타이밍과 장소, 그리고 품위를 지키는 기술
쌍둥이가 기저귀를 떼고 얼마 지나지 않았을 무렵, 아이 셋을
데리고 동네 수영장에 갔다. 크게 두 가지를 후회했다.
하나는, 세 아이를 동시에 수영장에 데려왔다는 것.
그리고 다른 하나는, 막내에게 수영장용 방수 기저귀를
채워주지 않았다는 것.
처음엔 괜찮았다. 아이들은 물에서 소리 즐겁게 놀고,
나는 경계선을 지키며 삼남매를 번갈아 바라봤다.
그때 갑자기 막내가 조용히 다가왔다.
“아빠… 나 똥 마려워…”
물에 들어간 지 채 15분도 안 된 시점이었다.
순간 심장이 철렁했다. 물 속에서 무언가 ‘풀어지는’ 순간은
상상조차 하기 싫었다. 나는 곧바로 아이를 안고,미끄러지지
않도록 조심스레, 그러나 미끄러지듯 수영장 복도를 달렸다.
그날따라 화장실은 왜 그렇게 멀게 느껴졌을까.
샤워실을 지나, 나는 거의 경보급 ‘잰걸음’으로 아이를 품에
안고 달렸다. 그리고 간신히 변기에 앉힌 순간, 막내는
손으로 배를 문지르며 말했다.
“휴… 아무 데서나 싸면 안 돼, 그치?”
나는 그 말에 고개를 끄덕이며 속으로 되뇄다.
맞다. 똥은 아무 데서나 싸는 게 아니다.
회사에서도 비슷한 경험이 있었다. 회의 중, 중역 간부
한 분이 상급자의 업무 평가에 대해 억울함을 토로하다가
순간적으로 목소리가 올라갔다.
“제 면상에 대고 그런 식으로 말씀하시는 건, 용납할 수
없습니다.”
‘면상’, ‘용납’… 평소엔 그분이 절대 쓰지 않던 단어들이
감정의 급류 속에서 마구 쏟아졌다.
회의장은 싸늘해졌고, 그 이후 분위기는 당연히 더 어려워
졌다. 그분은 회의 후 내게 조용히 말했다.
“할 말은 다했는데… 내가 단어를 잘못 골랐어.”
우리는 살면서 ‘싸야 할 순간’을 맞닥뜨린다.
비판하고 싶을 때, 참을 수 없을 만큼 억울할 때, 누군가에게
솔직한 속내를 말하고 싶을 때. 하지만 그럴수록 더 신중해야
한다. 똥을 잘 싸는 것도 기술이지만, ‘어디서 어떻게 싸느냐’
가 훨씬 더 중요하다.
육아든, 사회든, 그 기술은 결국 타이밍과 품위의 문제다.
막내는 수영장 물속에서 싸지 않았다. 나는 그의 배변 신호를
알아차리고, 길고 긴 복도를 전력질주했다.
그 결과, 수영장은 무사했고, 아이도 자존심을 지켰다.
그리고 어른인 우리는, 말 한마디, 표정 하나에도 상대를
미끄러지게 하거나 자기 스스로를 오염시킬 수 있다.
똥은 싸야 한다. 그러나 어디서 어떻게 싸느냐가 그 사람의
인격을 나아가 미래를 결정짓는다. 오늘도 나는 아이에게 말한다.
“싸고 싶을 땐, 미리 말해줘.”
그리고 스스로에게도 말한다. 말하고 싶을 땐, 먼저 생각해
보자. - 지금 여기가, 싸도 되는 자리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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