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들은 말의 힘이 강한 사람의 말을 기억한다.)
#강연가가 된 이유.
(사람들은 말의 힘이 강한 사람의 말을 기억한다.)
나는 관종이다. 관종으로서 어떻게 하면 관심을 더 많이 받을 수 있을까? 바로 강연가가 되는 것이다. 사람들에게 내 이야기를 들려주는 것. 하지만 같은 이야기를 하더라도, 말의 힘은 다 다르다. 똑같은 이야기도 스노우폭스의 김승호회장님이 하는 것과 일반 사람이 말하는 것은 확실히 다르게 느껴질 것이다. 김승호회장님이라는 분은 자산이 무려 4,000억이 넘으신다고 하니 말이다. 빚이 없이. 그는 이미 대단한 메신저가 되신 것 같다.
자기가 겪어보고, 부딪혀보고 하는 얘기는 확실히 그 퀄리티가 다르다. 다른 사람의 이야기를 하는 것보다 그 감동이 다르다. 그 느낌과 감정선이 다르다. 나도 그런 사람이 되고 싶었다. 내가 많은 것들을 극복하고 이겨내서 그 이야기를 전달하고 싶었다.
사실 어찌 보면 나는 약간의 자격지심이 있었다. 바로 부모님의 이혼이었다. 8살 때 부모님이 이혼을 하게 되어서 나는 알게 모르게 타격을 받고 있었다. 그 당시에는 타격을 받은 지도 몰랐다. 워낙 어린 나이였으니 말이다.
나는 종종 생각했다. 나를 혼자 키우시는 어머니를 보면서, 괜히 나같은 게 있어서 엄마를 힘들게 한다고 생각이 들기도 했다. 나는 또 생각했다. 내가 만약 정말 예쁜 아이였다면, 부모님이 나를 보는 재미에 이혼을 안 하진 않았을까? 나는 또 생각했다. 내가 만약 정말 영재였다면, 부모님이 나를 자랑하는 재미에 이혼을 안 하진 않았을까? 어른이 된 지금 생각해보면, 어느 정도 일리도 있지만 꼭 그렇지는 않다.
아이가 정말 예쁘게 생겨도, 정말 영재여도 부모는 이혼할 수 있다. 나는 어릴 적부터 나의 그 큰 결함, 내가 만들지도 않은 결함으로 인해서 우울한 적이 많았다. 알 수 없는 슬픔이었다. 그 슬픔을 이겨내고 싶었다. 그 슬픔을 이겨내려면 내가 잘 되어야 됐다. 보란 듯이 잘 되어야 된다고 생각했다.
내가 잘 돼서 사람들에게 이런 메시지를 전하고 싶었다. “여러분 이거 보세요, 결손가정의 아이도 잘 자라나서 좋은 사람이 될 수 있어요!” 희망을 품는 것도 잠시, 친구들은 우리 엄마 아빠가 이혼한 지도 모른 채 종종 이런 말도 했다.
“역시 집안이 화목한 사람을 만나야 돼. 가정불화가 있으면 다 티가 나게 되어있어. 그런 사람이랑은 결혼생활도 쉽지 않을 거야. 확률적으로 그런 것이 사실이야.”
나는 그런 말들을 들을 때마다, 아직 있지도 않았던 남자친구에 대해서 걱정을 했다. 남편될 사람의 시부모님이 나를 어떻게 생각하실까 걱정을 했다.
그런데 나는 진짜 억울했다. 내 잘못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해서, 부모님도 크게 잘못 한 것이 없다. 엄마는 당연히 잘못이 없다. 아빠가 잘못했다고 생각했다. 자꾸 도박을 해서 엄마를 불행하게 했으니 말이다. 그리고 나 역시도 아빠의 부재로 인해서 힘들고 험한 삶을 살았기 때문에 그를 종종 원망하고 미워했다. 책임감을 다 하는 다른 아빠, 놀이동산에 함께 놀러 간 가족, 나들이를 나온 가족, 고깃집에 간 가족을 보면 더더욱 그랬다.
하지만 누군가를 미워하고 원망하는 마음을 가지면, 내가 너무나 힘들기 마련이다. 그래서 나이가 서른이 지난 지금은 그를 조금은 덜 미워하기로 했다. 생각해보면 이해를 아예 못 할 건 아니었다. 딱히 가진 것도, 능력도 없는 그가 인생 한 판 역전을 꿈꾸기 위해서라면 딱 2가지 밖에 없었다. 도박 또는 복권이었다.
아빠는 이혼한 이후, 내가 성인이 되고 나서도 복권을 한다고 했다. 어쩌면 변화와 희망이 없는 그 삶 속에서 그게 유일했겠지. 이제 그만 미워하는 마음을 놓기로 했다. 그러니 마음은 편했다.
하지만 내 스스로는 계속 무언가 부족한 사람이라고 생각했다. 뭐 하나가 없는 사람. (아빠) 나사 하나가 빠진 사람. 불완전한 사람. 남편이 될 사람의 시부모님을 생각했을 때, 괜한 오해를 받기도 싫었다. 완전하지 못 한 가정에서 자라, 그래서 그렇다. 이런 말을 듣고 싶지 않았던 거다. 내 망상이기도 했지만, 친구들의 가치관을 들어보면 그렇게 생각하는 사람이 적지도 않았다.
그래서 나는 더 잘 살기로 했다. 아빠가 없는 사람. 이혼가정에서 자란 애라는 말을 듣고 싶지 않았다. 그래서 더 열심히 살았다. 반장선거를 하면 출마를 해서, 반장이 되기도 했다. 공부도 열심히 했다. 동아리도 열심히 했다. 수행평가도 열심히 했다. 그냥 습관적으로 모든 것을 열심히 했다.
성인이 되어서 역시 아르바이트도 열심히 하고, 봉사활동도 열심히 했다. 그냥 그게 습관이었다. 게으름을 피면 아빠처럼 될 것 같았다. 게으르면 거지꼴을 못 면한다는 말은 내 신념이 되었다. 게으르면 소된다라고 늘상 얘기했던 엄마의 말처럼, 나는 내 자신이 게으른 꼴을 별로 보고싶지 않았다.
어떻게 보면, 그게 내가 강연가가 된 이유다. 오늘은 오랜만에 고등학교 특강을 준비하면서, 내가 왜 강연가가 되었는지 생각해보았다. 강연가. 어떠한 성과를 가지고 많은 사람들 앞에서, 자신만의 이야기와 삶을 이야기하는 사람. 강연가는 보통 대단한 사람이 많았다. 완전해 보이는 사람이라고 생각했다.
내가 내 일을 잘 해서, 돈도 많이 벌고 강연가가 되면 누구도 나에게 뭐라고 하지 않을 것 같았다. 어찌 보면 상처를 이겨내려다 좋게 풀린 케이스인 것도 같다.
나는 강연을 할 때, 마지막즈음에 사냥개 정신이라는 주제의 콘텐츠의 강연을 하면서 마지막 15~20분을 엔딩한다. 앞에서는 나의 삶 이야기나 진로/취업/유튜브에 대한 이야기들을 풀어낸다. 사람들은 때때로 그런 나를 우러러봐주기도 한다.
마지막 강연에서 비로소, 사실 나는 이혼가정에서 자랐다고 이야기를 한다. (이 말을 할 때마다, 엄마가 신경쓰여 마음 한 켠이 아프다.) 사람들은 놀란다. 나에게 그런 일이 없었을 거라고 생각했던 것 같다. 하지만 내가 그런 이야기를 했을 때, 눈물흘리며 공감하는 이도 있었다. 어찌 보면 그들은 나와 비슷한 삶을 살았던 모양이다. 내가 잘 이겨내고, 결국 강연까지 하는 사람이 된 것을 보면서 그들은 희망을 얻는다.
내가 더 단단해질수록, 나와 같은 상처를 입은 사람들은 강인해진 나를 보면서 용기와 희망을 얻기 때문이다.
이렇게 내 상처들을 콘텐츠로 풀어내면서, 말할 때 글쓸 때는 아팠지만 내가 가장 많이 듣는 말은 “감사합니다”이다. 세상의 많은 소외된 사람들. 가정에 대한 상처를 가진 사람들이 더 당당하게 살 수 있는 데에 내가 조금이나마 도움이 되는 사람이 되고 싶다.
그게 내가 강연을 하는 이유고, 콘텐츠 역시도 외부, 이론, 타인이 아니라 내 삶에서 직접 부딪히고 깨지고 극복한 얘기들만으로 구성을 해서 강연을 하는 이유다. 사람들은 말의 힘이 강한 사람의 말을 기억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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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이프스타일 크리에이터
조언니
https://www.youtube.com/channel/UCWBfP8guLO01vSBMmX3LiFA