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자의 얼굴에 눈물이 깨끗이 걷히고 나의 두 반려인간에게 달린 개들의 운명도 따라 정해졌다. 나와 첫째 동생은 여자와 함께, 지난 태풍에 외진 마을을 떠돌다가 늦게 식구가 된 둘째 동생은 남자와 남기로 했다. 들개 출신의 덩치 큰 놈이나 애정 결핍에 주의 산만한 놈이나 내게는 둘 다 부담스러운 놈들이기는 마찬가지였다. 하지만 무엇보다 앞으로 살 날이 길지 않은 내가 무지개다리를 건너는 날 남자가 없을 거라는 생각에 몹시도 슬펐다.
'처음도 아니잖아.'
과거의 일은 현재를 감당할 힘을 준다. 나는 아빠 없는 개로 사는 일을 다시 버텨낼 것이다. 두 인간과 함께할 미래는 끊겼지만 우리가 사랑했던 과거의 시간들로 삶은 이어질 것이기 때문이다.
마음에 드는 집은 돈이 턱없이 부족했고, 개 둘을 데리고 갈 만한 집이 어렵게 나타나면 집을 제대로 둘러보기도 전에 집주인이 개와 관련해서 여자에게 으름장을 놓았다. 자신도 예전에 개를 그렇게 키웠었다면서 개를 마당에 들이지 말고 집밖의 전봇대에 묶어 놓으라고 했다. 차들이 지나다니는 길에 개를 묶어 두라니. 집주인에게 여자가 할 수 있는 대답은 '포기'였다.
예산과 조건을 따졌을 때 '아주' 허름한 독채만 선택할 수 있는 상황에서 후보로 남은 집은 고장 난 보일러를 직접 새것으로 교체해야 하는 집이었다. 여자를 대신해서 집 내부를 확인하러 가 준 지인이 그 사실을 현재 살고 있는 세입자로부터 들었다고 했다. 지인의 연락을 받고 여자는 덜컥 마음이 내려앉았다. 한 겨울이었다. 보일러뿐 아니라 이것저것 헌 집을 손보면 연세(일 년치 월세)에 맞먹는 비용이 발생할 것이 뻔했다.
'연세도 저렴한데 보일러까지 해줘야 해? 싫으면 말아~'
집씩이나 소유한 사람이 개들과 오갈 데 없는 불쌍한 인간의 사정을 헤아려줄 리가 없다. 20년 셋방살이의 현실이 비수가 되어 날아들었다.
'집도 절도 없는 게 개 자식들은 뭐 하러 낳아서 이 엄동설한에 어떡할 거야. 쯧쯧.'
비아냥 거리는 목소리가 여자의 귓속에 박혔다. 그것은 다름 아닌 자신의 목소리였다. 남들처럼 대출을 받아서라도 제 이름으로 아파트를 계약하고 부동산 차익으로 자산을 불리지도 못한 인간, 빚도 재산이라는데 그 마저도 못한 제로의 인생, 그게 자신이었다.
'나만 빼고 땅 많고 빚 많은 부자들 천지야.'
자신감은 바닥을 치고 개들의 눈동자가 불안하게 흔들릴 즘에 그토록 바라던 집이 나타났다. 포기도 꾸준히 하니 그 틈에 살아날 구멍이 생겨났다.
'분명 우리 집이야.'
예산과 조건에 부합했다. 수일 내로 집주인을 만나서 계약서를 쓰기로 하고 돌아왔다. 계약금 없이 구두 계약만 마친 상태였다.
'어허, 나를 못 믿어요? 서로의 얼굴이 계약이지.'
집주인과 친분이 있다는 중개업자는 걱정은 붙들어 매라는 태도로 여자를 안심시켰다. 당연한 법적 절차를 건너뛴 것은 이번만이 아니었다. 금액이 큰 거래라면 다르겠지만 몇 백만 원 단위의 연세 집을 개인적으로 계약할 때 이런 상황은 이제 익숙했다. 옛집의 주인 어르신들에게 계약 절차와 조건을 하나하나 따져서는 안 되었다. 그러다가 까다로운 세입자 후보로 찍히면 주인이 집을 임대하지 않는 불상사가 벌어질 수도 있었다. 제 눈에 탐나는 집은 남들 눈에도 마찬가지이므로 임차 후보자는 얼마든지 널렸다는 뜻이었다.
"계약서 쓰는 날짜와 시간 정해지면 연락 주세요. 감사합니다!"
계약을 코앞에 두고 중개업자에게 연락이 왔다. 현 세입자의 변심으로 임대 여부가 불투명해졌다고 했다. 세입자가 퇴거 결정을 내릴 때까지 며칠만 더 기다려 보자던 중개업자는 일주일만, 보름만, 을 말하다가 더 이상 여자에게 연락을 하지 않았다. 포기의 마지막은 언제일까. 미리 싸 놓은 여자의 짐들이 갈 곳을 잃고 집안을 온통 차지하고 있었다.
현OO 씨를 찾아가 봐요!
끝없이 포기할 힘을 하늘에 구하던 어느 날 지인으로부터 연락이 왔다. 동네 어르신들이 모인 곳에서 빈집을 구하고 있다고 사정하니 하나같이 '현OO'이라는 사람을 찾아가라고 했다는 소식을 전해왔다. 여자는 일을 마치자마자 지인의 동네로 달려갔다.
"안녕하세요. (저희들 나쁜 사람 아니고요,) 여기가 현OO 씨 집인가요?"
경로당 근처라는 것과 집주인 이름 석 자만으로 지인과 둘이서 집을 찾기 시작했다. 오후 시간, 대부분 빈집이거나 어쩌다 인기척을 느끼고 나온 어르신은 귀가 어두운지 손사래를 쳤다. 행여 놀라실까 봐 둘은 서둘러 밖으로 나왔다. 그리고 골목을 지나는 트럭을 붙잡아 세우고 근처에 비어 있는 집을 묻고 또 물었다.
"아래로 내려가서 저쪽 골목으로 들어가 봐요."
포기의 마지막은...... '포기를 포기하지 않겠다'고 각오할 때 비로소 찾아오는 건가. 마침내 담이 높고 작은 마당이 있는 집이 생겼다.
그동안 수족관의 횟감처럼 행인들에게 관람거리가 되다가 의식이 있는 상태로 살결이 뜯겨졌었다. 드디어 마을을 탈출하는 날, 처음 이곳에 들어올 때 가졌던 것들이 여자에게는 하나도 남아 있지 않았다. 관습과 텃세에 축축하게 젖어버린 의식은 오래 마르지 않을 것처럼 질퍽거렸다. 남자는 여자의 이사를 도왔고 여자는 미련 없이 마을을 떠났다.
이사한 집의 담은 높았고, 주민들은 호객 행위를 하지 않았다. 살 것 같았다. 그런데 살 것 같은 마음이 들자 온몸이 죽을 것처럼 무너져 내렸다. 침대에 누운 채로 며칠을 앓았을까. 비처럼 흐르는 땀으로 두꺼운 이불이 젖고, 일어날 기운이 없어서 먹지도 못하다가...... 이사한 집을 누리지도 못하고 비명횡사한 여자와 그 곁에 똘망똘망한 눈으로 산책을 기다리는 개 두 마리가 천장을 떠다녔다.
'살자, 살려면 먹어야 해.'
등에 힘을 주고 늘어진 몸을 일으키니 갑자기 음식 하나가 떠올랐다. 다 죽어가는 이 생명을 구할 것 같은 고향 음식이었다. 마침 남자에게서 연락이 왔다.
"나 너무 아파. 아귀찜 먹으면 나을 것 같은데."
"돈 없어."
'아귀찜 살 돈이 없는 거야? 나한테 쓰기가 아까운 거야?'
크게 아플 때 누구로부터 보살핌을 받아 본 적도, 누구를 극진히 보살펴 본 적도 없다고 했던 남자였다. 남자는 여자의 말을 자꾸만 농담조로 받아쳤다.
한 시간이 걸려서 시내로 갔다. 차에서 식은땀을 줄줄 흘리면서 둘이 먹어도 양이 많은 아귀찜을 혼자 해치웠다. 자신을 무한히 아끼고 지지하던 남자의 옛 모습이 울컥 올라왔다. 제 몸을 으스러뜨리며 여자가 바라는 성을 지어줬었다. 이제 다시는 그럴 리가 없는 사람, 예의도 인정도 없는 이기적인 놈일 뿐이었다.
'아귀로 발갛게 싸다구를 바를까 보다. 나쁜 놈!'
말라깽이가 된 몸으로 거울 앞에 섰다.
'꼴이 좋군.'
살이 쏙 빠지니 정말, 오히려 보기가 좋아서 밖으로 나가고 싶어졌다. 손이 폰을 찾고 있다.
'안 돼. 내려놔.'
이미 '통화'를 눌러 버린 망할 손가락.
"여보세요."
오랜만인 남자의 목소리가 평소와 다르다.
"무슨 일 있어?"
"너무 아팠었어. 넌 괜찮아?"
"(아귀찜 안 사줄 때 알아봤다, 인정머리 없는 새끼야) 난 괜찮아졌어."
"그럼 밥 먹으러 갈래? 나 샤부샤부 사줘."
"(이 새끼가 진짜 누구를 호구로 아나) 응."
머리와 입술이 반대로 논다.
펄펄 끓는 육수에서 야채를 한 장씩 건질 때마다 여자는 남자를 노려보다가 뜨거운 물에 흐물흐물해진 배추로 자신의 뺨을 치는 상상을 한다.
'이 머저리 같은 것! 아귀찜은 잊은 것이냐!'
'아니, 아픈 사람이 죄가 있나... 샤부샤부가 먹고 싶대잖아...'
속 마음도 이중으로 갈라져서 서로 딴 말을 지껄인다.
식사를 마치고 여자는 남자를 앞질러서 계산대로 간다. 띠디디ㅡ 승인 결제음이 울리고 카드기는 여자를 조롱하듯 혀를 길게 빼고 영수증을 뱉어냈다.
여러분. 퍼주는 거 하지 마세요! 계산하고 전략적으로 움직이는 것이 연애입니다!
'그래서 내가 계산했잖아요?'
'이 사람아! 계산이, 그 계산이 아니잖아?'
세상은 샤부샤부 값을 계산한 여자와 같은 부류를 가리켜서 장기도 빼놓을 인간 또는 미천한 을이 되는 관계를 자처한 '호구'라고 불렀다. 세상이 말하는 현명한 관계라면 '덜' 주고, '더' 받아야 했다. 순정을 바라지만 손해를 봐서는 안 되는, 한 마디로 연애란 '남는 장사를 계산하는 일'이었다.
여자는 '계산'이라는 말이 이해되지 않았다. 사람은 누구나 조건 없이 사랑받기를 원한다. 오는 순정은 환영하고 가는 순정은 막으라니...... 풀지 못할 수학 문제를 끌어안고 있느니 여자는 호구가 되는 편이 나았다. 자신은 태초에 '영리한' 연애를 할 인간이 아니었다. '고작' 연애에 온 마음을 바쳐야만 성이 찼다. 그것은 자신을 하염없이 사랑해 주는 '무엇'과 똑 닮은 모습이었다.
그래, 순정.
두 반려인간이 세 번째 개를 처음 만난 날, 섬에는 태풍이 지나고 있었다. 하얀색 눈서리가 날리는 것처럼 털이 사방으로 휘날리던 녀석은 강풍에 휘청이며 외진 마을을 떠돌고 있었다. 그러다가 사람만 보면 무조건 달려들었다. 꼬리콥터를 장착한 엉덩이를 쉴 새 없이 좌우로 씰룩거리며 사람의 몸에 자신의 살을 구석구석 비볐다. 녀석은 쉬지 않고 누군가를 찾고 있었다. 한때 자신의 '반려인간'이었을 것이다.
차든지 사람이든지 무언가를 쫓는 시선이 너무나 강렬해서 그날의 눈동자를 1초도 잊을 수가 없었다. 자신을 버리고도 찾지 않을 존재를 '그대로인 마음으로 하염없이 기다리는 아리는 몸짓'...... 그래, 바로 순정이었다. 여자는 자신에게 무한 애정을 바치는 개들과 지내면서 점점 영혼이 그들에게 물들었다는 것을 깨달았다. 순정과 호구의 경계를 넘나들며 개처럼 사랑했던 지난날들이 한꺼번에 떠올랐다.
'네 놈들을 개 같이 사랑했었네.'
한 번 바친 마음을 거두지 않은 잘못으로 늘 남자에게 차였던 날들, 자신을 외진 곳에 버려두고 떠나는 인간을 향해 죽을힘을 다해 뒤따라가다가 매번 놓쳐 버렸다. 그리고 버려지기 싫어서 버린 척을 하고 살았다.
'이제는 내 차례야.'
정신을 차리려고 야무지게 세수를 했다. 얼굴을 닦고 수건을 걸다가 수건걸이를 붙들었다. 그리고 낮은 철봉처럼 팔만 죽 늘어뜨리고 매달려서 꺽꺽거렸다. 이번 개 같은 사랑도...... 드디어 끝이 났다.
이사한 지 한 달이 지나고 두 해만에 아주 큰 눈이 내렸다. 지붕은 흰색으로 변했고, 마당의 텃밭은 아침마다 썰고 싶은 판두부가 되었다. 무릎까지 푹푹 꺼지는 눈길을 헤치며 바닷가를 걷는데 눈발이 바람에 날려 사정없이 얼굴을 때렸다.
눈이 녹기를 기다렸다가 텃밭에 작은 묘지를 만들었다. 지금껏 사랑했던 한 놈, 한 놈을 소중히 밭에 모시고 그들과 나누었던 모든 감정을 남김없이 흙속에 묻었다.
'애지중지했던 나의 개새끼들아, 잘 가.'
창문을 모조리 잠그고, 현관문을 꼭꼭 걸었다. 불을 끄고 귀를 막고 마지막으로 자신을 가장 깊은 땅에 묻었다.
나의 반려인간에게.
나를 닮아버린 당신이 나는 너무 아파요. 우리는 이 땅에 태어나서 하염없이 순정을 하다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