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리 한 달 살기 #1
발리에서 한 달을 살았다. 발리는 세계 각국의 사람들이 모이는 관광지이지만 동남아시아 국가다. 현지인들은 관광업에 종사하지만 그 이상의 발전은 바랄 수 없는 실정이었다. 내가 넘겨짚는 걸까. 그래 현지인이 어떻든 지와 상관없이 내가 느낀 것들을 적어보겠다.
발리는 인건비가 매우 값싸서 택시도, 렌트도, 운전기사 고용도, 하우스키핑도 비싸지 않은 가격에 이용할 수 있다. 그래서 나도 10시간 동안 차와 운전기사를 렌트하는 서비스를 이용했다. 나는 이 운전기사의 시간을 돈을 주고 샀으니 내가 원하는 대로 요구사항을 들어줄 의무가 있다고 생각했다. 이러한 생각은 내가 그동안 일을 해오면서 가진 신념에서 출발했다. '돈 받은 만큼만 일한다. 내 가치는 돈으로만 매겨지는 것이다'라고 여기며 받는 돈의 가치 이상으로 서비스를 제공하지 않았다. 이렇게 생각해온 내가, 운전기사의 시간을 샀다. 나는 그에 합당한 돈을 지불했으니 그의 시간이 어떻게 사용되든 나의 요구를 따라야 한다고 믿었다. 그리고 그 순간 아차 싶었다. 이게 그렇게들 말하는 갑질인가 보다. 내가 그 갑질을 하나보다.
기사의 식사시간을 고려하지도 않았다. 내가 원하는 곳에 데려다 달라고 부탁했다. 그리고 기사는 내가 관광하는 동안 자신의 끼니를 때웠다. 어떤 음식을 먹었는지, 식사는 제대로 하셨는지, 사람을 만나면 당연히 물어야 할 안부도 묻지 않은 채 다음 행선지를 틱틱 주문했다. 마치 내비게이션에 목적지를 입력하듯. 약 여덟 시간이 지난 후 깨달았다. 나의 오만하고도 인간적이지 못한 태도를. 그리고 미안한 마음에 급히 팁이라도 챙겨 주었다. 그러나 그 팁을 주는 행위 자체에도 회의감이 들었다. 내가 뭔데, 내가 도대체 저 사람보다 나은 게 뭔데 선심 쓰듯이 돈을 얹어주는 걸까. 대체 왜 내가 더 나은 사람인 냥 굴었던 걸까. 나 같은 사람이 손에 돈을 많이 쥐게 되면 돈으로 사람의 시간을 사고, 능력을 사고 값을 지불했다며 그 이상의 것을 요구하지 않을까. 사람의 시간을 어떻게 사고 팔 수 있다고 생각했을까 내가.
한 사람이 제공하는 서비스를 샀다고 해서 그 사람의 시간을 전부 살 수는 없다. 나는 돈을 주고 그 사람이 가진 능력을 나에게 제공해달라고 부탁하는 것이다. 값을 지불했다고 해서 사람이 사람을 부릴 수는 없다. 이 깨달음을 손에 쥐고 살아야겠다. 돈 대신에.
인도네시아 사람들은 친절했고 밝았고 엄청난 친화력을 가지고 있었다. 내가 만약 그 나라의 사람이었다면 그렇게까지 밝은 미소로 관광객들을 맞이하지 못했을 것이다. 자신들보다 확연하게 다른 경제관념을 가진 사람들만 그득그득. 극복할 수 없는 국가적 차원의 차이를 눈으로 확인하며 절망감에 휩싸여 살진 않았을까. 그들을 보며 비교하고 나의 삶이 낫다느니 하는 따위의 상대적 행복을 찾자는 것이 아니다. 단지 복잡했을 뿐이다. 여행을 하면서 설명할 수 없는 감정들로 어지러웠다. 온갖 국적의 사람들이 모두 한 데 모여 어우러진다. 돈을 쓰는 사람은 어떤 사람의 시간을 사고, 돈을 벌려는 사람은 자신의 시간을 돈과 맞바꾼다. 전자는 대부분 여행자이자 경제적 여유가 있는 사람들, 후자는 대부분 그곳의 주민들이었다. 마치 쓰는 사람과 버는 사람은 전복될 수 없는 평행 선상에서 따로 제 갈 길을 가듯이. 원래 세상은 이렇게 돌아가는 건가. 왜 주민들은 여행자들의 침범에 불평 하나 하지 않는 걸까. 관광업 발전이 자신들의 생계업이기 때문에?
돈을 소비하는 여행자들이 마치 그 지역 전체를 휘두르는 것처럼 활개를 치는 모습이 마냥 좋게만 느껴지지는 않았다. 이런 후기를 남기면 대부분 나에게 왜 이렇게 꼬였냐고, 불편한 것이 왜 그렇게 많냐고들 할 테지. 고작 돈 한 푼 없는 대학생 주제에 이렇게나 심오한 문제를 생각하고 있다는 사실 자체가 우습기도 할 것이다. 하지만 분명히 명시하고 싶었다. 나의 발리 한 달 살기는 참으로 여유롭고 즐거웠지만, 마냥 즐겁다고 말하기엔 그곳의 모순은 분명히 있었음을.
시간이 지날수록 좋은 기억만이 남는다. 불편한 감정들은 잠깐 스쳐 지나갈 뿐이다. 그러니 기록해놓지 않으면 발전이나 반성 없이 그저 좋은 생각만 하는 어른이 되겠지. 나는 좋은 생각만 하는 어른보다, 좋은 어른이 되고 싶다. 해서 철없이 좋아하고 즐겼던 한 달의 평화를 풀어내기 전에, 나의 허점과 불편을 먼저 적어 보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