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돈아 고마워!"

돈을 싫어하지 않고, 고마워 하고 살기. 내 라이프스타일을 바꿔주는 친구

# "돈아 고마워!"

돈을 싫어하지 않고, 고마워 하고 살기. 내 라이프스타일을 바꿔주는 친구


“안녕하세요, 평창동이죠?”

뭔가 부잣집의 상징은 그 동네의 이름이었다. 우리가 흔히 아는 부촌. 평창동, 한남동, 압구정동 등이 있다. 나는 인천의 작은 동네에 살다가, 울산에서도 살고 다시 인천에 왔었다. 하지만 회사와 집이 너무 멀었다. 강남까지 가는 것은 약 2시간. 왕복이면 4시간이다. 나는 다른 사람들보다 4시간을 길바닥에 버리는 느낌이 들었다. 내 하루는 24시간이 아니라, 20시간 같았다.


실제로 고되게 야근을 하고 난 뒤, 택시를 탈 때 내가 항상 들었던 음악은 선미의 ‘24시간이 모자라’였다. 일 때문에 집을 서울로 옮겼었다. 서울 살이 처음 시작하는 사람들은 다들 알겠지만, 만만한게 신림동이었다. 다들 서울에 자취를 처음 시작할 때는 신림동이 2호선이고, 가격도 비교적 저렴하다고 알고 있기 때문이다. 나는 신림역에서 조금 더 옆으로 가서, 서울대 입구역에 자취방을 구했다. 봉천동이었다.


그 동네에는 서울대가 있어서 그런지, 크로스핏장에 가도 헬스장에 가도 서울대생들이 많았었다. 헬스장에서 친해진 사람들은 거의 다 서울대생들이었기 때문에, 주말에도 서울대 운동장에서 사람들과 함께 운동을 하곤 했다.


그러다가 나는 또 일 때문에, 앗싸리 집을 가까이 붙이기로 했다. 강남역 부근의 회사가 있었다. 야근이 너무 고되었기 때문에, 라이프스타일과 공간에 대한 욕심은 사라진지 오래였다. 그저 내 몸을 뉘일 곳, 가까운 곳이 장땡이었다. 그래서 강남역 부근 고시텔을 들어갔다. 고시텔도 한 달에 50만원이었다.


하지만 매일 좁은 관과 같은 곳을 들어가는 그 느낌. 너무나 답답했다. 결국 그 생활을 1달밖에 하지 못 한 채 나와버렸다. 그리고 회사 역시 퇴사를 했다. 이후 다른 회사를 들어갔는데, 교육 관련 쪽이라 그런지 또 강남이었다.


에라 모르겠다라는 마음으로, 월세가 70만원이나 되는 오피스텔에 들어갔다. 사람들이 나에게 “어디 사세요?”라고 물어봤다. 나는 “강남역 근처요”라고 대답했다. 그러면 사람들은 그 때부터 나를 ‘잘 사는 사람’이라고 생각했다. 아이러니했다. 나는 그저 나무도 없는 그런 곳의 오피스텔에서. 그러니까 방 한 칸에 살 뿐이었는데 말이다.


그런데 여기서 조금 더 나에 대해 파악하고 싶어하는 사람들은 물었다. “언제부터 강남 사셨어요?” 나는 그런 질문이 실례라고 생각했지만, 사람들은 나에게 그냥 물었다. “한 1~2년 되었어요.” 라고 하면 그제야 “아...” 하고 더 이상 물어보지 않았다. 나를 강남 뜨내기라고 생각하는 것 같았다. 일명 강남 뉴비.


여기서 진짜 강남에서 사는 사람들의 질문은 또 달랐다. “중고등학교 어디 나오셨어요?” 라고 물었다. 나는 사람들의 가지각색의 질문들에 질려버렸었다. 마치 “당신, 진짜 성골이 맞나요?” 라고 귀족의 계급같은 것을 따져묻는 것 같았기 때문이다. “아 중고등학교는 인천에서 나왔어요.” 라고 머쓱하게 대답하면... “아.... 저는 경기고 나와서 혹시 같은 학교인가 싶어서요”라는 어색한 말들로 대화는 짜게 식었다.


그리고, 또 다른 오피스텔로 이사를 하게 되었다. 역시 강남역 부근인데, 그 쪽은 역삼동이었다. 강남역 쪽이라고 말하면 또 이것저것 물어볼까봐. 그냥 역삼동이라고 하니, 사람들은 그리 많이 물어보지 않았다. 생각해보면 역삼동은 일 때문에 잠깐 사는 곳처럼 들렸나보다. 실제로 역삼동은 오피스텔과 빌라가 많기도 했다.


그 곳에 살면서, 종종 산책을 했다. 역삼동 건너편 서초동을 가면 그렇게 아파트가 많았다. 뭔가 유명하고 좋은 브랜드의 아파트들이었다. 래미안, 자이 등. 아파트숲이었다. 나는 아파트들을 보면서, “우와 언젠가 이런데 들어갈 수 있을까?”라는 말을 했다. 그리고는 괜히 부동산을 기웃거렸다. 부동산에서는 그 아파트들이 다 10억이 넘는다고 했다. 그렇다고 해서 포기하지는 않았다.


욕망을 구체화하면 결국에 이룰 수 있다는 것을 알기 때문이었다. 세상의 많은 빌딩은 누군가 그것을 생각하여 가지게 된 것이다. 나도 생각을 하게 되면 살게 될 수 있을 것이라는 생각을 했다.


오피스텔 만기가 다 되어가면서, 부동산에 발품을 팔았다. 여태까지 모은 예산을 가지고 여기저기 부동산에 가봤는데, 쫓겨나기 일쑤였다. 그 돈을 가지고는 투룸을 구하기도 어렵다는 말을 들었다.


그런데 발품을 팔고, 또 팔다보니 비록 10년이상 되었지만 내 예산에서 나에게 괜찮은 아파트를 발견하게 되었다. 그 물건을 보자마자 바로 계약을 할 수 밖에 없었다. 나는 비로소 그렇게도 원하던, 강남역 부근의 아파트에 살게 되었다.


서초동... 어릴 적부터 친한 부잣집의 딸인 친구는 아버지가 자동차회사의 임원이셨다. 그리고 집은 서초동이었다. 어른이 되어서, 사람들이 그 친구들에게 집을 물었을 때. “서초동이요~” 라고 하면 그 때마다 느껴지는 간지가 있었다.


그 친구는 그 삶이 익숙해서 어떨지 모르겠지만, 나는 항상 그 친구의 대답을 부러워했었다. 그리고 어찌저찌해서 결국에는 나도 서초동을 살게 되었다. 강남역을 나갈 때는, 화장도 하지 않고, 머리도 감지 않고, 그냥 대충하고 나간다. 그럴 때마다 피부관리샵을 권하는 분들과 도를 아십니까를 전하는 분들이 나를 잡는다. 하지만 나는 당당하다. 나는 강남역에 나갈 때 꾸미지 않는다. 우리 동네니까. 운동을 하러 간다. 댄스 학원도 강남역에 있다.

한 때는 900원짜리 삼각김밥도 2~3번 고민하면서, 살까말까 했었다. 지금은 9,900원짜리 샐러드를 고민없이 사먹는다. 기쁘다. 내 힘으로 여기까지 왔다. 사실 이 과정에서 모든 것이 행복한 것은 아니었다. 보증금을 모으는 것도 정말 힘들었다.


하지만 넓은 집에 오면서, 작업공간도 늘어났고 마치 내 마음도 넓어진 것만 같다. 하루 종일 재즈음악을 틀고 이 넓은 집에서 뒹구르르 거리고 있는데 참 좋다. 이 여유.


보증금 모으느라 힘들었으니, 이제 조금은 여유를 가지면서 살아볼까? 내가 좋아하는 한 선생님은 잠실로 이사를 가신 후 블로그에 잠실댁이에요~라고 자주 쓰곤 하셨다. 그 때마다 참 부러웠다.


언젠가 한 번 말하거나 써보고 싶었다. “네, 서초동입니다.” 열심히 일하고 벌어서 이제야 비로소 내가 살고 싶은 동네에 살게 되었는데, 그동안 나는 왜 은근히 돈을 싫어했었는지 모르겠다.


로또가 당첨된 사람들에 대해서 생각을 할 때도, 뭔가 삶이 더 안 좋아지지는 않을까? 하는 괜한 염려도 한다. 또는 주변 인간관계가 안 좋아지지는 않았을까? 라는 생각도 했다. 아니면 괴한의 침입이 있지는 않을지, 불안해서 어찌 사는지 하는 생각도 했다. 또는 탕진하다가 오히려 말로에 안 좋지 않을까? 하는 생각들. 하지만 로또를 맞은 사람들은 안 좋게 되는 확률보다, 오히려 그저 저금을 하고 현실을 더 풍요롭게 잘 살아가는 사람들이 더 많다고 한다.


나는 소박한 삶도 추구하고, 미니멀리즘도 추구하고, 여유로운 삶을 살려고 할 것이다. 하지만 그렇다고해서 돈을 싫어하지는 않겠다. 돈을 숭배하지도 않겠다. 자본주의의 노예처럼 과도한 일에 눌려서 스트레스를 받으며 사는 피로인간이 되지도 않겠다.


하지만 돈에 대해서 감사함 마음은 갖겠다. “돈아 고마워~” 항상 이렇게 인사하면서, 샐러드를 사먹을 때도 맛있게 먹겠다. 국밥을 사먹을 때도 맛있게 먹겠다. 작은 것을 하나 사더라도, 내가 열심히 일해서 번 돈에 대한 감사한 마음을 나를 지켜주고 보호해주는 돈에 대해서 고맙다고 인사하며, 작은 삶을 살더라도 행복하게 살아갈 것이다.


“돈아 고마워~ 앞으로도 잘 지내자. 나도 열심히 하고, 너를 헛으로 쓰지 않을게. 아끼면서 가치롭게 감사하게 쓸게. 잘 살아보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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