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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넬대 그 남자

나와 다른 운명을 가지고 태어난 것 같았다

21살, 고시텔에 살았었다. 서울에 올라와서, 인서울 대학에 입학하여 처음에는 기숙사를 살았었다. 2학년 때 기숙사 신청기간을 깜박 놓쳐버려서, 고시텔로 이사를 갔었다.




 그 때부터 시작되었다. 나의 고시텔 생활이. 나는 우리 학교 앞 고시텔에 살았다. 고시원이 아닌, 고시텔이라는 것이 내 마지막 자존심이었다ㅋ




 친한 친구도 고시텔에서 살았기 때문에, 고시텔에 사는 것이 아무 개의치가 않았었다. 오히려 2인 1실인 기숙사보다 편했다. 기숙사는 통금 시간도 있었고 말이다.




 하지만 나의 고시텔 생활은 꽤 오래 지속되었고, 친구의 고시텔 생활은 빠르게 변화되고 있었다. 친구는 학교 근처의 좋은 원룸을 거쳐, 또 근처에 여대생이 살기 가장 좋은 오피스텔로 가게 되었다.




 반면 나는 의도치 않게도, 대학생활 내내 고시텔에 있게 되었다; 여성 전용도 아닌, 남녀공용의 고시텔. 공용 빨래줄에 널어놓으면 옷이든 속옷이든 없어지기도 했다.




 화장실, 샤워실도 바깥에 있어서 양치 한 번 하러 갈 때면 복도를 지나 화장실&샤워실에 가야했다. 샤워를 하고 나면 샤워가운을 입고 나올 때마다, 혹시라도 다른 남자분들이 복도를 지나가면 어쩌지 하면서 소심하게 총총 뛰어 방으로 들어와야했다.




 고시텔의 라면은 항상 라면 중에서 가장 저렴한, 삼양의 쇠고기면이었다. 진라면도 신라면도 안성탕면도 아닌 쇠고기면.




 쇠고기면을 질릴 때까지 먹고 나면, 공용 주방에 있는 밥솥에 눌어붙은 밥과 총무님이 미리 다 가위로 잘라놓은 김치를 집게로 푹푹 퍼다가... 다 벗겨진 후라이팬에 뚜껑이 열려 기름이 눌어붙은 식용유를 대충 둘러서 밥과 김치를 넣고 볶아먹었다.




 우리 고시텔에는 계란이라는 후한 인심도 있어서, 김치볶음밥에 계란후라이를 하나 얹어먹곤 했다.




 나의 대학생활은 그랬다. 인서울을 하면 장밋빛 인생이 펼쳐질 줄 알았다. 나의 대학생활은 고시텔 생활과 수십개의 알바생활이었다.




 그렇게 고시텔을 거쳐, 회사에 입사해서는 서울대입구인 봉천동에 자리를 잡았다. 500에 39만원. 분리형 원룸이었다.




 어둑어둑한 모텔 골목에 자리잡은 원룸이었다. 이 때 회사동료였던 동갑내기 친구는, 내가 사는 허름한 원룸건물 바로 앞에 있는 그 동네에서 가장 으리으리하고 살기 좋아보이는 오피스텔에 살았었다. 당시 어린 내 눈에는 그렇게 보였다. 실제로 그 건물은 오피스텔도 아닌 도시형 생활주택이라는 명칭을 가지고 있었으니까. 같은 회사, 같은 나이, 같은 고향. 하지만 우린 달랐다 흑 ㅠ 그 친구와 상관없이도, 그 서울대입구역 4번출구의 골목에 들어가면 오른쪽은 허름한 나의 원룸건물, 왼쪽은 삐까뻔쩍한 주상복합 오피스텔. 그 때마다 갈림길에서 오른쪽이 아닌 왼쪽으로 들어가는 나. 바로 건물 하나 차이인데도, 사람들의 옷차림이며 라이프스타일마저도 달라보였다. 쌔드;




 그래도 고시텔에서 나름 업그레이드 했다고 자부하며 원룸생활을 3년 정도 했었다.




 회사생활을 몇 년 하고, 참 많이도 이직을 했었다. 사주에 역마살이 꼈는지 말이다. 그 때는 이직한 회사를 얼마나 다닐지 확실히 알 수 없었다. 그래서 강남역 근처의 고시텔에서 또 다시 고시텔 생활을 했다.




 건대가 아닌 강남역은 고시텔도 더 작았다. 정말 관에 들어가는 기분이라고 표현할 수도 있을 정도로 작디 작은 방이었다. 정말 미친 듯이 답답한 방.




 이건 사람이 살 곳이 아니었다. 그리고 내가 이직한 회사 역시도, 지나친 야근에 밤 11시~12시가 되어도 회사에 있으니 심장이 쿵쾅거렸다.




 마케팅 대행사였기 때문에, 큰 브랜드들이 갑이었고 우리 회사는..을 중의 을이었다. 당시 내가 다녔던 회사는, 대행사의 대행사였기 때문이다.




 그렇게 강남 고시텔 생활을 접고, 그 이후에는 학원에서 강사 생활을 하기 시작했다. 그래도 이번 회사는 오래 다닐 수 있을 것 같아서 오피스텔에서 살게 되었다.




 그러다 프리랜서를 시작하고, 창업을 하게 되었다. 열심히 해서 또 아파트로 이사를 왔다. 사업을 계속 확장하면서 집도 지금은 좀 더 넓은 곳으로 이사를 오게 되었다.




 그리고 어제, 집 근처에 갈 만한 공원이 어디 없을까 알아보던 중. 서래마을 근처의 몽마르뜨 공원에 갔다. 가니까 뜨어억. 사람들이 은근히 되게 고급스럽다 생각을 했다.




 놀이터에 가니까 뜨어억. 외국인 아이들과 부모 반, 한국인 아이들 반. 아니 어쩌면 외국 아이들이 더 많았다. 갑자기 분위기 급 프랑스.




 그리고 그 앞에 햄버거 집을 갔는데 뜨어억. 앉아있는 사람들 티에는 Cornell university law school이라고 적혀있는 거다.




 내가 진짜 많이 생각해봤는데, 한국에서 자수성가로는 정말 코넬대 같은 곳에 가기가 어려운 것 같았다. 애초에 그런 학교에 들어간다는 것은 최소 중고등학교 때부터 아예 미국 유학을 가는 거, 또는 중고등학교 때부터 준비한 거. 아니면 대학을 그 쪽에서 나와 로스쿨을 가는 거.




 거의 이런 루트이다. 한국형 자수성가는 보통 해봐도 요즘엔 스마트스토어, 예전엔 오픈마켓. 또는 작가, 강연가, 강사 등인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니면 요식업이나, 미용업이나, 의류업 이런 쪽이지.




 아무리 한국에서 고시텔부터 살면서 쌔빠지게 공부하고 알바하고 일을 해도. 코넬대 로스쿨 같은 곳에 갈 수는 없는 것 같았다.




 나는 잠깐 충격을 먹었다. 남자친구는 볼 때 마다 매우 자주 시종일관 책을 읽고 있었다. 이 때 2차 충격을 또 먹었다.




 매일 매일 몇 년 동안 봐온, 남자친구의 모습이지만 오늘따라 이질적으로 느껴졌다. 그냥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다. 내가 만약, 그런 환경에서 자랐으면 어땠을까?




 집에서 아빠를 보면, 아빠가 계속 책을 읽고 있는 모습. 오늘 읽는 책에 대한 이야기를 해 주는 모습.




 나는 부끄러웠다. 나는 사실 정말 책을 많이 읽지 않았었다. 난독증인 것 같다고 표현할 만큼. 성인 ADHD가 아닐까라고 의심할 만큼. 긴 호흡의 책을 읽는 것이 나에게는 너무나 버겁게 느껴졌다. 그래서 스낵형의 짧고 짧은 페이스북, 인스타그램, 유튜브 등에서 가벼운 콘텐츠를 위주로 소비해왔다.




 그러다보니 내 취향 하나 없이, 그냥 대중의 취향이 되어버리고 있었다. 나의 기호나 뚜렷한 취향 없이 말이다. 그저 편의점에 어떤 새로운 인스턴트가 맛있다고 불리는 지 꿰고 있었다. 요즘 먹부림을 제대로 부리려면, 어떤 고칼로리의 지방이 좔좔 흐르는 냉동음식을 시켜서 먹어야 되는지 알 뿐이었다.




 사실 어릴 적에는 책 읽는 아빠는커녕... 그냥 내 삶에서 아빠라는 존재가 없었다. 그 때는 너무나 당연하게 살아왔는데... 오히려 나이 서른 넘어서 이런 자잘자잘한 모먼트에서 갑자기... 뙇뙇!!! 하면서 다가오게 될 줄 몰랐다.




 나는 낮이든 밤이든 혼자 집에 있다가, 불안한 마음에 정을 붙이지 못 하고 ‘신화’라는 아이돌이라는 존재를 알게 되었다. 내 친구들이 그들을 좋아하니까, 그들은 유쾌하니까, 그리고 나는 항상 혼자 있고 불안하니까. 그래서 어쩌면 나는 그들의 스케쥴, 노래, 춤, 예능 등에 익숙해져 온 마음의 정을 ‘신화’에 붙였는지도 모른다.




 그냥 갑자기 코넬대 로스쿨 티셔츠를 입고 있는 한 젊은 남자와, 고시텔에서부터 지금까지 열심히 해서 개고생해서, 정신이 피폐해져가면서까지 부를 조금이라도 얻기 위해 열심히 살아온 나란 여자가...




 서래마을 한 버거집에서 극명하게 대비되는 순간이었다. 이 이질적인 감정. 이 충격.




 나도 아이돌을 좋아하는 것도 좋지만, 좀 더 어렸을 때 책과 지식 등에 흥미와 취미를 붙일 수 있었던 편안한 마음 상태였다면, 환경이었다면, 주변 사람들이 있었다면 참 좋았을텐데... 라는 아쉬움을 인정해본다.




 남 탓을 하는 것이 아닌, 그런 아쉬움에 대한 단상을 남겨보며... 앞으로의 습관들이라도 그저 마냥 아무 생각 없이 인스타를 보고 누워있다거나 그런 행동을 하지는 않고 싶다.




 Unfuck yourself. 너 자신 좀 그만 망쳐. 시작의 기술이라는 책에서 저자가 하는 말이다. 문제를 인식하고 깨달았으니, 이제 나도 내 남은 귀한 시간들을 내가 원하는 방향대로 살아보려 한다. 내 소중한 시간을 아끼자. 그리고 하고 싶은 것들을 하자. 그래, 다시 시작해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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