함께 살던 반려인간 둘이 헤어지면서 한부모 가정의 개가 되는 일이 나에게 또 일어났다. 두 인간 중 한 명과의 생이별을 앞두고 나는 그들의 음성과 표정에 따라 하루를 살고 죽었다. 둘의 언성이 높아지면 작은 방 벽에 숨어 한쪽 눈으로 상황을 지켜보며 벌벌 떨었고, 둘 중에 한 명이 슬픔에 잠기면 조용히 곁으로 기어가서 따라 흐느꼈다.
이제 나는 누구와 살게 될까? 내 병을 낫게 한 남자와도, 날 버린 적 없는 여자와도 헤어지고 싶지 않았다. 나에게는 '남자와 여자'가 세상의 전부였다.
밤마다 술에 취해 휘청거리던 남자는 산 채로 두 발이 묶여 저수지에 빠진 사람처럼 끔찍하게 죽어갔다. 이성은 마비되었고, 감정은 진창에 빠져 발버둥쳤다. 둘의 관계를 돌아본다거나 여자의 상태를 살펴볼 여력도 없이 남자는 자신을 조여 오는 숨통을 붙잡고 몸부림치기에도 벅찼다.
"너 때문에 모든 게 망가졌어."
망가진 현실을 여자의 탓으로 돌리다가
"미안해. 다 내 잘못이야."
돌밭에 무릎을 꿇고 빌었다. 한 몸에 살고 있는 좀비와 선비가 돌아가며 여자를 괴롭혔다.
"나랑 다시 시작할 생각인 거야?"
여자는 오직 한 마디를 기다렸지만
"내가 잘할 자신이 없어."
남자는 망설였다.
여자는 이별을 준비하기 시작했다. 먼저 자신의 공방 계약을 해지했다. 관리사무소에서는 별말 없이 동의했다. 가든지 말든지, 어차피 마을과 관련이 있는 '누구의 누구'를 들이면 될 일이었다. 9개월 만에 겨우 세팅을 마친 공방을 열흘 만에 처음의 상태로 비웠다.
벽에 박은 못마다 설렘이 묻었고, 걸레질한 바닥에는 떨어진 땀방울이 동그란 보석이 되어 발에 차였다. 남자와 직접 깔았던 마당의 잔디는 한겨울에도 어루만진 손길로 번들거렸고, 여자의 키만큼 자라난 새하얀 풀들이 돌담에서 우아하게 춤추고 있었다.
하늘거리는 풀잎을 중앙으로 그러모아 노끈으로 묶고 전지가위로 풀의 목을 베었다. 뿌리를 정리해서 봉투에 담아 남자의 공방으로 보냈다. 잘린 풀잎들이 미용실 바닥에 널브러진 머리카락처럼 땅에 떨어졌다.
'내 몸에서 잘려 나간 머리카락은 나일까, 아닐까.'
바람에 뒹구는 풀잎을 보는데 오랜만에 앞집 어르신의 모습이 보였다. 공방 마당에 이미 심은 풀이 자신의 텃밭으로 번질까 봐 뽑으라고 소리치시던, 침수된 공방 마당을 구하려고 비 오는 날 뚫어 놓은 우수로를 자신의 텃밭에 피해가 갈까 봐 손수 막은 다음 우수로의 개수까지 정해주시던 분들이었다.
'그동안 고약해 주셔서 감사했습니다. 덕분에 마을을 떠나게 되었어요.'
마지막일 것 같아서 가까이에 계신 한 분께 인사를 드렸다. 모른 척하셨다. 귀가 어두우신가 싶어서 더 큰 소리로 인사했다. 이번에도 고개를 돌린 채로 계셨다. 오기가 생겼다. 더 우렁차게 어르신을 불렀다.
"안녕하세요!(안녕히 계세요.)"
그제야 고개만 '까딱'했다. 잘려나간 풀잎들이 뒹굴고 있는 마당에 여자는 가만히 섰다. 이곳에서 자신을 환대해 준 것은 이웃이 아니라 방금 전 자신이 회를 친 풀들이었다는 사실에 서글픔이 올랐다.
밥알이 넘어가지 않았다. 태어나서 처음 보는 두 자릿수가 체중계에 찍혔다. 여자는 두 달째 집을 구하기 위해 발품을 팔고 있었다. 곧 아빠를 잃게 될 개들은 시무룩했고 여자는 그들을 데리고 갈 새 집이 필요했다. 집이라는 것은 널렸지만 돈이 부족했고, 가진 돈으로 큰 개를 키울 여건이 되는 곳을 찾기란 쉽지 않았다. 그러자 차까지 말썽이었다. 정비소에 차를 맡기고 오는데 지금 자신에서 남은 것들 중에 멀쩡한 것이 있나 궁금해졌다.
'사람도 물건도 죄다 고장이네.'
시작도 끝도 모를 불행 속에 무엇보다 심각한 것은 남자였다.
'내 슬픔을 위한 것보다 우리의 이별을 위해서 할 수 있는 일을 하자.'
여자는 자신의 슬픔을 미루었다.
다음 날, 여자는 자신이 감당할 수 있는 가장 비싼 차를 렌트했다. 나흘 치 아르바이트비에 해당하는 돈이었다. 당일 새벽예약으로 빌릴 수 있는 차량은 뚜껑이 열리는 빨간색 스포츠카였다. 마을 주차장에 차를 세우고 남자를 불렀다. 마을에 갇혀서 꼼짝도 않던 남자에게 운전석을 내어주고 여자는 어디든 가자, 고 말했다.
섬에 온 지 10년을 넘긴 남자에게 이곳은 더 이상 환상의 섬이 아니었다. 처음에는, 두 사람도 섬에 살고 있는 주민이 아닌 발길 닿는 곳마다 '들뜬 여행자'였다. 새로울 것도 궁금할 것도 없는 땅이 된 지 오래, 남자는 '자신만의 장소'로 액셀을 밟았다. 처음으로 뚜껑이 열리는 차를 타고 자신이 편안하게 숨을 쉬던 곳으로 향했다.
1100 고지를 오르는데 숲과 하늘만 남았다. 차를 멈추고 버튼을 만지자 지붕이 열리고 '뚜껑이'가 날개를 퍼덕이는 새로 변신했다. 고개를 옆으로 돌리면 '뚜껑이'가 숲을 헤엄치고, 고개를 위로 들면 '뚜껑이'가 로켓처럼 하늘로 치솟았다. 이곳은 남자와 여자가 처음 데이트를 한 날, 달이 지는 새벽까지 이야기를 나누던 곳이었다.
월평포구에 도착했다. 이곳에서 팔뚝만 한 숭어를 낚싯대가 부러지도록 잡아 올리고 둘이서 깔깔 웃어댔었다. 바닷가에 '뚜껑이'를 세우고 그날처럼 기나긴 이야기를 나누었다.
"있잖아. 뚜껑이를 '매일' 타면 행복할까?"
"매일 타면? 냄비뚜껑처럼 익숙해지겠지."
"'우리'도 너무 익숙해져 버린 걸까?"
"......"
냄비뚜껑이 아니었던 때로 돌아가는 길을 몰라서 멈추지 않고 차를 몰았다. 기분 좋은 소리도 한번 지르지 못하고 소풍이 끝날 즈음 까맣게 잊고 있던 고향을 꿈길에 다녀온 것처럼 마음에 아주 작은 불이 켜졌다.
여자는 알바 중인 민박집으로 출근했다.
'차인 주제에 지붕 있는 차(뚜껑이)는 왜 빌려서 일을 늘리길 늘려~'
변기솔을 들고 변기 앞에 앉았다. 자신의 꼴이 우스워서 웃음이 쿡 나왔다. 그날따라 오물이 덕지덕지 묻은 변기를 변기솔로 문대는데 '뚜껑이'를 타고 온종일 버텼던 눈물이 한꺼번에 터져 나왔다. 변기에 얼굴을 묻고...... 목을 놓아 우는데 눈물이 오줌 줄기처럼 변기 안으로 후드득 떨어져 오물과 한데 섞였다. 물내림 버튼을 눌렀다. '우리'라는 꿈이 변기 속으로 유유히 빠져 내려갔다.
차를 반납하고 돌아오는 길. 여자가 타고 있는 빈 버스가 정류소를 지나치며 거침없이 달린다. 승객이 기다리는 정류소에 버스가 멈추고 앞문으로 감색 옷을 입은 노인들이 차례로 오르는데 개중에 몇은 아는 얼굴들이다. 그들이 착석하고 여자가 운전석 위의 거울을 본다. 그 순간 승객들이 인상을 쓰고 여자 쪽으로 다가온다.
나의 반려인간에게.
상처로 얼룩진 곳은 기억하지 말고요, 고향을 떠올려요. 당신이 나를 만지고 안거나 달릴 때 나는 고향에 있어요. 그 '상태'가 나의 고향이 되지요. 나의 고향은 그런 것이에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