완벽한 천국 같기도 다가오는 지옥 같기도

[호구] 2부 1화 _우리집 반려인간의 20년 호구 인생사

by 조해야 Johaeya



백 마리의 강아지 꼬리가
바람을 타고 한 방향으로 흔들릴 때
천국이 한꺼번에 무너져 내려
우리는 그다음을 알지 못했네.



나의 두 반려인간은 나무로 소품을 만들어서 시장에 팔러 나갔다. 벌이는 두 사람과 개 두 마리가 살 만한 정도였고 마음은 돈주머니보다 불렀다. 공방 창고가 있는 1만 평의 귤밭에서 사계절을 사는 일은 새끼손톱보다 작은 초록색 아기귤이 주먹만 해지는, 온통 주황의 겨울을 하루도 빠짐없이 챙겨보는 기쁨 그 이상이었다.



시장이 서지 않는 날에는 낮에 낚시로 잡은 물고기를 구웠고, 밤에는 장작을 피워 화목난로에 등을 지졌다. 큰눈이 내린 날에는 귤로 두 눈을 장식한 새콤한 눈사람을 만들거나 내리막 길을 다져서 눈썰매를 날쌔게 몰았다. 손님들이 떠난 귤밭에 달이 오르면 공방은 창고 벽에 영화를 쏘아 올린 심야극장으로 변했다.






이웃들은 장작과 김치와 겨울 옷 등을 내려놓고 추위를 가져갔고, 여행객들은 공방에서의 추억을 갖고 가는 대신 각자가 살아온 이야기들을 놓고 갔다. 먹고 자고 일하는 종일이 캠핑이었다.



그때쯤 지인으로부터 자신이 임대하고 있는 시골집을 소개받았다. 유서 깊은 그 마을에는 천 년 이상의 고목이 옛 집의 지붕보다 높이 하늘을 덮었고, 관광객들이 오가는 길목에는 인적보다 적막이 컸다. 한 마디로 고요와 오랜 것들로 꽉 찬 마을이었다.



휘황하고 높고 빠른 것들보다 낡고 낮고 느린 것들이 주도하는 땅에 두 인간은 단박에 반했다. 지인의 계약을 승계받아 이사 날짜를 잡았다. 꿈에 그리던 시골집에 들어오던 날, 마당에는 새벽 빗방울을 머금은 동백 꽃잎이 스팽글 레드카펫처럼 구석구석 길목을 채워 두 인간을 반겨 주었다.






이른 아침이면 과거가 하루씩 로켓배송 되는 기분으로 잠에서 깼다. 오랜 땅은 살아 있는 자를 차분하게 했다. 종종걸음으로 뛰지 않고 걸어도 느리다고 앞에서 비웃거나 속도를 올리라고 뒤에서 채근하지 않았다. 옛것은 그 자리에 있는 것만으로도 위용이 저절로 드러났다.



다섯 그루의 블루베리 나무를 텃밭에 심었고, 찬거리가 되어주는 야채들도 길렀다. 주민과 관광객들이 거의 지나다니지 않는 아침과 저녁나절에는 개들과 산책을 했다. 옛 길을 밟는 시간이 쌓일수록 무슨 일이든 인간의 수명 100년을 기준으로 생각하던 습관이 고목의 나이 1000년으로 사고 체계가 바뀌었다.



'천년을 살 것도 아닌데 뭘 연연해.'



'천년을 살았다면 이건 사소한 일에 불과해.'



마음의 유속이 느려지니 호사도 여유 있게 굴러들었다. 연말에 공고와 심사를 거쳐 여자에게도 공방으로 쓸 집 한 채와 더불어 새 목공방이 될 집까지 총 두 채의 시골집이 시에서 무상으로 주어졌다. 헌 집을 직접 고쳐서 목공방 이전을 한 달 만에 마쳤다. 둘은 각자의 공방에서 새로운 날들을 꿈꾸며 하루를 10년 같이 알차게 보냈다. '다 이룬' 시절이었다.






그 순간이 천국이 아닌 지옥문의 손잡이를 돌렸다는 사실을 아는 데 2년이 걸렸다.



살고 있는 집에 밖거리(바깥채)를 먼저 임대한 남자가 날마다 관광객을 데리고 마당으로 들어왔다. 그는 주차장에서 대기를 하다가 관광객이 나타나면 냇가에 송사리를 몰듯 반경을 좁히며 그들에게 다가갔다. 정식 문화해설사를 가장하여(소수이지만 정식 문화해설사도 있다) 친근하게 접근한 다음 순수한 의도인 척 마을을 열정적으로 소개하며 사진촬영 기사 노릇을 자처했다. 그런 식으로 관광객의 기분을 한껏 맞추며 마을을 돌다가 마지막 코스에 토산품이 가득한 자신의 밖거리 창고에 손님들을 넣었다.



헤엄치러 나왔다가 그물에 잡힌 꼴이 된 관광객들은 자신들이 호의를 모른 척하는 나쁜 인간이 될 수 없어서 끝에 난처해했다. 마을 입구에는 '호객 특산품 판매 등 일체의 상행위를 하지 않는다'는 표지판이 번듯이 세워져 있지만 무색한 전시용일 뿐이었다.






낯선 이들은 예고도 없이 불쑥 나타나서 마당을 점령하고 큰소리로 떠들었고, 담배를 태우거나 묶여 있는 개를 위협했다. 특산품 안내 멘트가 모두 끝나면 대부분의 관광객들은 하나 이상의 물건을 샀다.(그럴 수밖에 없는 분위기다.)



그러던 어느 날 이른 아침부터 소란이 일어났다. 밖거리 남자가 물건 구입을 거부하고 있는 관광객에게 '당신들은 오늘 마수(그날의 첫 판매)라서 하나라도 물건을 사야 한다'며 강요를 했다. 거실까지 쩌렁쩌렁 들어온 그의 목소리는 여자의 귀에까지 강압적으로 들렸다. 결국 강매를 당한 관광객은 생각에 없던 오미자차 한 병을 사들고 마당을 빠져나갔다.






이런 일이 비일비재했다.



상행위에 낚인 줄도 모르고 마당에 따라 들어온 가족이 역정을 내는 날이 있었다. 50대 중년의 가장이 '해설사인 줄 알았지 물건 구입을 강요할 줄은 몰랐다'며 몹시도 언짢아하자 밖거리 남자는 도리어 '나는 분명히 물건을 판다고 말했다'며 윽박을 질렀다. 아내와 딸의 얼굴이 완전히 일그러졌다. 가족들은 억지로 고사리 한 봉지를 구입했다. 골목을 빠져나가는 가족들을 여자가 따라갔다. 처음 있는 일이었다. 이유는 알 수 없이 몸이 저절로 움직였다.



가족들은 또 상행위를 하기 위해 자신들을 쫓아온 주민이라 오해하고 다가오는 여자를 견제했다. 여자는 집안에서 방금 전의 일을 알게 되었고 자신은 토산품을 파는 사람이 아니라고 설명했다.



"요즘 세상에 무슨 이런 경우가 다 있대요?" (그러게 말입니다...)



"필요도 없는 '중국산' 고사리를 구입했네요?" (어떻게 아셨는지...)



"이 마을에 와서 내내 좋았던 기분 다 망쳤어요!" (미안합니다...)



아빠, 엄마, 딸이 돌아가면서 여자를 샌드백 삼아 불쾌감을 토로했다. 마을 토박이는 아니지만 주민의 한 사람으로서 부끄럽게 생각한다고 여자가 대신 사과를 건넸다. 그러자 중년의 가장이 자신들에게 물건을 팔던 남자가 해코지를 할지도 모르니 어서 집으로 돌아가라며 오히려 여자를 걱정하며 어깨를 밀었다.



'마을을 찾아준 여행자들을 불쾌하게 하다니.'



여자는 집으로 돌아와서 오래 보관 중인 책 한 권을 뒤졌다. 섬을 소개하는 여행책이었다. 9년 전 쓰인 책에 현재 자신이 살고 있는 마을을 어떻게 묘사했는지 갑자기 몹시도 궁금해져서 바쁘게 책장을 넘겼다.



[00 마을]


'마음 약한 여행객의 손에는 어느 틈엔가 토산품이 들려 있을지도 모르니 친절만 받고 물건은 사지 않을 자신이 없다면 유의하길.' p.120



'부끄러움은 왜 나의 몫인가.'






주민의 생계를 유지하는 행위가 어떻게 이런 구시대적인 방식으로 이어지고 있는지 현장을 볼 때마다 놀라웠다. 토산품팔이에 미친 사람들 같았다. 마을을 보존하고 관리하는 관계자들에게 내색해 보아도 소용없었다. 이웃의 어르신들이나 전에 이장직을 맡았다는 다른 어르신까지도 상행위 하는 자들을 '마을에 똥칠이나 하는 몹쓸 놈들이라고 가리키면서도 (예전부터 그래왔기에) 어쩔 수 없다'는 말만 반복했다.



심지어 이 집에서 파는 물건이 다른 집에 가면 가격이 점점 떨어졌다. 특별히 주민가격에 주겠다며 생색을 내면서 다른 팔이들이게 말하지 말라고 신신당부를 했다. 연대의식 없는 한통속, 돈에 눈먼 각자도생이었다. 어찌 보면 선심인 듯 보였지만 관광객들의 주머니와 기분을 착취하는 부당하고 뻔뻔한 관행이었다.






한편 지내기 불편한 상황을 집주인에게 전하자 이미 다 알고 있다는 듯 밖거리 남자에게 창고를 세놓은 것을 자신도 후회하고 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도 (장사하는데) 보기가 좋지 않으니 마당에 펼친 캠핑용 테이블을 접어 놓으라거나 집 앞에 묶은 개가 (손님들에게) 짖으니 뒤뜰에 묶으라고 했다.



"여기 '집' 맞아요?"



어이가 없어 집주인에게 호소를 하자 이번에는 마당에서 불을 피우지 말라고 했다. 새벽이면 집집마다 쓰레기 태우는 연기가 풀풀 피어나고, <마을 내 금연>이라는 표지판이 무색하게도 동네 사람들은 대놓고 담배를 피우고, 마당에서 고기를 구웠다. 하지만 집주인은 '내 집에서만 아니면 돼'라는 기준으로 화로와 테이블을 직접 나서서 치워버렸다. 결국 소소한 기쁨이었던 시골집 마당에서의 식사는 포기했다.






오랜 것들 중에는 지켜야 할 것만 있는 것이 아니었다.



남자의 공방을 정비하는데 이웃 어르신이 찾아왔다. 전에는 자신들이 관리하던 땅이니 뒷마당을 사용하겠다고 했다. 어안이 벙벙하여 말문은 막히는데 시작에 불과했다. 여자의 공방에 심은 풀이 무엇인지도 모르고 앞집 어르신은 '당장 뽑아라, 안 된다!'며 낮은 담장 너머에서 으름장을 놓았다.



여름 장마로 완전히 침수된 마당을 구하려고 손바닥 만하게 파놓은 우수로는 개수까지 간섭을 하며 빗길을 막고 또 막았다. 자신의 텃밭에 피해가 갈지도 모르는 게 이유였다. 하물며 1월에 제공받은 여자의 공방은 5개월째 전기가 들어오지 않았고, 요청한 기본 공사는 여름이 되어도 감감무소식이었다.






낮은 담과 아무 때나 들이치는 낯선 이들의 방문으로 사람이 사는 집은 점점 동물원화 되어 갔다. 약속과 시간 개념이 없는 나라에서 무한 기다림을 이기지 못한 인간이 도리어 이상한 일이었다. 마을에 들어와서 남자는 술이 늘었고, 술자리가 잦아질수록 행색이 누추하고 움직임이 느려졌다. 바로 그때였다. 고목보다 고약한 사람이, 전통보다 썩은 관행이, 고즈넉함보다 음란함이 여자의 피부에 예리하게 스쳤다.






여자가 목공방에 들른 1월의 오후. 레깅스와 짧은 반팔티를 입은 늙은 여자가 마당에서 양갈래 머리를 하고 허리를 반으로 접은 채로 엉덩이를 들었다 내리길 반복하고 있었다(이하 '갈래'). 처음보는 이였다. 제집 밭에 있는 식물들을 공방에 나눔하겠다고 찾아왔다며 남자가 상황을 설명했다.



여자가 먼저 통성명을 했다. 상대는 자신은 '갈래'라며 본명을 밝히지 않았다. 혀 짧은 목소리와 사선으로 비킨 시선, 주름이 자글자글한 얼굴에는 혼탁한 기운이 가득했다. 담배 백개를 한 번에 물어야 쏟아질 것 같은 쾌쾌한 낱말들이 자욱한 연기처럼 불분명하게 공중을 떠다녔다.



남자는 '갈래'를 포함한 마을 사람들과 여러 날 어울렸다. 이후 공방에서 '갈래'를 볼 때마다 여자는 괴상한 기분이 들었는데 당시에는 그것이 무엇인지 정확히 알지 못했다.






봄에 둘이 함께 심었던 키 큰 풀이 꽃대를 살찌게 피웠다. 거대한 풀무리가 가을바람에 살랑이자 여자가 말했다.



"강아지 꼬리 백 개가 한꺼번에 흔들리는 것 같아."



웃고 있는 여자의 눈에 그 장면은 완벽한 천국 같기도 다가오는 지옥 같기도 했다.




나의 반려인간에게.


거대한 고목에는 목소리가 살아요. 고목 아래 떨어진 이파리를 밟으면 나만 들을 수 있는 소리가 시작돼요. 어떨 때는 달래주고, 어떨 때는 혼내고, 어떨 때는 안타까워 가슴을 치다가 잔가지를 부러뜨려서 땅으로 내리죠. 이건 인간이 듣기 어려운 이야기라서 당신에게 어떻게 전해야 할지를 나는 모르겠어요.
목소리가 살아요






*[호구]는 총 20화로 매일 오전 10시에 업로드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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