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앉은 김에 똥싼다

속담) 호강에 겨워 요강에 똥싼다

by 애셋요한

■ 습관처럼 넘는 선, 타성처럼 내뱉는 말


“아빠, 나 오줌만 쌀게.”

산책할겸 나온 공원에서 쌍둥이 중 막내 아들이 변기에

앉으며 분명히 말했고 나는 방심했다.

잠시 눈을 돌려 다른 쌍둥이 누나를 챙기고 돌아오니,

변기 위에 앉은 아이의 표정이 미묘했다.


“어… 근데 똥도 나왔어.”

그때부터 나는 옆칸과 근처 폄의점까지 휴지를 구하기

위해 이리저리 뛰어다니느라 정신이 없었다.

‘앉은 김에 똥싼다’는 말이

이렇게 직관적으로 이해된 적이 또 있었을까.




사람은 편한 자세에 익숙해지면, 자기도 모르게

선을 넘는다. 처음엔 우연이었다고 말하지만,

그건 결국 몸이 기억하고 있는 패턴이다.

육아에서 그런 모습을 자주 본다.


“잠깐 누워 쉬고 바로 숙제할게”라고 했던 큰아이는

결국 쌍둥이 숙제를 돌봐주느라 신경을 못쓰는 사이

거의 두 시간 동안 소파에 묻혀 있고,

같은 방 쓰는 형제는 “조금만 더 얘기하고 잘게요”

하더니 방에서 떠들다가 밤 11시가 되도록 떠들다

강제 분리조치 되기가 일쑤다.


익숙함은 타성이 되고, 타성은 무책임으로 연결된다.


회사에서도 비슷했다.

팀의 반복적인 일상에 어느 순간 업무 전가가 늘었다.

“이건 원래 그 사람이 하던 거니까…”

처음엔 업무 분장이었고, 그 다음엔 책임 전가였고,

이젠 ‘방치’가 되었다.


그리고 어느 날,

평소 전결로 처리하던 일의 책임소재가 문제시 되자

다들 모르쇠로 일관하였다.

“그냥... 앉은 김에 계속 맡았던 거지 뭐.”

우리는 종종 ‘편함’을 이유로 해야 할 것도 안 하고,

하지 말아야 할 것도 해버린다.


기저귀를 갈다 보면, 똥인지 오줌인지 모를 정도로

엉덩이에 익숙하게 묻어 있는 흔적이 있다.

처음에는 예민하게 닦고 또 닦았지만,

지나면서 나도 모르게

“이 정도면 됐지 뭐…” 하고 넘기곤 했다.

그건 게으름이 아니라,

무감각의 시작이다.

시스템은 반복에 최적화되어 있지만, 인간은 반복에

둔감해진다. 그 순간, 판단력도 윤리도 흐려진다.

회사에서, 가정에서, 그리고 내 마음속에서.




공원 화장실로 돌아와 휴지를 전해주며

아이에게 말해줬다.

“오줌 싸러 앉았다가 똥까지 쌀 수는 있어.

그런데 그게 늘 당연하다고 생각되면 안 돼.”

그 말은 나 자신에게도 들려주는 말이었다.

삶에서 무언가가 너무 익숙해질 때,

나는 스스로에게 물어봐야 한다.

“지금, 내가 넘지 말아야 할 선을 편하다는 이유로

넘고 있진 않나?”

'나는 성실과 신독(愼獨)을 견지하고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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