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울함 인정하기. 인정해야 극복할 수가 있기에
#나는 내 우울함을 인정하기로 했다.
내가 대체 왜 우울한 걸까? 나는 배때기가 불렀다. 먹고 싶은 것을 먹을 때, 메뉴의 가격을 신경 쓰지 않는 사람이 되었다. 고작 몇 년 전까지만 하더라도, 스시 도시락을 먹을 때 10,000원짜리 도시락을 사면서는 엄청나게 고심을 했던 사람이다. 회사 카드로 먹을 때나, 가끔 먹을 수 있었다. 그러나 오늘은 청담동의 유명 스시집에서 배가 부를 때까지 먹고 싶은 것들을 집어먹었다. 그런데 내가 왜 우울한 걸까?
나는 휴머니즘을 많이 상실했다. 밝히고 싶지 않지만 그렇다. 시간 당 가치를 올리려고 많은 노력을 해왔다. 일명 몸값을 올리려는 노력을 많이 해왔다. 그리고 정말로 시간 당 가치가 높아지니, 내 시간들이 너무나 귀해졌다. 그래서 이제는 사람들을 만나지 않게 되었다. 그러다보니, 집에서 유튜브만 보는 신세가 되었다.
어느 모임에도 나가지 않게 되었고, 단톡방에서도 조용히 다 나오면서 내 시간을 지키기 위해서 애써왔다. 그런데 이제는 혼자가 된 것 같다는 생각이 많이 든다.
하소연을 하지 않기로 했고, 일희일비를 하지 않기로 했다. 그러다보니 정말 나에게는 기쁨도, 슬픔도 없어져버렸다.
돈을 많이 벌면 인정받고, 사랑받을까 싶어서 열심히 돈을 벌어보았다. 순수익으로 월 1,000이상을 매달 찍었다. 하지만 나는 운전도 못 하는 사람이라 차 같은 것도 없으니, “내가 이렇게 열심히 잘 하고 있어요”라는 것을 쉽게 드러내 보일 수 있는 것이 없었다.
그리고 막상 비즈니스의 세계를 오니까, 나의 수입은 그들에 비해 보잘 것이 없음을 알게 되었다. 비교에는 끝이 없다는 것을 알게 된 순간 허무함이 밀려왔다.
유명세를 얻으면 행복해질까? 인정을 받으면 행복해질까? 큰 조횟수도 얻고, 구독자도 순식간에 많아지기도 했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무조건 행복해지는 것은 아니었다. 이 세계에서도 역시, 나보다 더 잘 하는 사람은 몇십만 조횟수가 아닌, 몇 백만 조횟수를 가지고 있었다. 구독자 역시 내가 수천명인 반면, 몇 십만 몇 백만 구독자를 가진 사람들이 있었다.
글을 잘 쓴다는 칭찬을 받았지만, 나는 작가도 베스트셀러를 만든 사람도 아니었다. 강연을 했지만 스타 강연가도 아니었다. 사업을 했지만, 엄청나게 촉망받는 테크놀로지를 가진 스타트업 여성 CEO도 아니었다.
그런 와중에 바쁘게 일하며, 집안은 점점 어질러져만 갔다 @@. 수습불가;;; 엄마에게는 얼굴도 자주 못 보는 딸이 되었으며, 최근 절친한 친구와도 멀어졌다.
상담소만 보면 눈이 돌아갔고, 동네의 상담소가 어디어디에 있는 지 외우는 지경이 되었다. 그러다 용기를 내서 상담소에 전화를 했다가, 그들의 비즈니스적인 말투에 당황하며 전화를 끊기 일쑤였다.
네이버에서 검색하는 단어 역시, 강남역 상담이나 강남역 심리상담이었다. 나는 소소한 것을 중요하게 생각하지 않았다. 그랬기에 내 감정들은 너무나 소소하여, 중요하지 않다고 여기면서 살아왔다. 그런데, 그 별 거 아닌 것이 별 거 였을 줄이야.
앞으로 어떻게 하면 행복할 수 있을 지도 모르겠다. @ㅡ@