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웅의 후손

[숫자 체스] 1부 2화

by 란파색깔기애베개

킹(king) - 세계를 다스리는 신분이다. 다른 신분은 무조건 킹의 말에 복종할 수밖에 없다.

퀸(queen) - 킹을 보조하는, 두 번째로 높은 신분이다.

룩(rook) - 킹과 퀸의 직속 정예 군대로, 세 번째로 높은 신분이다.

비숍(bishop), 나이트(knight) - 각 세계에서 마을 단위를 관리하는, 지방 자치 관리 신분이다.

폰(pawn) - 가장 낮은 노예 신분이다.

신분은 태어날 때, 자연적으로 부모에 따라 부여되는 것이며, 자신과 다른 신분과는 결혼할 수 없다. 신분이 높을수록 기본적인 신체 능력과 '수력' 총량이 월등히 높다.

즉 내가 아무리 사회적으로 추방당한 가문이라도, 신분은 킹일 터. 다른 애들이 쉽게 죽일 몸이 아니란 말씀이다.


이른 새벽 시간. 드디어 산을 다 내려왔다. 이 시간에 길거리를 누비는 사람들은 모두 새벽일에 끌려가는 폰들일 것이다. 나는 당당히 그들 사이를 지나갔다. 그때였다. 주변의 모든 폰들이 동시에 날 쳐다보았다.

'이 기운은.. 킹 계급이다.. 망자의 가문...'

내가 미처 고려하지 못한 게 하나 있었던 것이다. 신분으로 인한 힘의 차이. 그건 아주 간단한 기운이었다. 내가 멀리서도 그들이 폰이란 걸 알아차린 것처럼, 그들은 나를 알아차렸다. 하지만 그렇다고 뭘 할 수 있는가. 바라보는 것뿐, 단 한 명도 나에게 달려들지 못했다. 아직 사람이 없는 새벽이기에, 그들은 그저 개미 한 두 마리에 불과하였다.


* * *


내 조상은 전설의 영웅, 춘동이다. 나는 '춘'씨 가문의 후손. 이름은 춘씩이다. 내 조상님은 세상의 반란꾼을 제압하는 업적을 세웠다. 종종 할아버지께서 영웅담을 들을 수 있었다.

"~~~ 이렇게 하여, 안동 빼씨 가문은 몰락하였단다."

"할아버지, 그럼 지금 그 가문은 없는 거예요?"

"저기에 산 보이지? 그들은 저 산에서 조용히 살고 있단다."

"킹 신분인데도 그렇게 사는 게 불쌍해요."

"우리는 폰인데? 씩아, 중요한 건 신분이 아니란다. 신분을 이어온 가문의 행적이지."

정말... 들을 때마다 자랑스러워지는 이야기다.


명색이 영웅 집안이랍시고, 우리는 다른 폰들과 달리 노예일에 끌려가지 않는다. 그래도 우리는 새벽마다 일을 나간다. 자발적으로.

"역시, 영웅 집안이셔. 이렇게까지 안 도와줘도 되는데."

나는 항상 봉사활동을 즐긴다. 속일 수 없는 선행의 유전자인가? 으쓱.


그날은 새벽에 환경미화원들을 돕고 있었다. 할아버지께 여러 번 들었던 '그 산' 앞의 쓰레기를 비울 때였다.

'어? 이 기운.. 킹이다. 우리 세계의 킹이 아니야...‘

킹의 신분을 가진 자가 산을 내려오는 것이었다. 그래. 사라진 여섯 번째 세계의 킹. 망가의 킹이다. 말로만 들었던 '그 가문'이 실제로 살아 숨 쉬고 있었다니. 나뿐만 아니라 주변 미화원분들도 모두 그를 주시하였다. 수왕의 후손. 그나마 다행인 점은, 그가 혼자라는 것이다. 대체 그는 무슨 목적으로 여기에 온 걸까.

월요일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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