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하의 쓰레기 같은 놈과 세상 불쌍한 년

[호구] 2부 8화 _우리집 반려인간의 20년 호구 인생사

by 조해야 Johaeya



내 앞에서 고양이가 죽은 거야?



남자가 자신의 발 앞에 까무러쳐 있는 고양이를 얼빠지게 본다. 네 발로 걸어온 것이 아니라 갑자기 하늘에서 날아든 운석처럼 흙에 콕 박힌 모양으로 흔들림 없이 뒤집고 누웠는데. 남자가 고양이를 향해 손을 뻗으려는 찰나 삼색털을 입은 고양이가 지그시 실눈을 뜨고 남자를 본다. 그리고 아무 일 없는 얼굴을 하고 다시 총총 제 갈길을 간다.


"쟤 뭐야?"


여자는 방금 자신들에게 앞에 떨어졌다가 굴러가는 것이 고양이인지 아닌지도 헷갈리는데. 또다시 고양이가 가던 길을 멈추고 발라당 남자 앞에서 자빠진다. 숨은 쉬는지 들리지가 않고 심장은 뛰는지 수북한 털 때문에 분간이 어렵다. 눈이라도 까집을까, 남자의 손이 고양이의 얼굴을 맴도는 순간, 이번에는 고양이가 번쩍! 큰 눈을 뜬다.



"악."



고양이와 눈을 맞추고 놀란 남자가 고함을 지른다. 그리고 고양이는 또... 다시... 유유히 길을 걷다가 남자의 앞에서 넘어지기를 반복하는데. 그 모습에 둘은 웃음과 눈물이 동시에 터지고 만다.



'나 잡아가~~~라.'



고양이는 발라당과 해까닥의 연속 동작을 신들린 듯이 해내며 연못에서 쓰러지고 일어나길 반복한다. 여자의 눈에 그 몸짓은...... '오늘이' 처음이 아니어서 노련하고, '오늘은' 자신을 잡아가 줄지도 모르기에 무척 간절하면서도 하지만 매달리지는 않는다.



누군가와 관계하기 위한 고양이의 시크한 몸부림 앞에서 여자는 남자와 무너져버린 관계를 새삼 실감한다. 관계...... 자신은 아무리 해도 영리하게 사랑할 줄을 몰라서 늘 호구처럼 절절매기만 했다.






두 사람의 이별 소식이 주변으로 번지자 여자에게 위로가 쏟아졌다.


"그깟 놈이랑 잘 헤어졌어."



"더 좋은 사람 만날 수 있는 기회야."


"아무 일도 아니라는 걸 더 나이 들면 알게 될 거야."


"혼인신고도 안 했고, 아이도 없으니 얼마나 다행이니."


"개들은 어떡하려고? 이참에 어디 보내버려."



지인들은 먹을 것과 입을 것을 날라 가며 슬픔에 절은 여자를 걱정했다. 여자는 그들에게 안겨서 그동안 마을에서 겪었던 불행과 남자와 헤어진 일에 대해 쏟아냈다. 조금씩 덜어지던 슬픔이 어느 순간 남지 않았을 때 남자와 여자는 '천하의 쓰레기 같은 놈과 세상 불쌍한 년'이 되어 그들의 입에서 새로운 이야기로 태어나고 있었다.






연애, 결혼, 이혼 그리고 다시 연애를 하고 나니 여자는 어느덧 40대가 되었다. 그사이 빡빡한 도시에서의 삶과 결혼생활을 청산했고 살고 싶은 섬으로 왔다. 유일한 위자료였던 '절망'을 꽉 움켜쥐고서 남은 빚을 털어냈고, 전남편이 버린 '선물'이었던 개 한 마리와 의기투합해서 하루하루를 지냈다.



전남편이 이혼을 원하는 순간 그의 집안의 빚을 대신 상환하기 위해 애쓴 노력은 헛수고가 되었고, 명의를 빌려준 탓에 이름은 지저분해졌으며 30대라는 시간은 송두리째 뽑혀 사라지고 없었다. 그는 자신의 뒤통수를 친 아버지를 닮을까 봐 아이를 거부했다. 빚을 갚아 나가기에도 벅찬 현실이라서 여자도 같은 생각이었다.



빈털터리가 되어 섬에 오던 날, 자신이 살아낸 모든 날들을 하늘이 부정하는 것만 같았다. 그러나 한 때 사랑을 주고받은 이에게 자신이 할 수 있는 일을 다했으니 그것으로 되었다고 생각했다. 자기만 스스로를 멍청이라고 여기지 않으면 타인의 혀 차는 소리는 얼마든지 들을 수 있었다. 다만 반복하고 싶지 않았다. 또다시 이짓을 되풀이한다면 그때야 말로 '진짜 호구'라고 생각했다.






나의 코골이를 자장가 삼아서 함께 자 줘.
나를 위해 요리를 해주고 아, 냉장고에는
항상 먹을 것이 가득했으면 좋겠어.



이혼을 하고 섬에서 함께 지낸 마지막 남자는 자신의 코 고는 소리 때문에 각방을 쓰는 것을 못마땅해했다. 자신의 코골이를 여자가 받아 주기를 바랐다. 여자는 노력했지만 잠귀가 밝고 예민한 성향이라 소용이 없었다. 수면 시간이 적고 아침형 인간인 남자는 낮에는 개인 활동을 마치고 저녁 시간은 여자와 함께 보내길 원했지만 여자는 그 반대였다.



개인 공간 확보, 수면의 질 향상 등 오히려 각방 살이를 선호하는 여자를 남자는 당최 이해하기가 어려웠다. 여자에게는 (수고를 나누자는 의미로) 요리한 사람과 설거지하는 사람이 달라야 했고, 남자에게는 요리한 사람이 설거지까지 하는 것이 익숙했다. 평생 엄마와 할머니가 손수 만든 음식을 먹고 자란 남자에게 무엇보다 '여자'라는 이미지는 자신에게 먹을 것을 차려주는 존재였다.



"애인이 아니라 식모가 필요한 거야?"



여자는 자신의 수고를 남자가 당연히 여기면 서운하고 화가 났다. 그러면 남자는 여자보다 뛰어난 요리와 청소 능력을 발휘하며 얼마간 여자의 입을 막았다.

세상 가부장적인 말로 여자에게 상처를 주고, 개방적인 행동으로 자유연애를 떠들었다. 그것을 여자가 따지고 들면 '그냥 해본 말이야', '그런 게 있어' 라며 여자를 어린애 취급했다.



20대 초반에 아이를 키워낸 남자에게 또 아이를 낳고 기르는 삶은 그가 전혀 갈망하는 것이 아니었다. 책임을 늘리지 않고 지금의 자유를 유지하는 일이 그에게는 가장 중요했다.

어느새 출산 적령기가 지나고 여자는 그동안 자신이 진심으로 아이를 원하지 않았는지 되돌아봤다. 가슴은 원했고, 머리는 원하지 않았다. 사랑하는 사람과의 아이는 결국 연에 닿지 않았지만 그래서 억울하기도 다행이기도 했다.



'진짜 호구'가 또 한 번 이별을 지나고 있었다. 이번에는 작은 개에다가 떠돌이 개까지 합세했다. 여자는 한 인간을 견딜 수 있을 때까지 이해해 볼 참이었다. 비극에 맞고 쓰러져도 최선을 다해 이별을 마무리해야, 그게 바로 자신이었이다.






괜찮아?
괜찮아?
.
.
.
괜찮아!!!



여자를 걱정하는 마음들이 여자의 상태와 관계없이 쉬지 않고 날아들었다. 그야말로 위로가 폭죽처럼 터졌다.



"어차피 몹쓸 놈이랑 잘 됐어! 너 괜찮아?"



"이 나쁜 새끼를 그냥 확! 정말 괜찮아?"



"내가 당장 놈한테 찾아갈게! 근데 괜찮은 거야?"



'천하의 쓰레기 같은 놈과 세상 불쌍한 년'은 이제 그들의 아귀에서 떨어지는 위로를 받아먹으며 연명하는 가십거리가 되었다. 식사 한 끼, 입을 옷, 새 신발을 나눠주며 슬픔을 덜어가던 고마운 지인들이 이제는 여자의 비극을 주무르며 다른 얼굴을 하고 남자와 여자를 따로 찾아가고 있었다.



여자 앞에서는 남자를 인간쓰레기 취급하며 여자를 위로하다가, 남자에게는 웃는 얼굴로 찾아가서 술병을 바치고 협업을 제안하며 갖고 싶은 물건을 졸라댔다. 그리고 다시 여자를 불러내어 자신들이 남자에 관해 본 것을 확대하고 왜곡하며 남자를 비난하기를 이어가는 식이었다.



여자가 원망과 증오를 넘어서 남자를 '이해'하려고 죽을힘을 다할 때 그들은 아직도 극악무도한 상상 속에 두 사람을 가두고 둘의 불행이 제자리에 있는지 끊임없이 확인하려 들었다. 괜찮냐,는 질문이 더 이상 걱정으로 들리지 않았다. 괜찮지 않으면 자신들에게 큰일이라도 날 것처럼 진짜 괜찮다,는 여자의 말을 들어주지 않았다.



"저 괜찮아요. 당분간은 조용히 지낼게요."



그들은 연락을 원하지 않는 여자의 뜻에도 아랑곳없이 '위로가 되지 않는 위로'를 멈추지 않고 칼처럼 휘둘렀다. 여자는 비련의 인물, 망가진 여자, 불우 이웃이 되어 그들의 칼질에도 고개 숙여 감사를 표하고 있었다. 나누었던 슬픔이 입이 달린 괴물이 되어 여자를 더한 불행으로 처박았다.



반면, 한결같은 태도로 위로하는 이들이 있었다. 그들은 여자에게 묻거나 답하지 않았다. 헤어진 둘을 나쁜 놈과 불쌍한 년으로 가르지 않았고, 여자의 상태를 지켜보면서 여자가 스스로 일어날 때까지 처음과 같은 얼굴을 하고 기다렸다.






방식이 달랐을 뿐 점잖은 것도 위로고, 떠들썩한 것도 위로라고 했을 것이다. 하지만 지인들의 위선과 역겨운 위로에 여자의 영혼은 완전히 너덜너덜해졌다. 흩어져 있는 비극을 다시 제 품으로 주워 와야 했다. 지난번 남자와 갔던 연못에 갔다. 가을비 치고 많은 비가 쏟아졌다.



한참을 기다려도 삼색 고양이가 나타나지 않았다. 남자의 발 앞에서 속절없이 무너졌다가 도도하게 갈길을 가던 놈. '살려 주세요', 와 '살려 드릴게요', 를 동시에 말하는 것 같던 그날의 눈동자가 자꾸만 아른거려서 이후에도 여자는 혼자 연못을 찾았다. 남자와 고양이...... 어쩌면 서로를 구할지도 모를 일이었다. 남자에게 전화를 했다.



"오늘은 비를 피하고 있나 봐. 고양이를 만나지 못했어."


"실은 나도 계속 연못에 갔었어."



남자는 자신도 고양이를 보기 위해 다시 연못을 찾았다고 했다. 그럴 때마다 고양이는 남자 앞에서 전과 같은 행동(발라당과 해까닥)을 반복했다. 오늘처럼 날씨가 궂은 날에도 예외 없었다.



"놈이 너한테만 나타난 거야? 다음에는 어떡하는지 보자고."



여자는 괜히 서운한 감정이 들다가도 남자에게만 나타났다는 사실에 이상하게 위안이 든다.



"가지 마. 연못에 가도 고양이 못 만날 거야."



"왜 이래, 나 동물들이 들러붙는 스타일이거든?"



여자가 발끈하자 잠시 침묵던 남자가 입을 연다.



"고양이...... 지금 공방에 있어. 오늘 아침에 나랑 같이 왔어."



"!!!"



두 사람이 고양이를 처음 만났던 날, 남자도 고양이 생각을 떨칠 수가 없었다고 했다. 혼자 연못에 가서 고양이를 만나고 돌아오기를 계속하던 어느 날, 드라이브에 신난 개처럼 남자의 차 안으로 고양이가 폴짝 뛰어들었다. 더이상 거부할 수 없던 남자는 고양이를 공방으로 데려와서 '볕이 바로 드는 곳'이라는 뜻을 가진 이름을 주었다.






'볕이 들어오는......'



고양이의 이름을 조곤조곤 설명하는 남자의 밝은 목소리에 순간, 연못에 일렁이던 물결과 몰아치던 바람이 잦아들었다. 비를 맞고 서 있는 여자의 머리 위로 무겁게 추락하던 빗방울이 보슬가루가 되어 투명하게 연못 위를 날았다. 그때 어둠이 짙은 남자의 공방에 아주 조금씩 볕이 들고 있었다.



남자에게 찾아온 볕이 '우리에게 일어난 마지막 일'인 것 같아서 여자는 처음으로 시원하게 울음을 터뜨렸다. 이별하기 위해서 자신이 할 수 있는 일을 다한 기분이었다. 참고 참았던 여자의 눈물이 막힘 없이 쏟아졌다. 다행히 연못이 눈물을 담아주어 빗물과 한데 섞였다.



비가 그쳤다.

돌아가는 길, 만나기 어려운 가을 뭉게구름이 연못 에 흘다.




나의 반려인간에게.


한 가지 표정이 아닌 것이 인간이고 한 가지 색이 아닌 것이 세상이잖아요. 악연이 귀인을 부르거나 절망이 희망을 달고 올 수 있다고요.
나는 지금, 사랑을 각오하고 이별을 해낸 당신의 눈물이 아깝지 않다고 말하고 있어요.
볕을 안고 떠난 K






*[호구]는 총 20화로 매일 오전 10시에 업로드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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