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단으로 남의 집 대문을 열고 마당에 들어온 30대 남성이 주먹과 발로 묶여 있는 개를 위협하는 사건이 발생했다. 마침 견주가 나타났고 다행히 폭행은 미수에 그쳤다. 술냄새를 풍기던 남성은 씩씩대며 현장에서 사라졌고 이후 그와 혈연 관계인 지인(마을 주민)들이 '대신' 사과를 하겠다고 돌아가면서 공방에 찾아왔다. 그리고 그들은 남자에게 SNS 게시물(CCTV 영상) 삭제를 요구했다. *영상은 특정인을 식별할 수 없고, 상업적 용도의 게시물이 아니었다.
개를 위협한 사건의 당사자가 30대 남성이라는 것과 마을 주민이거나 마을에 친척을 두고 있는 것(사건 당일이 추석이었다) 이외에는 더 아는 것이 없는 상태에서 급기야 당사자의 친척 중 한 명이 늦은 밤 누군가를 공방으로 데려왔다. 경찰이었다.
'이 마을 재밌네?'
그들에게는 순서와 상식이 없었다. 자신이 신원조회를 반대로 '당하고' 있는 상황에서 남자는 정신을 차리고 경찰에게 요목조목 상황을 따졌다. 결국 경찰은 남자에게 '주거 침입죄'로 신고하라는 말을 조용히 남기고 상황을 철수하고 돌아갔다.
다음 날은 가해 당사자의 엄마라는 사람이 공방으로 찾아왔다(두 번째 방문이었다). SNS를 통해 사건을 알게 된 그녀는 아들 대신 사과를 하겠다며 남자에게 사건 영상을 삭제해 달라고 요청했었다. 이후 남자는 SNS를 내렸고, 여자의 SNS에도 같은 게시물이 있다는 사실을 뒤늦게 알고 또 찾아온 것이다.
아들이 화가 많이 난 상태라고 했다. 본인의 얼굴이 세상에 다 퍼졌다며 불같은 상태라고 했다. 자신도 아들이 무슨 짓을 할지 모르니 여자에게 게시물을 내려달라고 했다. 뜻대로 통하지 않자 그녀는 초상권 침해를 들먹이며 부탁조를 요구조로 바꿨다. 지난밤 경찰을 대동하고 공방에 나타난 일 때문에 진정 화가 난 쪽은 여자였다.
"아드님이 미성년자인가요?"
"아니요."
"아니면, 심신미약자인가요?"
역시 아니라고 했다.
"그럼 본인이 직접 와서 사과를 해야죠."
아들이 분노조절 장애가 있다고 했다. 부모인 자신조차 통제할 수 없는 수준이라고 했다. 다시는 그럴 일이 없을 거라면서 이름, 나이, 직업, 주소 등 아들의 신상에 관한 것은 함구했다. 여자는 처음 SNS를 확인하고 마을에 소식을 나른 사람이 누구냐고 그녀에게 물었다. 그 또한 대답을 거부했다. 그 순간 머리 위로 주민들의 쑥덕거리는 소리가 긴 머리카락처럼 줄줄이 이어져서 여자의 목을 졸랐다.
'쑥에게는 미안하지만 다시는 쑥떡을 먹지 말아야지.'
극도로 어이없는 순간에 여자는 별 우스운 생각이 다 스쳤다.
"그럼 우리의 공포는 어떡하죠? 이미 개가 당한 공포는 어떡하고요?
"......"
"아무렇게나 해도 되는 그저, 그런, 그냥 개가 아니라고요!"
여자의 화가 마을 밖까지 뻗쳤다.
"사실 우리 아들은 개를 좋아해요"
이건 또 무슨 쑥대밭에 잡초 올라오는 소리인가. 그녀는 아들이 진짜 개를 때리려고 한 것인지 아닌지 CCTV 영상을 수없이 돌려봤다고 했다. 아들이 예뻐하는 조카들을 대할 때 (개에게 한 것과) 같은 행동을 한다며 절대로 개를 때릴 사람이 아니라고 했다.
어떻게 보아도 영상 속의 인물은 동물을 학대하려는 의도가 분명했다. 하지만 그녀는 다 큰 아들이 해야 할 사과를 대신하며 여자에게 울음을 쏟아내고 있었다. 휴지로 눈물을 훔친 그녀의 얼굴에 젖은 휴지조각이 덕지덕지 붙었다. 어찌 되었든 '엄마'의 눈물이었다. 여자는 개를 입양하게 된 사연을 그녀에게 들려줬다.
"누군가에게는 동네에 흔한 똥개 한 마리 일지 몰라도 세상에 태어나서 인간에게 버림받은 적 있는 '목숨'에게 아드님이 또 한 번 상처를 줬어요."
"......"
"그 목숨에게 감히 내가 '엄마'가 되겠다고 약속했는데 그날 지켜주지 못한 게 미안해서 미치겠다고요!"
"......"
개의 이야기를 듣고 사람 자식을 둔 엄마가 입을 다물고 운다. 짐승을 자식으로 두었다고 그 마음을 모를까. 그녀는 자신이 아들을 잘못 키웠다고 말했다. 그러면서도 이 일로 아들이 다칠까 봐, 아들의 안전에 해가 될까 봐 전전긍긍했다. 와중에 여자는 '엄마'의 심정을 너무 알 것 같아서 죽을 만큼 짜증이 나는데도 끌어 오르는 분을 참아 냈다.
"SNS에 올려서 마음이 편하시다면 그렇게 하세요."
그녀가 여자를 다독인다.
"아니요, 원하시는 대로 게시물은 내릴게요. 그리고 당장은 아니어도 언젠가는 아드님의 사과를 기다릴게요."
여자가 대화를 멈추고 먼저 자리에서 일어났다.
"네, 꼭 그런 날이 올 거예요."
이어 그녀가 얼룩진 얼굴을 정돈하고 공방을 떠났다.
반겨주는 이는 없었지만 여자와 남자는 자신들도 주민 중의 일원이라고 생각했다. 집과 공방이 있는 터전에서 더 일을 키워서 얻을 것이 뭐가 있겠는가. '당사자의 사과' 그 하나를 바랐지만 엄마,라는 사람은 그 하나를 용납하지 않았다. 더구나 그 아들은 여자가 아르바이트를 하고 있는 곳의 사장의 조카이기도 했다(사건이 벌어진 후에 알았다). 그들은 대체 어디까지 연결되어 있는 것일까. 이곳에서 지연과 혈연은 상식과 개념보다 막강한 법이었다. 한 다리 건너면 누구의 누구로 엮인, 학창 시절에 국사책에서 보던 '씨족 마을'의 위력이었다.
추석연휴는 통째 날아갔고, 여자 역시 SNS의 게시물을 삭제했다. 이후 그들 중 누구도 공방에 다시 찾아오지 않았다. 애초에 그들은 개에게 미안하지 않았고, 사건을 덮고 제 식구를 보호하기 위해 움직였던 것이다. 마지막까지 진심으로 걱정하고, 위로하고, 조언을 해준 이들은 마을 사람들이 아니라 오히려 SNS 팔로워들이었다. 그 사실이 고맙고 헛헛했다. 여자는 기운 빠진 노인처럼 종일 집안에 박혔고, 남자는 공방에서 밤마다 술병을 잡았다. 마을에 만정이 떨어지고 있었다.
"헤어져 주라."
새벽에 집에 들어온 남자가 피폐한 얼굴로 여자에게 말했다.
"이유가 뭔데?"
지치기는 여자도 마찬가지였다.
"나를 좀 봐. 이대로 가다가는 '우리'는 더 망가질 거야."
"......"
숨이 쉬어지지 않아서 여자는 잠시 말을 쉬었다가 겨우 입을 열었다.
"지금은... 힘든 시기이고... 지나갈 거고... '우리'는 무사할 거야."
"정말 엉망진창이다."
남자가 일그러지는 얼굴을 두 손으로 감쌌다.
"그리고 나는......"
말하지 않고 버텨야 하는데 기어코 나오고야 말 때가 있다.
"사람 안 버려."
겨우 말을 마친 여자가 바닥에 주저앉아서 울먹였다.
헤어져 '달라는' 남자를 거꾸로 달래 주는 호구병이 도졌다. 전과 달라지지 않은 자신의 모습에 여자는 괴로운데 남자 말고 집안에 한 사람이 더 있다. 분명 자신이 알던 남자가 눈앞에 있고, 그 남자를 세로로 가른 듯이 남자의 뒤로 또 하나의 실루엣이 흐물거린다. 그때부터였다. 자리에 누우면 지붕 위에서 불쾌한 소리가 났다.
나의 반려인간에게.
아끼는 것에게는 주먹을 쥐지 않아요. 손바닥을 펴고 앉아서 키를 맞추죠. 상처는 칼을 만든 사람이 아니라 칼을 휘두른 사람이 내는 일. 사과는 대신할 수 없고 용서는 억지로 되지 않아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