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상은 했지만.. 결국 나다 싶으면 손을 들게 된다.
■ 언제나처럼 내 의도와 상관없이 일은 커졌다.
“아빠, 우리 반 장기자랑하는데 도와줄 수 있어?”
큰 아이가 조심스레 말했다.
“당연히 도와줘야지!”
그게 그토록 큰 일이 될 줄은 몰랐다.
처음엔 반 아이들의 춤 안무만 봐주기로 했던 것이,
다들 수줍어해서 결국 내가 직접 시범을 보이게 됐고,
급기야 가사가 안 외워지는 친구들을 대신해
노래까지 직접 불러가면 연습을 같이했다.
발표 당 일, 결국 안무를 못외우는 아이들이 볼 수 있도록
나는 무대 맞은편에 아이들의 시선을 받으며 춤을 췄다.
음악에 맞춰 손을 흔들고, 어색하게 골반을 튕기며,
“이게… 내가 하려던 게 맞나?”
정신이 유체에서 이탈되고 있었다.
하지만 나의 마음과는 상관없이 아이들과 학부모들의
웃음이 터졌고, 박수가 쏟아졌다.나는 깨달았다.
이건 피할 수 없는 ‘눈물의 똥꼬쇼’다.
또 한 번의 사건은 가족 체육 시간이 커져버린 사건이다.
세 아이가 운동에 흥미를 잃지 않게 해주고 싶어
집에서 비눗방울, 릴레이 2인3각, 사격 등을 엮어서
동네 공원에서 놀아주었는데, 피리부는 사나이 마냥
아이들이 모여들어 단체 게임을 진행했었다.
그게 입소문이 나서 같은 반 학부모들 사이에 화자되었고,
그해 코로나는 소강되어 규제상의 문제가 없었음에도
학교에서는 운동회가 없다는 소식에 실망한 아내에게
“몇 명 정도 모아서 공원에서 하루 노는 건 문제 없어.”
라고 말을 해버렸다. 그 결과,
자체적인 큰 아이 학급 체육행사를 내가 기획하고
진행하게 되었다. 장소 섭외, 종목 구성, 진행 역할, 심지어
상품 포장까지… 나는 어느새 운동회 총감독이
되어 있었다. 그날, 나는 호각을 들고 뛰어다니며
달리기 출발선에서 호루라기를 불고,
보물찾기 땐, 다른 학부모들에게 각 지점마다 안전 및 규칙
지시를 하며 다시 한 번 정신과 육체의 분리를 경험했다.
이건 계획된 게 아니었다.
그저 말한마디 내뱉었다가, 어느새 눈물의 똥꼬쑈 중심에
서 있게 되었다.
살다 보면 그런 순간이 있다.
살짝만 도와주려던 일이
모든 책임을 지는 구조로 바뀌고,
뒤로 빠지려던 내가 무대 한가운데에 서게 되는 순간.
회사에서도 그랬다.
“이건 이렇게 하면 좋지 않을까요?”
회의 중 내뱉은 한마디가 그 프로젝트의 방향을 바꿨고,
결국엔 기획자, 추진자, 책임자 모두 내가 되어 있었다.
하지만 처음으로 업무에 AI를 사용하면서 나도 발전하는
계기가 되기도 했다. 회사에서는 그런 상황이 기회가
될 가능성도 있다. 하지만 반대로 긁어 부스럼을 만들어
괜히 나서기만 한다는 위험도 감수해야 한다.
이 모든 것이 그래도 내가 결정한 것이니
이왕 하기로한거 제대로 해보자고 하는 건 어쩔수 없는
내 '지팔지꼰' 성격인 것 같다.
오늘도 아내는 쌍둥이 산후조리원 모임에서 펜션을 얻어
놀러가기로 했다면서 말한다.
“자기, 펜션에서 아이들 운동회 해줄수 있겠어?”
나는 말없이 물을 한 잔을마시고, 자리에서 일어나
차 트렁크에 운동회 박스를 챙겨 넣는다.
그리고 생각한다.
'그래. 오늘도 눈물의 똥꼬쇼 할 사람은 나다.'
여러분의 공감(♥)은 큰 힘이 됩니다. 여러분의
‘눈물의 똥꼬쇼’은 언제였는지도 댓글로 들려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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