찐따가 되어버린, 모든 것이 엉망이 되어버린 날
“영어 숙제 안 가져갔대.”
하루가 시작되기도 전, 아내의 목소리는 살짝 떨려 있었다.
그 말은 곧 이어질 질문을 의미한다.
“당신이 확인 안 했어?”
사실 전날 밤, 나는 아이 셋을 씻기고, 급식 준비물을 챙기고,
둘째와 장난치다가 삐져서 우는 막내를 달래다가 그 숙제
까지는 생각 못 했다.
“나도 회의 준비하느라 정신없었어.”
그 말이 끝나자마자, 서로의 눈빛이 날카롭게 부딪쳤다.
우리는 안다. 누가 더 바쁜지 따질 수도 없고, 누구 하나 책임지라고 몰아세울 수도 없다는 걸.
하지만 현실은 다르다. 소소한 피로가 쌓이고, 감정의 쪽문
이 열린다.
“당신은 맨날 잊잖아.”
“당신도 애한테 똑같이 실수했잖아.”
그날 아침, 우리는 ‘육아 잘하는 부모’도, ‘커리어 지키는 성인’도 아니었다. 그저 마음에도 없는 말로 상처를 주고,
알면서도 서운한 마음으로 뒤돌아선 똥꼬스런 부부였다.
며칠 뒤, 회사 인사 발표가 났다. 나는 그 프로젝트에서
빠졌고, 팀장은 말했다.
“이번엔 새로운 팀 분위기 차원에서 외부에서 왔어.”
그 말은 곧, ‘이번엔 너 아니야’라는 뜻이었다.
말은 부드러웠지만, 내 능력이 부족한 것 같고, 나는 지금
하찮은 똥꼬가 되어버린 것 같은 서러움에 뒷골이 띵했다.
돌아오는 길, 아내에게도 비슷한 소식이 왔다. 팀장이 되지
못했다는 것.
“애 셋 키우는 사람한테는 좀 벅찰 것 같다고 하더라…”
우린 웃지도 울지도 못한 채, 나란히 소파에 앉았다.
소파에는 과자 부스러기, 바닥엔 양말 한 짝, 거실 한켠엔
아이들의 색연필 뚜껑들이 굴러다니고 있었다.
“우리... 육아도, 일도, 제대로 못하는 거 같지 않아?”
나는 그 말을 꺼내면서, 눈시울이 뜨거워졌다.
아내는 말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조용히 내 어깨에
머리를 기댔다. 그 순간,
마치 무대 위의 두 광대처럼, 우리는 소리도 없이 부둥켜
안고 속으로 울었다. 말로는 설명할 수 없는 서러움과
누구에게 하소연할 수도 없는 '존재의 가벼움'이 눈물로
뚝뚝 흘러내렸다.
그때, 막내가 다가왔다. 쭈뼜거리면서 조용히 말했다.
“아빠, 나, 방구끼다가 똥 쌌어.”
우린 동시에 아이를 바라봤다. 아이의 눈에는 눈물이 고여
있었고, 벗지도 입지도 못한 속옷엔 살짝 묻은 무언가가 있었다. 그리고 그 순간정말 말 그대로, ‘똥꼬들의 눈물쇼’가
펼쳐졌다. 아내와 낟는 울고, 아이도 울고, 이유도, 원인도
서로 달랐지만 그 자리에 있는 모든 똥꼬들은 각자 사연을
가진 무너진 하루 앞에 조용히 눈물을 흘리고 있었다.
삶이란 이런 날도 있는 것이다. 내가 똥을 싸지르는 똥꼬가
되었어도 누군가는 나를 필요하다는 것을 깨닫는 하루.
그날 밤, 나는 아이의 속옷을 정리하며 생각했다.
우리는 어쩌면 모두 잠재적 똥꼬 같은 존재들일지도 모른다.
때로는 실수하고, 터지고, 서로에게 냄새를 남기지만
그래도 결국 서로를 안아주고, 같이 살아가는 사람들.
내일도 회사는 나를 기다리지 않을 것이고, 나의 서러움
따위는 아랑곳하지 않고 일을 던질 것이다.
아이들은 또다시 싸우고, 숙제를 잊을 것이다.
하지만 오늘, 이 똥꼬의 눈물 쇼를 함께한 우리는 조금 더
단단한 가족이 되었을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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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물쑈’ 주인공인 적은 언제였는지도 댓글로 들려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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