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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조하 May 28. 2021

서울드림

수도권공화국에서 살아남기

뭐 하나 부족하게 살지는 않지만 그렇다고 뭐 하나 뛰어난 것 없이 사는 것이, 유쾌하지도 않다. 원대한 꿈과 포부, 높은 이상과 목표를 갖고 사는 나로서는 이 구질구질한 현실로 인해 내가 원래 이 세상 사람이 아녔을 거란 망상에 다다르게 한다.

사랑을 갖지 못하면 돈이라도 가질 것을, 돈이 없으면 재능과 능력이라도 탄탄할 것을, 그렇지 못하면 외면이라도 뛰어날 것을, 그도 아니라면 주변에서 끊임없는 사랑과 관심을 발견하기라도 해야지..


원하는 직장도 원했던 가정의 형태도 바라던 사랑도 갈망했던 나의 모습도 그 하나도 이루지 못했다. 아직 이십대라지만 어느덧 치기부리던 이십대도 끝이 다가온다.

나는 방금 아빠에게 6개월치 월세를 부탁했고, 차마 나에게 보낸 288만 원의 돈이 아빠의 이 빠진 자리를 메꿀 돈은 아니겠지 하고 묻지 못했다. 다음 달에 임플란트를 하러 가려 모아둔 돈은 아니냐고 아빠의 가짜 치아 대신 내 집을 아득바득 유지할 수 있게 한 것은 아니냐고 차마 묻지 못했다. 

대신 다음 집은 반드시 무슨 일이 있어도 내가 마련하겠다고, 사실 아빠는 믿지도 않을 말을 애교를 억지로 묻혀 말했다.


그만하고 싶다. 이 지긋지긋한 서울생활이 끝났으면 좋겠다. 5평도 되지 않는 곳에서 면접을 보겠다고 올라온 동생에게 며칠 부대꼈다고 면박을 주었다. 당연히도 또, 살벌하게 싸웠다. 사소한 것에서 시작한 말다툼이 갖고 있던 불만으로 이어졌다. 동생은 나를 왜 이렇게나 싫어할까 갑작스런 서운함에 동생자식이 미웠다. 그래 봐야 처지는 비슷한데 왜 살갑게 붙어살지 못하는지.. 너나 나나 아등바등 사는 꼴이 참 우습지 않니? 


집을 박차고 나와 걷는데, 도로는 왜 그렇게 넓은지 차는 왜 그렇게나 많은지 시끄러워 머리가 지끈거렸다.  정말 정신이 아득할 정도로 시끄러웠다. 제발 조용한 곳을 찾자는 마음으로 한참을 걸었다. 결국 찾지 못하고 거지 같은 내 체력을 탓하며 빵이라도 맛있는 카페를 찾았다. 내일 나는 또 통장 잔액을 보고 공포에 떨겠지만 지금은 빵을 먹어야겠다. 내가 우울한 내 기분을 다스리기 위한 빵 하나 먹지 못하면 이게 무슨 삶인가 하는 인생에 대한 근본적인 회의감이 들었다. 꽤나 장발장에게 이입한 감정이 피어올랐다. 장발장은 먹여 살릴 식솔들이라도 있었지 나는 나 한 몸인데 뭐 이렇게 힘들지.


나는 다른 내가 되고 싶었던 것이 아니다. 드라마틱하게 숨겨진 재벌 2세라든가, 갑작스레 경국지색의 미인이 되어 새로운 인생을 산다든가, 일확천금을 얻는다든가, 뭐 그런 드라마를 원하는 게 아니다. 그저 지금보다 몇 만 원 치만 나은 인생을 살고 싶은 것일 뿐이다. 내가 꿈꾸는 직업에 한 발짝만 다가갈 수 있었으면, 월세를 살아도 방 하나만 있는 월셋집에 살았으면, 조금만 더 건강했으면, 부모님이 평안했으면.. 그게 그렇게 힘든가. 


나는 서울을 떠날 수 없다. 극악무도한 도시에서 사는 것을 포기하고, 고향에서 적당히 산다면 내 상황은 다방면에서 분명 나아질 것이다. 그럼에도 나는 서울에 남는다. 원하는 일자리가 모두 서울에 있기 때문이다. 어쩌면 내 고향에도 있겠지만, 그거랑 그거랑 다르지 인마..!!... 대학도 야심 차게 서울로 올라와 다녔는데, 그 고생이 억울해서라도 버티고 싶다. 내려가면 마치 서울살이 견디지 못한 나약한 인간이 되는 것만 같다. 무지막지한 성공을 이룰 거라 다짐했던 내 서울드림이 여기서 끝날 수는 없다. 그런 미련 탓에 오늘도 나는, 바득바득 구천을 떠도는 귀신마냥 서울 거리를 떠돌아다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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