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방 손님이 시장으로 찾아왔다. 공방 물건을 여러 차례 구입한 적 있는, 단골이었다. 식당을 운영하고 있는 사장은 자신의 식당에 밥을 먹으러 오라고 했다.
"언제 밥 먹으러 와."
다음 방문에도 같은 소리를 했다.
"밥 먹으러 오라니까."
그다음 방문에도 마찬가지였다.
"내가 돈을 받겠대? 밥 먹으러 와!"
며칠 후 납품할 제품을 들고 두 사람은 함께 식당을 찾았다. 젊은 사람들 밥 한번 먹이겠다는 사장님 인심을 더 모른 척하기 그랬다. 식당으로 들어서는 둘을 알아본 사장이 그들을 환대했다.
메뉴는 사장이 선택했다. (대접해 주시는 거니까.) 음식이 나오기를 기다리는 중에 사장은 주변 손님들에게 공방 사장을 소개했다. 음식이 나오고 젓가락을 드는데 테이블 옆에 바싹 다가선 사장이 이런저런 이야기를 계속 쏟아냈다. 음식이 목 안으로 들어가는 건지 목 밖으로 빠져나오는 건지 알 수가 없었지만 참았다. (대접해 주시는 거니까.)
여태 자리를 뜨지 않은 사장이 이번에는 갑자기 수개월 전 주문 건에 관한 이야기를 꺼냈다. 자신이 주문한 대로 제품이 나오지 않았다며 거북한 심정을 드러냈다. 그 건이라면 현재는 퇴사한 전 직원이 담당했던 일이다. 공방 대표인 남자는 당시에 다른 나무로 대체될 것과 사이즈 및 가격 등을 식당 사장과 협의한 이후 제작에 들어갔고, 납품까지 말끔히 마무리된 것으로 알고 있었다.
"내가 원한 물건이 아니잖아. 쓰지도 못하고 처박아 두었다니까."
식당 사장은 조리실에서 컨테이너 하나를 들고 나왔다. 그리고 식사 중인 테이블 위에 반쯤 걸치고 목소리를 높였다. 흔들린 나무 식기들이 엉망으로 소리를 지르고 있었다.
"그때 협의가 된 줄 알았습니다만."
담당했던 직원이 퇴사한 상황이다. 그때 오갔던 말들을 정확히 따진 들 사장의 기분만 돋울 뿐이다. (더구나 지금은 자신들에게 식사를 대접하는 자리이지 않은가.)
"그런 거(협의) 없었고. 이렇게 물건만 던져 놓고 가면 될 일이야?"
주문-제작-납품으로 이어지는 과정에서 제대로 소통이 이루어지지 않았다. 공방의 잘못이 맞다.
"죄송합니다. 저희가 더 세심하게 상황을 설명드렸어야 했어요."
식당 사장이 물건을 받은 즉시 연락을 했다면 상황이 악화되지 않았을 텐데,라는 아쉬움이 몰려왔지만 지금은 사장의 화를 가라앉히는 게 순서다. 입속에 있던 음식을 모조리 빼내고 여자가 사장에게 사과했다. (식사를 대접해 주시니까.)
"물건은 저희가 가져가서 손을 보겠습니다. 원하시는 대로 쓸 수 있게 만들어 드릴게요."
남자가 감정을 억누르고 사장에게 말했다. 그때 여자는 보았다. 남자의 입속에도 음식이 비었다는 것을. 사장은 그때 멈추었어야 했다. 자신의 자리로 돌아갔어야 했다.
"쓰지도 못하고, 이게, 이게 쓰레기지! 안 그래?"
'쓰. 레. 기.'
순간 목구멍으로 총알이 탕하고 박혔다. 주변 손님들이 수저질을 멈추고 힐끔거렸다.
자주 가는 식당 음식이 그날따라 입맛에 안 맞았다고 하자. 손님들이 식사 중인 자리에서 식당 사장에게 '음식 쓰레기를 파냐!', 고 내가 큰소리를 낸 적이 있던가. (심지어 몇 개월 후에 찾아가서 말이다.) 여자는 자신의 과거를 되짚었다. 있었다면 지금 일어나고 있는 일이 그에 대한 벌이라고 여길 참이었다. 아무리 생각해도 그런 적은 없었다. 상상도 못할 타인에 대한 모멸과 멸시를 지금 자신이 당하고 있는 것이다.
"죄송합니다."
그럼에도 이곳은 공방의 단골 업체다. 더구나 사장은 지금 선심으로 식사를 대접하고 있다. 식당 사장의 태도는 이해하기 어렵지만 공방의 잘못은 백 번 인정해야 했다.
"정말 죄송합니다." (이제 밥 좀 먹게 떠나 주시겠어요?)
마지막 인내심으로 여자는 사장에게 애원했다.
"쓰레기를 어디다 써! 안 그래?" (공짜 밥 먹기가 이리 힘들 줄이야.)
입맛은 애초에 달아났고, 이제는 반대로 목구멍에 음식을 넣으면 돈을 주겠대도 사양할 지경이다. 사장은 원래 기질이 그런 것인지 그날만 그런 것인지, 쌓아 둔 분을 작정하고 풀어냈다. 기분은 잡쳤고, 두 발을 쫙 뻗치고 간장에 버무려진 게장이 분해된 몸을 도로 합체해서 자신들의 장기를 집게발로 뜯고 있는 것 같았다. 둘은 목구멍 속으로 줄줄 흐르는 뭉개진 자존심을 뜬눈으로 바라보며 자리를 정리했다. 아무 말없이 식당을 나올 수가 없어서 (대접이었지만) 남자가 예의상 카운터에 결제할 카드를 내밀었다.
"띠띠띠 띠리리ㅡ"
사장은 밥값을 계산했다. 그것도 한 치의 오차도 없는 금액으로. 그리고 아무렇지 않은 얼굴로 조리실로 들어갔다. 그 사실을 모른 여자가 화장실에서 나오다가 조리실에 있는 사장을 불러 공손하게 마지막 인사를 했다. 오늘 먹은 음식은 게장이 아니라 '판모멸과 멸시국수'였지만 그래도 식사를 대접받았으므로 끝까지 비참한 심정을 티 내지 않았다. 공짜(가 아니었던) 밥에 배웅을 바라지도 않았지만 돌아서는 길에 사장의 차가운 얼굴을 보고 여자는 결심했다. '밥 먹으러 오라'는 소리라면 다음에는 침을 뱉겠다고. (식당 밖으로 나온 후에 밥값을 지불했다는 사실을 알고 여자는 자신이 '슈퍼super 호구'라는 생각을 다시 한 번 했다.)
평소에 먹지도 않는 비싼 음식에 돈을 지불하고, 자신들이 대접받는(줄 알았던) 자리에서 사람들에게 보란 듯이 존엄이 짓밟히며, 음식이 아니라 욕과 반말을 꾸역꾸역 처먹고 집으로 돌아왔을 때 가짜 선심이 사람의 영혼을 얼마나 다치게 할 수 있는지를 절감했다. 식당 사장의 밥 한번 먹으러 오라는 말은 그 인간의 '인생 관행'일 것이다. (이후에 공방에 데려온 '쓰레기'는 손을 봐서 다시 쓰일 물건이 되었고, 사장은 주문을 또 요청했다.)
귤밭 창고에서 공방을 운영하던 때에 급격히 오르던 매출이 코로나 사태로 줄면서 마음의 여유도 바닥나고 있었다. 공방의 공구와 자재는 넘쳤지만 당장 쓸 수 있는 돈이 달렸다. 이어 마을로 공방을 이전하면서 전보다 (관광객들에게) 노출은 많이 되었지만 정신은 매너리즘과 번아웃, 우울증으로 엉망이 되어 갔다. 남자의 낙은 술이 되었다. 마을 사람 중 누구와도 술을 마실 준비가 되어 있었다. 공방 마당에서 엉덩이를 흔들며 모종을 심던 '갈래'라는 늙은 여자도 그 자리에 끼어 있었다
"이유는 모르겠어. 기운이 나쁘니까 그 사람 멀리했으면 좋겠어."
여자의 당부가 부탁이 되고, 부탁이 호소가 되고, 호소가 먹히지 않아서 남자와 큰 다툼으로 번졌을 때는 8월이었다. 1월에 제공받은 여자의 공방에 기본 공사가 그제야 끝나고 내부 세팅을 하는 중이었다. 이웃의 억센 간섭과 흘끔거리는 시선은 여전했다. 나대지 않고 얌전히 찌그러져서 잘되는 꼴을 보여서는 안 될 것 같은, 그것은 마치 죽은 게처럼 보이지만 살아 있는 집게발이 두 인간의 내장을 여기저기에서 소리 없이 찌르고 있는 기분이었다.
가위에 눌렸다. '전통'이라는 늠름한 장군 뒤로 '관행'이라는 오합이 새 터에 자리잡으려는 외계인의 목을 끝없이 졸라댔다. 자나 깨나 숨이 깊이 쉬어지지 않았다. 공황장애였다. 산책길에 인적을 발견하면 다른 길로 방향을 틀었다. 대인기피증이었다. 잠옷바람으로 현관문을 열면 (토산품 팔이가 미끼로 데려온) 이방인들과 눈을 맞추었다. 잘못 없는 그들을 마당에서 깡그리 도려내고 싶었다. 인간 혐오였다.
마을은 섬의 어느 지역보다 안개 낀 날이 많았고, 통깨보다 작은 날벌레들이 자주 길눈을 막았다. 무엇보다 축축했다. 바닷가 바로 앞에 살던 시절보다 습도가 더 짙게 닿았다. 질퍽한 산소와 불쾌한 무드. 하지만 되돌아가지 않고 뚫고 나아가고 싶었다. 이를 악물었다.
여자는 한여름의 땀을 쏟아내며 공방 세팅을 드디어 마쳤다. 그날 마당에는 백 마리의 강아지 꼬리를 닮은 키 큰 풀들이 살랑였다. 여자는 깨달았다. 남자와 둘이서 천국을 세웠다는 것을. 그리고 동시에 여자는 예감했다. 머지않아 이 천국이 한 번에 붕괴되리라는 것을. 와중에 5년 전 헤어진 전남편으로부터 연락이 왔다.
나의 반려인간에게.
상대를 아낄 때 내 마음에는 꺼풀이 없어요. 사랑하는 대상에게 바칠 것은 한 겹의 마음과 좌우로 흔들리는 꼬리면 되거든요. 두껍게 껴입은 인간의 마음은 서로를 진짜까지 벗기려다가 상처를 내죠. '당신을 반겨요'라는 말로 꼬리 치며 의심하네요, '당신을 응원해요'라는 얼굴로 웃으면서 경계하네요. 마음의 옷은 딱 한 벌이면 돼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