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리 한 달 살기 #2
점점 편한 게 좋다. 도전하고 싶지 않다. 열정이 사그라드는 이 느낌이 싫다. 체력도 현저히 떨어졌다. 운동을 해야 하는데 발리에 오면 열심히 운동을 하려 했는데. 생각보다 운동하기 좋은 환경도 아니다.
나는 여행을 좋아한다. 많은 것을 보고 느끼고 싶어 한다. 도전을 두려워하지 않는다. 새로운 것에 현혹된다. 자연을 사랑한다. 여유를 즐긴다. 견문을 넓히고자 하는 욕구가 있다. 영감을 받고 싶다. 욕심이 많다. 하고 싶은 것도 많다.
하지만 안정을 취하고 싶다. 체력이 떨어진다. 쉬고 싶다. 쉽게 지친다. 지겨워진다. 자연은 흔하디 흔한 것일지도 모른다. 아무것도 하고 싶지 않다.
열정이 사그라들고 있다. 가슴속에 있던 불덩이 같은 것이 식고 있다. 세상에 대한 욕망이랄까, 경험에 대한 호기심 같은 것들이 죽어 든다. 내가 어떤 사람인 지 누구보다 잘 알고 있다. 그런데도 뭘 하고 싶은 지 아직 모르겠다. 무엇을 바라는지 어떤 것을 갈망하는지 모르겠다. 점점 열정만 사라지고 순수함을 잃어간다. 익숙한 것만을 찾게 된다. 도전을 꺼려하는 내 모습이 싫다. 고집만 세지는 건 아닐까.
끊임없이 돌아봐야겠다. 반성해야겠다. 내가 고리타분해지지는 않았는지. 고집불통 답답한 사람이 되지는 않았는지. 발전하고 싶다. 그렇지 않으면 사는 의미가 없다. 아직 사회로 본격적으로 나가지도 않았음에도 두려워하고 있다. 무엇이 이리도 두려운 지 알 수도 없다.
오지 않을 걸 하는 후회도 조금씩 생긴다. 그 이유는 첫째로 돈을 잃어서. 둘째로 그다지 즐겁지 않아서. 셋째로 이를 선택함으로써 잃은 것이 떠올라서. 아니 사실 내가 이런 여유를 부려도 될까 하는 일종의 자기 검열 때문에, 편히 쉴 수가 없다.
그래. 오늘은 선글라스 쇼핑을 가야지. 14일 체크아웃이다. 내일은 스미냑에 어떻게 갈지 꼭 마무리지어야 한다. 가고 싶은 곳이 많지만 굳이 꼭 가지는 않아도 될 것 같다. 괜찮은 펍을 찾아야겠다. 펍에서 주스를 마시며 음악이나 들어야지. 하고 싶은 공부를 하고 책을 읽고 글만 정리해도 어쩌면 괜찮은 여행이 될지도 모른다. 그리고 출사를 가야지. 사진만 찍어가도 좋은 여행이다. 필름을 파는 곳을 찾아야겠다.
저 순간의 나와 지금의 나는 다르지 않다. 여전히 걱정이 가득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