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왕의 후손

[숫자 체스] 1부 1화

by 란파색깔기애베개

나는 안동 빼씨 가문의 후손, 빼비냥이다. 그래 맞다. 우리는 몇 백 년 전에 세상을 지배했던, 수 체계의 마왕. 그의 후손이다. 나의 조상이란 사람은 ‘킹’ 신분을 들고도 ‘폰’ 따위에게 소멸당했다. 정확히는 소멸이 아니라 봉인이다. ‘비개 싸대기’의 유물 효과로 인해 존재 자체가 봉인된 것이다. 사실상 소멸이나 다름없다.

“비냥아 밥 먹어.”

아빠가 날 불렀다. 오늘 밥은 생 다람쥐 구이와 산딸기로 보인다. 맨날 산딸기만 먹는다.

“아빠, 왜 맨날 산딸기만 먹어?”

“아, 어쩔 수 없잖아. 시내로 내려갈 수도 없고… 그냥 네 동생들처럼 먹기나 해.“

내 동생 빼쭈냥, 빼핑냥, 빼동냥은 산딸기를 우걱우걱 씹고 있다. 우리는 가장 높은 ‘킹‘ 신분인데 왜 산에 고립되어 지내야 하는 걸까. 그 이유는 방금 말했던 우리 조상 때문이다. 이 세상은 여섯 개의 세계로 이루어져 있다. 각 세계는 모두 ‘킹’을 중심으로 운영된다. 즉 이 세상에는 ‘킹’ 신분의 여섯 가문이 존재한다. 그랬었다.

하지만 내 조상은 모든 세계의 수식을 지배하길 원했고, 다른 세계를 침공하기 시작하였다. 그리고 그는 정말로 이 세상의 수식을 지배하였지만, 가장 약한 세계인 ‘양계’의 폰 따위에게 꺾이고 말았다. 그 후, 우리 가문은 사회에서 추방당했다. 자연스럽게 우리 가문이 다스리던 세계의 시민들도 다른 세계로 유입되었다. 그렇게 우리 가문은 사회적으로 추방당해, 지금은 양계의 인적 드문 산속에 숨어 지내는, 폰보다도 못한 신분이 된 것이다. 킹이지만 킹 노릇을 할 수 없다.

양계, 음계, 미계, 허계, 제계.

이제 이 세상은 다섯 개의 세계로 이루어져 있다. 우리 가문의 세계가 사라졌으니 말이다.


나는 모닥불에 익힌 다람쥐 통구이를 먹다 말고 산 밖의 시내를 내려다보았다. 왁자지껄. 웃음소리가 넘친다. 우리보다 신분이 낮은 사람들인데.

이곳은 양계. 어떤 가문은 가장 낮은 ‘폰’ 신분인데도 전설의 영웅이랍시고 킹보다 더 좋은 대우를 받는다. 양계의 킹도 그들을 떠받는다. 우리랑은 정반대이다.

나는 참다못해 아빠에게 소리쳤다.

“아빠, 이젠 안 되겠어. 나 시내로 내려갈래.!“

“안 돼. 내려오자마자 전국의 사람들이 죽이려 들 거야.”

“그래도, 이렇게 있을 순 없잖아!!!!! 우리 잘못도 아닌데!!!”

아빠한테 이러면 안 되는 걸 알지만, 몇 백 년 동안 산딸기나 먹는 가문에서 살다 죽을 바에는 시내로 내려가 죽는 게 낫다는 것을 너무 잘 알고 있었다.

“아빤 안 된다고 했어. 갈 거면 혼자 가든가.”

내가 이러는 거 한 두 번도 아니고, 아빠는 귀찮다는 듯이 대답했다. 하지만, 이번에 나는 꽤나 진심이었다.


그날 밤, 난 가족들 몰래 짐을 챙겨 산을 내려왔다.

월요일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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