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생에서 만난 몇몇 사람들과 몇 번의 직업관 터닝 모먼트
#가치관이 바뀌게 된 몇 번의 순간들
내가 아는 한 유튜버님은 최근 본인의 유튜브 인생 13년차에 대한 영상을 올렸다. 그 유튜버의 삶을 보고 나는 오열하지 않을 수 없었다.
그의 삶이 내 삶과 비슷하게 느껴져서 참 많이 공감이 갔다.
그는 10년간 유튜브를 하고, 10년차가 되었을 때 비로소 구독자 1만명을 모았다.
내가 그에 대해 리스펙을 하는 이유, 첫째는 유튜브를 그렇게 오랫동안 꾸준히 했다는 것이다
사실 유튜브를 하다보면 정말 꾸준히 하기란 쉽지 않다.
근데 조횟수건 수익이건 상관없이 꾸준히 해왔다는 그 자체가 참 멋지다고 생각한다.
개인적인 친분도 있지만, 그 영상으로 알게 된 것은 아기였을 때 항암 치료도 받았다는 것...
알고 지낸 지 이제 4년차가 되었는데, 처음 알게 된 것일 뿐더러
정말 누구보다 해맑게 웃는 사람이라서 그런 일이 있었는지는 몰랐다
가끔씩 그 유튜버님을 보면서 정말 세상에 걱정이 없을 것 같이 느껴졌었다.
때로는 걱정없어보여 부럽기도 했고,
싱글라이프를 즐기며 온 세상을 누비는 것 같아 멋지다고 생각했고,
IT/카메라/어플리케이션을 자유자재로 만지는 그가 트렌드에 능통해보여서 대단하다 생각했다
그런데 내 눈에 대단해보이는 그가 말하기를
구독자수로 모든 것을 평가하는 사람들이 많아 무시를 많이 받았다고 했다
나의 유튜브 스승이기도 한 사람이기에
그의 솔직한 말에 놀라기도 했고,
'엥? 무시받이는 난데?'라는 생각도 들었다
찰리 채플린을 좋아하는 그는
마임을 배우고, 분장을 하며 전세계를 돌아다니며 공연을 했었더랬다
영화 조커를 보면서
사람들에게 맞고, 도망가고 하는 모습에
본인도 그런 일이 있었었다고 했다
그렇게 배우 활동을 하다가,
앱티스트라는 이름으로 IT 전문가로 활동하기도 했고,
케이블TV의 MC도 했고,
광고회사 실장도 했고,
대학교 미디어 교수도 했으며,
지금은 크리에이터 교육도 많이 하는 그였다
본인이 크리에이터를 하기도 하고,
크리에이터 양성교육을 하기도 하는..
참 나와 비슷한 삶을 살았다고 생각한다.
그는 광대였다고 밝히지만
삐에로였다고 말하지만
나 역시도 대학 시절
아르바이트를 할 때는
삐에로와 함께 나레이터모델을 했었다
말로 먹고 사는 사람이다보니
대학교 때는 나에게 말로 먹고 살 수 있는 직업이
나레이터였다
LG 베스트샵이나 삼성 디지털프라자같은 큰 가전매장 앞에서
삐에로와 함께 팝콘을 튀기거나 떡볶이를 만들면서
사람들에게 매장 홍보활동을 했다
박명수는 말했었다
공부를 안 하면 더운 날 더운데서 일하고, 추운 날 추운데서 일한다고.
내가 딱 그랬다. (공부를 안 한 건 아니었는데;;;)
내가 하는 아르바이트들은 주로 로드행사라고 불리거나,
로드를 뛴다고 말했다
로드, 즉 한 마디로 길에서
전단지를 나눠주기도 하고
마이크를 들고 더운 날이든 추운 날이든
프로모션 활동을 했으니까.
그리고 그 당시에는 어찌나 사이버틱한 옷을 많이 입히던지...
사이버틱한 옷을 입고 일할 때마다 당황쓰;; 당황쓰;;
정말 더운 여름 날에는 룰렛행사를 하면서
"룰렛을 돌려주세요!"
"제가 에너지바라고 외치면 화이팅 해주세요!"
라고 하는 나레이터 언니였다
화장품 로드샵도 참 많이 다녔었다
지하상가 화장품 로드샵도 말이다
그나마 지하상가인 날은 좀 나았는데
정말 힘들었던 건 한겨울 초한파였다.
30년만의 대한민국 최대 한파였던 날
나는 인천의 바닷바람이 부는 곳에서
LG베스트샵 로드행사를 하고 있었다;
윗옷을 14겹이나 입었지만
너무 추워 장기까지 경직되어
일하고 온 그 날,
모든 걸 소화하지 못 하고 엑엑-ㅠ-거렸다
그 다음 날도 같은 행사였는데
너무 아파 열이 나는 날에도
행사는 캔슬할 수 없었다
당일날 캔슬을 하게 되면
알바로서 신뢰를 잃고, 이후 일자리도 잃을 수 있기 때문에
꾸역꾸역 참아가면서 영하의 날씨 속에서 일을 했었다
지금이야 수석입사를 했다라든가,
공모전에서 연속 수상을 했다라든가,
N잡러로 다양하게 돈을 많이 버네 어쩌네
이런 이야기들을 하고 있지만
사실 나에게도 이런 나날들이 있었다
조커라는 영화를 보면서
광대의 인생을 보았고,
사실 그게 나와 별반 다를바가 없다는 생각도 했었다
나레이터모델이었을 때도, 다른 삐에로들과 함께 길에서 일하면서
참 험한 꼴도 많이 겪었고
그 당시는 미투도 없었던 때라
참 할말 못 할말 못 가리는 아저씨들도 많았었던 때다ㅠ
모델하우스에서 일을 했을 때는
회사의 높은 사람이 갑자기 인포데스크에
자신의 세컨드를 앉히느라
열심히 일하던 내가 하루 아침에 쫓겨나기도 했다
그 날,
더 열심히 살아야 하는 이유를 깨닫기도 한 하루였다
그 이후 오랜 기간을 코엑스 같은 박람회장, 콘벤션 센터에서 일하기도 했다
대학에 다니며 대기업 정도의 돈을 버니까
'굳이 왜 고생해서 대기업에 가야하지?'
이해할 수 없었다
'마음 편한 박람회 도우미 일을 계속 하는 것도 괜찮겠다'
라는 생각을 했었다
하지만 나이가 30대 초중반 되는 언니들은
그 때부터 이미 나이가 많은 축에 속한다고 말했다
그 중 한 언니는 이렇게 이야기했다
"이 일은 나이가 들수록 퇴물이 되는 일이야"
충격이었다 (!)
어린 내 눈엔 프로페셔널해보이는 언니가
그런 말을 하다니 말이다
나이가 들수록 장인처럼, 마스터가 되는 일이 좋은 일인건가
하는 생각을 그 때 처음 하게 되었다
나이가 들수록, 경력이 많아질수록
더 인정해줘야하는 일임에도 불구하고
현실적으로 대우가 그렇지 않음을 알게 되었다
나이가 들수록, 경력이 많아질수록
내가 충분히 더 인정받을 수 있을만한 일이 무엇일까?
많이 고민하게 되었다
가치관이 바뀌게 된 몇 번의 순간들이었다
나레이터모델을 하다 한겨울에 장기가 경직되었던 순간,
모델하우스에서 하루 아침에 퇴사를 하게 된 순간,
프로페셔널해보이는 전시장도우미 언니의 반전 한 마디를 듣는 순간
그 순간들이 내 삶의 가치관을 뒤흔들었다
그 때부터 나는 생존을 위해서
대체불가능하고 내가 좀 더 잘 할 수 있고,
전문성을 발휘할 수 있는 일이라든가
좀 더 고부가가치를 끌어낼 수 있는 일을 하는 게 좋겠다고 생각하게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