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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조하 Jun 18. 2020

포기는 빠를수록 좋다.

델프 시험 도전기 #2

 우선, 무사히 응시료를 지켜낸 나에게 감사인사를 전한다. 23만 원. 무시무시한 응시료가 필요한 프랑스어 델프 시험에서 합격을 단기간에 이뤄낸 덕에 이렇게 기쁘게 글을 다시 쓸 수 있게 되었다. 스스로에게 심심한 감사를 전하며 시험에 관한 이야기를 해보려 한다.     


 프랑스어 능력을 테스트하는 delf 시험은 1년에 딱 3번의 기회가 주어진다. 청해, 독해, 작문 그리고 구술시험을 이틀에 걸쳐 통과해야 하는 시험이다. 각 파트별로 25점의 배점으로 구성되어 있고, 50점만 넘어도 합격증이 주어진다. 절반의 점수만 얻어도 합격이니 만만하게 보이기도 하지만, 사람과 직접 대면하여 구술 테스트를 해야 하고 에세이나 칼럼 등을 작성해야 하니 그리 호락호락하지는 않다. 꽤나 많은 것들을 준비해야 하는 것이 여간 성가신 것이 아니다. 응시료는 수준별로 다르지만, 평균 20만 원이다. 첨삭을 받아야 하기에 응시료가 만만치 않은 것이라 추측하고 있다. 인간이 채점하는 시스템이기에 돈이 그렇게 많이 들어갈 수밖에 없나 보다 하고, 고가의 응시료에 대한 화를 가라앉혀야 한다.

      

 나는 정말 아주 단기간을 투자한 벼락공부를 했다. 학원을 8회 출석했고, 문제집 한 권을 풀었으며, 2회 분량의 기출문제를 풀었다. 소요한 기간은 약 한 달 정도 될 것이다. 물론 나는 프랑스어과에 재학 중이기에 불어가 조금 익숙하다는 점이 유리했지만, 사실 크게 도움되지는 않았다. 평소에 전공 공부를 정말 소홀히 했고 학교에서의 공부와는 아주 다른 방향으로 학습해야 했기 때문이다. 불어 실력을 높이려는 것이 아닌, ‘자격증을 따기 위한 공부’가 필요했기 때문이다. 그 자격증에 초첨이 맞춰져 있는 벼락치기 공부 과정은 다음과 같았다.     


 제일 문제가 된 것은 청해였다. 영어도 그렇듯이, 대화할 때의 이해 수준과 시험문제를 풀 때 이해 수준은 크게 다르다. 원어민 교수님의 말씀은 80% 정도 이해 가능했지만 청해를 위한 녹음파일은 30% 이해하기도 버거웠다. 녹음파일 속 원어민들은 나를 위해 천천히 말해주지도 않았고, 심지어 문제 풀이를 위해 지문을 읽어가며 들어야 했으니 말이다. 시험 직전까지 문제집에 있는 청해 문제를 정말 열심히 풀었더니, 공부 막바지에는 75% 정도는 이해하는 수준에 금방 도달했다. 그러나 이러한 결과는 문제풀이에 익숙해진 것이지 내 듣기 실력이 드라마틱한 성장을 이룬 것이 아니었다. 그럼에도 나는 성장한(것이라 믿은) 내 불어 듣기 실력을 굳게 믿고 당당하게 시험장으로 들어섰다. 안타깝게도 시험 당일, 단 하나도 알아듣지 못해 찍기에 급급했다. 익숙하지 않은 환경, 스피커를 통해 듣는 녹음 파일, 시험이 주는 압박감이나 긴장감 등 다양한 요소들이 나를 방해했기 때문이다. 무엇보다 나는 듣기 실력이 탄탄하지 못했으니, 그 다양한 요소들에 맥없이 무너져버렸다. 그리하여 청해 성적은 처참한 점수로 되돌아왔다.


 프랑스어를 듣다 보면 화가 치밀어 오르는 순간이 적지 않다. 비슷한 발음이 너무 많고, 단어와 단어를 연결 지어 발음해서 다른 뜻으로 착각하게 되기 때문이다. 사실 이는 화가 나는 정도가 아니고 소위 말해 빡이 치는데, 예를 들어보겠다. 


프랑스어로 2는 deux, 12는 douze 이다. 

프랑스어는 liason이라고, 우리가 원어민을 [워너민]으로 발음하듯이 연결해서 발음한다. 

시간이라는 뜻인 heure와 함께 쓰이면 

deux[dø]가 뒤에 heures[œːʀ]와 연음이 되고 [드죄흐]로 발음된다. 

douze[duːz] heures [두죄흐]와 헷갈리기 십상이다. 

두죄흐와 드죄흐. 헷갈리라고 만든 단어인가 싶기도 하다.


 대화상에서 이런 문제가 생기면, 2시인지 12시인지 물어보면 될 일이다. 하지만 시험에서는, 그냥 틀리는 것이다. 헷갈리는 순간 이미 그 문제는 내 손을 떠났다. 

 내가 내린 결론은, 이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방법은 없다는 것이다. 원어민도 아니고, 불어권 국가에서 살아 본 적이 있는 것도 아닌데, 그들만의 언어를 어떻게 이해하겠는가. 그래서 깔끔히 포기했다. 내가 포용할 수 없는 수준의 발음을 들으려고 애쓰는 것보다는 해당 지문의 맥락을 파악하고 그와 가장 가까운 답을 고르는 것이 훨씬 적중률이 높다. 


 선택과 집중, 무언가를 과감히 포기하고 가능성 높은 것에 집중하는 것도 좋은 전략이라고 생각한다. 청해 공부를 소홀히 하지는 않았지만, 크게 스트레스받지 않았다. 과락만 면하자는 생각으로, 지문의 맥락을 이해하려고만 노력했다. 그리하여 정말, 과락만을 면한 점수를 얻었다. 어디 가서 내놓을 수도 없는, 자랑하지 못하는 점수를 얻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합격증을 받았지 않은가. 패기 넘치게 청해를 포기하고, 독해를 선택 했기에 가능했다고 생각한다. 


  포기에는 용기가 필요하다. 우리는 모두 포기하지 않도록 사는 삶을 은연중에 우선하고 있기 때문이다. '포기는 배추 셀 때나 하는 말이다.', '끝날 때까지 끝난 것이 아니다.', '실패는 성공의 어머니' 등의 진부한 명언들만 봐도 그렇다. 실패해도 다시 일어나 도전하고, 끝까지 끈기 있게 도전할 것을 종용하는 내용의 명언들이 차고 넘치지 않나. 그렇기에 포기를 위해서, 이 모든 통상적 관념을 뒤엎을 용기가 필요하다. 

 포기를 하지 않게 만드는 끈기, 그 끈기가 길어지면 미련이다. 포기할 용기가 없어서 미련을 끈기로 포장하는 것일지도 모른다. 허울만 남은 미련으로 전략조차 세우지 못한 채 새로운 기회를 놓쳐버릴 수도 있다. 그러니 가능성이 없는 것에 시간을 투자하기보다는, 포기할 것을 누구보다 빠르게 포기해버리는 것이 어쩌면 원하는 것을 얻기 위한 더욱 효율적인 방법이 아닐까. 


*절대적인 주관적 의견입니다. 끈기로 성공하는 사람도 있을 테니까요. 존경합니다. -의지박약 인간 올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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