게 느껴지는 것이었다;
그럴 수 밖에 없는 것이, 그와 나에게는 큰 차이가 있었는데
그에게는 부자 아빠가 있었다. 그는 소위 말하는 금수저라고 느껴졌다.
그가 "아빠, 나 이 골프채 좀 사줘"
이러면 아버지께서 "무슨 골프채인데?" 라고 하며, 인터넷을 바로 검색해보셨다.
약 300만원 정도였다.
그의 아버지께서는 망설임 없이, "그래, 잘 쳐라" 라고 하며 쿨하게 사주셨다.
오랜만에 나는 아버지의 부재에 대해 강하게 인식할 수 있었다.
하지만 세상의 모든 아빠가 이렇게 쿨내나게 뭔가 사주는 것은 참 쉽지 않을 것이다.
어린 시절부터 아빠 없이, 세상의 어떤 든든한 보호막 없이 풍파들을 정면으로 부닥쳤다.
어쩌다보니, 공부도 열심히 했는데 이어나갈 돈이 없었다. 당시 미국으로 유학을 갈 때, 미국에서 내 통장을 확인하는 일이 있었다. 교환학생을 가는 것이었는데, 통장에 3천만원 정도는 있어야 한다나?
드라마의 대사가 생각났다.
"누구나 상처 하나쯤은 있는 거 아니예요?" 이 대사가, "누구나 삼천 쯤은 있는 거 아니예요?"라고 들리는 거였는데 마치 내 상황 같았다.
공부를 하려고 하는 건데, 삼천이 있어야 하다니. 당시 나는 수중에 삼천이 없었고, 우리 집에 모든 돈을 영끌해도. 영혼까지 끌어모아도. 삼천이 안 되었다. 누구에게 돈을 잠깐 빌려야하나라고 망설였었다.
나의 표정에서 근심과 걱정이 느껴졌는 지, 그는 내게 무슨 일 있는 지 물어보았다.
"삼천이 있어야된대... 공부를 하려면... 휴... 삼천이 어느 집 개이름도 아니고 내가 삼천을 당장 어떻게 마련하지? 잠깐 제2금융권에 가서라도 빌렸다가 돌려줄까? ㅠ"
라고 하니, 그는 그 이야기를 아버지께 말씀드렸다.
그의 아버지는 나를 데리고 은행에 갔다. 기업은행 VIP실에 가서 은행 지점장을 만나셨다. 그리고 본인의 계좌에서 돈을 꺼내, 내 계좌에 넣어주셨다. 잠시 3천을 빌려주시기로 한 것이다.
나는 그 날 은행 VIP실에도 처음 가봤고, 은행장이 갈 때까지 배웅하는 것도 처음 보는 광경의 연속이었다.
(물론 그 돈은 잔액이 찍힌 그 통장을 복사한 후, 바로 다음 날 갚았다.)
그런 모습들을 보니, 매일매일 마트에서, 더운 날 덥고 추운 날 추운 야외에서 아르바이트를 하는 내 모습이
그에게는 정말 불쌍해보였던 것이었다. 이해가 갔다.
나는 그에게 poor 규림이었던 것이다. 그에게는 세상이 나보다 쉬웠겠지? 그를 만난 후, 그와 나를 비교하게 되었다. 비교를 하니, 자기연민이 더 심해졌었다.
장거리 연애로 인해 결국 각자의 길을 걸어야했지만, 그 이후로 나에게 각인된 말 하나는 "불쌍해"였다. 그 말이 각인된 이후로 나는 때때로 자주 나약해졌었던 것 같다.
그리고 그것을 이별 후, 약 7년만인 31살이 되어서야 알게 되었다.
내가 자주 나약해졌었던 이유. 나는 나를 불쌍하게 생각한 것이다.
예전 같았으면 버텼을 일. 강철처럼 끄덕없었을 일들도.
"아 불쌍해... 나 진짜 불쌍하다..." 라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그러다보니, 더 유지할 힘들이 사라져갔다.
이제야 그것들을 깨달았으니, 나는 이제 말을 좀 바꿔보기로 했다.
최근에 우리 엄마는 어떤 큰 일들을 해결하셨다. 그 사람은 우리 집의 등본같은 서류를 보고, 우리 집에 남자가 없다는 것을 귀신같이 파악했을 것이다.
나는 마음이 안쓰럽기도 했다. 그런데 나는 안쓰럽다는 말 대신에 이렇게 말했다.
"우와 엄마 정말 대단해, 엄마는 정말 잔다르크같아. 우리 엄마는 정다르크다!
엄마 정말 용기있어, 멋지다. 엄마가 큰 문제를 해결했어!
엄마 덕분에 그 사람은 더 이상 약자를 괴롭히지 않을거야. 엄마 말고도 다른 사람들에게도
그렇게 강약약강 이렇게 이제 못 할거야. 대단하다."
내가 이렇게 이야기를 하자, 엄마는 상황의 힘듬 보다는 자신의 용기와 똑똑함, 문제를 해결한 당당한 기지에 집중했다.
나는 이제 불쌍하다는 말을 더 이상 쓰고 싶지 않다. 자기 연민에서 벗어나리라.
추운 곳에서 멀리 지방까지 가서 아르바이트나 일을 했던 것들은 불쌍한 것이 아니다.
아직도 나는 일의 무게가 결코 가볍지 않은 일들을 한다. 바로 취업, 진로 컨설팅이다.
취업준비생들의 인생의 무게가 깊게 실린 그 일들을 해나가면서, 그들의 힘듬을 공감할 때 나는 그 마음이 너무나 이해되면서 같이 힘들고 종종 스트레스를 받기도 했다.
하지만 이제 나는 그것을 불쌍하다고 여기지 않을 것이다. 스트레스라고도 표현하지 않을 것이다. 나는 그들의 힘듬에 진심으로 공감해준 선생님인 것이다. 그리고 일의 무게에 힘들게 느껴질 때가 있겠지만, 불쌍하지 않다.
스스로 그 중요한 일들을 해낸 것이다.
나는 최근 밤 10시에, 내 유튜브 채널에서 라이브를 한다. 한 구독자님이 라이브에서 댓글을 달았다.
"돈 갚아야해서 우울우울해요"라고... 나는 말했다. "00님~ 돈 갚는게 왜 우울하죠? 잘 썼잖아요~
땡큐 고마워 잘 썼어ㅎ 하면서 돌려주면 되어요~"
"요즘같은 시대에 돈 빌려줄 사람이 있었다는 것도 참 대단하네요.
잘~ 썼으니 잘 갚으면 되지 뭐...! 편하게 생각해요~"
라고 하니 구독자님이 그렇게 생각 못 해봤는데,
덕분에 마음이 편해졌다고 하면서 고맙다고 했다.
내가 자기연민에 빠져있다는 것을 최근에 알게 된 계기가 있다. 최근 나는 너무나 열심히 한 운동으로 무릎이 아팠고, 열심히 한 일로 손가락이 아팠다.
그래서 정형외과를 갔다. 그런데 아니나 다를까? 엑스레이를 찍어보니
목디스크라고 한다. 아니 31살의 내가 목디스크라니 의사양반 그게 무슨 소리요...
내가... 내가...! 목디스크라니....!!
그 때부터 나는 표정관리가 안 되면서, 거의 울먹거리기 시작했다.
갑자기 내가 세상 불쌍해졌다. 내가 목디스크에 걸린 것은 그의 아버지처럼 성실한 아버지가 없어서야.
그렇다보니까 내가 쌔빠지게 열심히 일하다가, 모니터 많이 보고 하다가 결국 일자목 거북목이 된거야.
아.... 난 불쌍해.... 아빠도 없어서 일도 많이 했는데
결국 목디스크가 생기다니... 정말 가엾다. poor 규림이ㅠ
불쌍해.... 이렇게 된 것이다. 그래서 내 스스로 너무 힘든 시간을 겪고 있었다.
나는 의사선생님에게 말했다.
"선생님 ㅠ 제가 아무래도 일을 너무 많이 해서 목디스크에 걸린 것 같아요 ㅠ
제가 너무 불쌍하네요 ㅠ"
의사선생님은
"뭐가 불쌍해요? 자기가 자세 안 좋게 일한 건데ㅎ"
라고 했다.
...................................!!
그랬다. 불쌍한게 아니었다.
나는 그 날 여러가지 엑스레이를 많이 찍는 바람에,
돈을 2만원 넘게 썼다.
그런데 참 아이러니하게도 정형외과를 가서 몸을 고치러 했는데, 의사 선생님의 말 한 마디.
그렇다고 해서, 따뜻한 것도 아니고 툭 던지듯이 한 말이었는데.
갑자기 모든 조각들이 꿰어지는 것이다.
내가 그 동안 힘들었던 이유.
내가 자기연민에 빠져살았던 이유.
내가 열심히 하고도 무기력했던 이유.
열심히 하는 나를 멋지다고 생각한 것이 아니라,
돈 때문에 열심히 하는 가난하고 불쌍한 나라고 생각했던 것이었다.
우리의 삶이 그렇다. 힘이 들 땐, 그 단어의 결을 조금만 바꿔주자. 동전의 양면을 뒤집듯. 김치부침개를 뒤집개로 살짝 뒤집듯이 말이다.
상황은 같지만 해석은 다르다.
힘든 일이 아니라, 중요한 일. 불쌍한 것이 아니라, 스스로 해냈다라고.
말을 조금씩만 뒤집어주자.
그러면 내 삶은 불쌍한 삶이 아니라,
중요한 일을 스스로 해낸 멋진 삶이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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