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을 것 같았다. 죽이고 싶었다

[호구] 2부 3화 _우리집 반려인간의 20년 호구 인생사

by 조해야 Johaeya



방문을 잠그고 엄마의 화장대 의자에 앉았다. 거울에 비친 얼굴이 낯설었다. 입에서 핏물이 흘렀다. 사정없이 뜯긴 머리카락이 방바닥으로 떨어졌다. 분이 덜 풀렸는지 밖에서는 다시 방문을 두드려 대기 시작했다. 문이 열리지 않자 이번에는 사정없이 방문을 발로 걷어찼다. 부모님은 돈을 벌러 나갔고, 집에는 방안의 자신과 방밖의 인간, 오직 둘 이외에 아무도 없다. 여자는 귀를 막았다. 소리를 질렀다.



'제발 그만해.'



죽을 것 같았다. 죽이고 싶었다. 하지만 폭행에 대항할 수 있는 방법이 고작 비명뿐이라니. 그날 여자는 방밖의 형제를 버리겠다고 다짐했다. 그리고 고향을 떠났다.






타지에서 몇 번의 연애를 했고, 결혼을 했다. 상대에게 진심을 다했고 살기 위해 최선을 다했지만 마지막에는 늘 헤어짐이 왔다. 사랑하기로 한 이상 여자는 아무것도 따지지 않았다. 하지만 상대는 달랐다. 날이 갈수록 상황을 계산했다. 헤어져 '달라고' 했다. 이혼을 '부탁'했다. 그것도 여자의 인생을 '위하는' 일이라면서. 그 핑계마저도 여자는 배려로 착각했다. 남편과 헤어지고 싶지 않아서 도리어 울고불고 매달렸다. 상황 파악 못하는 머저리가 따로 없었다.



함께한 지 6년째 겨울, 남편은 자신이 데려온 개와 여자를 세트로 버리고 떠났다. 차라리 혼자였으면 '쓸쓸'하고 말았을 텐데, 자신의 품에 폭 파묻힌 개를 보니 '비참'했다. 그리고 5년이 지났다.



OO아, 나야. 잘 지내니?



전남편으로부터 메시지가 왔다. 섬에 오기 직전에 여자는 전에 살았던 세상을 완전히 지웠다. 전남편이 자신의 행방을 어찌 알아냈는지 궁금하기보다 'OO아'라고 부르는 말에 소름이 올랐다. 'OO'은 여자의 애칭이었다.



온마음을 다해 사랑했고 생계를 위해 사력을 다했었다. 한 인간을 위했던 몸부림이 어제의 일처럼 생생했지만 과거에 모두 끝난 일이었다. 후회는 없고, 듣고 싶은 말도 위로받고 싶은 마음도 남지 않았다. 제 발로 관계를 짓밟고 사라진 존재에게 굳이 의미를 둘 팔요가 없었다.



여자는 남자의 연락에 영원한 무언으로 답했다. 그것은 사랑했던 시절에 대한 '속시원한 망각'이었다. 섬에서 맞는 여섯 번째 겨울을 앞두고 있었다.






찬 바람이 부는 추석 당일이었다. 여자는 민박집에서 아르바이트를, 남자는 공방에서 일하는 중이었다. 남자에게서 다급히 연락이 왔다.



"이것 좀 봐!"



남자는 공방 CCTV에 녹화된 영상을 여자에게 보내왔다. 마을 주민으로 보이는 30대 남성이 공방 마당으로 들어와서 작업실 입구에 묶여 있는 개에게 주먹을 쥐고 당장이라도 때릴 듯이 위협하고 있었다. 짖는 소리에도 침입자가 물러나지 않자 개는 앞발을 띄운 채로 두 발을 허공에 휘젓고 있었다.

명절이었다. 떨어져 있는 가족들이 모처럼 한데 모여 정을 나누는 날이었다. 푸짐한 음식이나 귀한 손님을 대신해 갑자기 공방을 찾아온 불청객이 이번에는 발길질까지 더해 격하게 개를 향해 달려들었다. 남의 집 대문을 손수 열고 안으로 들어와서 마당에 묶인 개를 폭행하려는 모습에 여자는 경악했다.



바로 그때 작업실에서 이상한 기운을 감지한 남자가 마당으로 나오자 놈이 주춤, 뒷걸음질로 물러났다. 왜 그러는지, 무슨 일인지 자초지종을 묻는 남자에게 놈은 횡설수설 씩씩거리다가 대문을 열어젖히고 밖으로 나갔다. 술냄새가 났다. 남자는 그대로 바닥에 앉아서 개를 먼저 안았다. 놀랐을 개의 마음을 진정시키는 것이 우선 할 일이었다.



'작업실에 사람이 없었다면...... 공방에 CCTV가 없었다면......'



상상만 해도 아찔했다. 두 사람은 손발이 떨려 왔다.






지난여름, 태풍이 몰아치던 날 밤에 비바람을 맞으면서 떠돌던 개였다. 두 사람은 늦은 저녁 식당에 밥을 먹으러 갔다가 개를 처음 만났다. 개는 식당에서 주는 음식으로 끼니를 때우고 있었다. 누구라도 일단 '사람'이라면 무조건 엉겨붙었다. 밝은 얼굴이, 퍼붓는 입맞춤이, 세차게 흔드는 꼬리가 하나같이 저를 데려가달라는 아우성 같았다.


두 사람은 이미 다친 들개와 지내고 있는 상황이라 식당 사장에게 동물센터에 유기견 신고를 하라고 말했다. 개가 입양이 되지 않아서 안락사를 당하게 될까 봐 사장은 그러지 못하겠다며 어쩔 줄을 몰라했다. 둘은 이미 겪어 봤던 감정이었다. 마음에 따르기로 했다. 임시 보호를 위해 개를 집으로 데려와서 씻기고 먹였다. 하는 짓이 사람의 손을 탄 개가 분명했다. 목욕을 하고 털을 말리는데도 개는 아주 익숙하게 행동했다.



"혹시 병에 걸린 걸까?"



키우던 개가 병에 걸리면 감당할 자신이 없어서 버리는 경우가 있다고 했다.



"만약 그렇다면 우리는 어떻게 되는 거지?"



"어떻게 되기는, 거지가 되겠지."



심란한 심경을 웃음으로 승화하며 둘은 다음 날 동물보호센터로 개를 데려갔다. 개의 몸에는 칩도 없고, 실종 신고 내역도 없었다. 그리고 놀랍게도 병까지 없었다. 건강이 양호하다는 수의사의 말에 처음에는 개를 버린 인간이 어떤 놈일지 궁금했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 개에게 고마운 마음이 차올랐다. 아프지 않은 몸으로 자신들에게 와준 개가 그저 기특했다. 산 입에 거미줄을 칠까, 억지로라도 개의 입꼬리를 위로 끌어올리며 두 사람은 웃으면서 개와 함께 집으로 왔다.



1. 넉넉하게 밥 주기

2. 넘치게 사랑해 주기

3. 무지개다리를 건널 때까지 지켜주기



이번에도 어김없이 '개를 위한 세 가지 약속'을 머리와 마음에 새겼다. 특히 무슨 일이 있어도 개가 죽을 때까지 함께하자고 3번은 끝도 없이 다짐했다. 15일 동안의 임시보호를 마치고 두 사람은 개를 정식으로 입양했다. 굶주리거나 폭행 등으로 두 번 다시 사람 때문에 상처받는 일이 없도록 애지중지 돌보았다. 두 사람의 그런 마음을 아는지 과하게 애정을 갈구하던 개는 처음과 다른 모습으로 조금씩 안정을 찾아가고 있었다.






개의 폭행 미수 사건이 일어난 당일, 정체를 알 수 없는 놈은 현장에서 사라졌고 이후에도 돌아오지 않았다.

다음 날. 남자의 SNS에서 CCTV 장면을 확인하고 (사건 당사자를 제외한) 사람들이 한 명씩 돌아가면서 공방을 찾아오기 시작했다. 그들은 모두 한 마을에 살고 있는 주민이자 사건 당사자의 친척이고 부모였다. 개를 폭행하려고 했던 당사자에 관해 물어도 이름도, 나이도, 하는 일도 전부 함구했다. 대신 사과를 하겠다고 나타난 그들의 요지는 SNS의 게시물을 내려달라는 것이었다. 부탁을 하는데 '요구'로 들렸다.



가족과 다름없는 생명에게 위협을 가했던 CCTV 속의 놈은 분명 30대의 건장한 성인이었다. 이런 경우에 초등학생이라도 부모 손을 잡고 학교에 찾아와서 괴롭힌 친구에게 먼저 사과를 하는 것이 상식 아닌가. 하지만 그들은 SNS에 등장한 자신의 혈연을 가리기에만 급급했다. 긴 명절을 모조리 망쳐버린 늦은 밤, 칠흑이 깔린 공방으로 누군가가 찾아왔다. 경찰이었다.



"OOO 씨 맞으시죠?"



"그런데요."



"주민등록번호가 어떻게 되시죠?"



"???!!!"



놈의 친척 중의 한 명이 야밤에 경찰을 데려와서 피해를 입은 공방 남자를 가해자로 몰고 있는 희한한 상황이 벌어졌다. 남의 집에 불쑥 쳐들어온 주거침입자가 도리어 신고를 하다니. 꾹꾹 누른 감정이 어디에서 터질지를 몰라 길을 잃을 지경인데.



'신고를 할 사람은 그쪽이 아니잖아!'



남자는 기가 찼다. 예상대로 경찰 역시 SNS 삭제를 '요구'했다. CCTV상 얼굴이 식별되는 상태가 아니며 상업적 용도로 올린 게시물이 아니므로 '초상권 침해'에 해당되지 않는다는 사실을 경찰이 모를 리가 없었다. 하지만 혈연으로 엮인 마을에서 그들끼리는 누가 누구인지 대번에 알아본 것이다.



'어디 체포해 보시든가.'



거꾸로 신원조회를 '당하고' 있는 남자가 대답을 거부하고 맞섰다.




나의 반려인간에게.


저기요, 나는 버려졌어요. 작년 여름에 만난 내 동생도 마찬가지예요. 그 사실은 변하지 않지만 흉터는 전과 달라요. 이제는 우리가 사랑받고 있는 자국들이 흉터보다 늘어서 몸을 뒤져도 상처의 흔적을 찾기 어렵죠. 포옹은 폭력보다 강하고, 뽀뽀는 단단한 고독을 헐어요. 알아들을 수 있는 몸으로 우리에게 와요. 이해할 수 있는 말로 당신도 다쳤다고 말해요.

내 동생은 흰 털에 까만 눈을 가졌어요. 당신은 까만 털에 갈색 눈을 가졌네요. 나의 동생도 당신이 가진 것을 전부 지닌 같은 목숨이에요.
칼로 내리꽂든가 두 팔로 껴안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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