같은세대를 살았지만 다른 버튼을 눌렀던 우리
■ 포케몬 가오레도 지겨워진 어느 날
얼마 전, 첫째 아이가 닌텐도 스위치로 게임을 하다가
기다리던 동생에게 자리를 넘기고는 테블릿을 가져와
친구와 마인크래프트를 한다고 했다.
어떻게 하는건지 궁금해서 뒤에서 보고 있자니 신나서
이것저것 설명하다 문득,
“아빠, 예전에도 이런 게임 있었어?”라고 물었다.
순간 머릿속에 번개처럼 떠오른 단어, “겜보이”,
그리고 내 어린 시절 ‘아지트’ 동네 오락실이 떠올랐다.
강남출신 아내는 옆에서 당연하다는 듯 집에 게임기가
있었다고 했고(처남에게 물어보니 슈퍼패미콤이었다.)
아내보다는 아무래도 처남이 독차지 했었다.
국민학교 고학년쯤 되었을 때 장인어른이 사주셨다고
했다. 학원을 마치고 집에 돌아와 소파에 누워
슈퍼 마리오와 버블버블 즐기던 꿈에 그리던 삶이라니.
그 시절 강남의 슈퍼패미콤은, 누군가의 생일 선물이었고,
나쁜(?) 아이들과 오락실에서 어울리는 것보다 집안에서
게임을 즐기게하려는 하나의 수단이었다.
강북에서 오락실은 모두의 아지트이자 만남의 장소였다.
아마 누군가의 집에는 슈퍼 패미콤이 있었을지 모른다.
하지만 굳이 놀이터 근처, 슈퍼 옆 작은 오락실에 모여
낮에는 국민학생, 중학생이, 해가 질때에는 고등학생이
스트리트 파이터나 최신 킹오브 파이터즈94 게임기
앞에 모였다. 100원 짜리(지금은 최하가 1000원!)를
쌓아놓고 기다리며 손가락을 까닥거리며 연습하는
그 순간은 설레임과 자기다짐의 순간이었다.
게임은 몰입의 도구이기도 했지만, 연대의 감정이었다.
게임에 지는 친구는 “얍삽이” 당했다면서도 아이스크림을
샀고 어디서 배워왔는지 숨겨진캐릭터나 퀘스트를
불러오는 조이스틱 마스터는 선망의 대상이었다
‘오락=불량’이라는 시선도 있었고, 가끔 들이닥친 누군가의
엄마나 아빠의 “너 왜 여기있어!” 소리에 다 같이 도망가던
스릴도 있었다.
아내는 당시를 회상하며 말한다.
“차라리 집에서 게임을 하라고 했지, 오락실? 무서워서
못 갔어.”
같은 세대 안에서도 이토록 다른 문화였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중에 강남 살던 사촌형이 고등학생이 된다고 고모가 집에
재믹스를 집에 두고 가셨는데, 며칠하고는 결국 오락실로
다시 달려간 걸 보면 난 오락실 체질이었다.
요즘 아이들은 모바일 게임으로 친구들과 ‘같이’ 놀지만,
사실은 ‘따로’ 논다. 각자 집에서, 각자 기기에서,
같은 서버에 접속해 있지만, 눈을 마주치지 않는다.
나는 가끔 아이가 유튜브로 게임 방송을 2시간 넘게
보고와서 키즈락을 풀어달라고 하면 말리고 싶어진다.
하지만 우리 때 친구들과 목욕탕 갔다가 오락실에서
2시간 넘게 서성였던 기억에 키즈락을 풀어준다.
그럼에도 드는 생각은, 나에게 오락실의 추억은 게임
자체에 있다기보다, 그걸 어떤 공간에서, 누구와 함께
했었는지가 중요했다는 거다.
아이에게 ‘게임하지 마’라고 말하기보다,
“오늘은 너 하는 거 아빠랑 같이 보자”,
“이거 너 친구랑 어떻게 같이해?”라고 묻는 것이
어른의 몫일지도 모른다.
당시 내가 오락실에서 내가 배운 건,
스트리트 파이터의 기술이 아니라,
져도 같이 공통의 관심사를 이야기하며 웃어줄 친구와
죄책감 보다는 안도감을 주는 부모님의 믿음이었다.
■ AI 시대 육아 메시지
아이의 ‘놀이’를 제어할 수는 없다.
하지만 그 놀이를 함께 바라봐주는 부모가 있다면,
그것은 단순한 게임이 아니라 관계의 시작이 될 수 있다.
우리는 패미콤든 오락실이든, 게임 자체보다는
‘함께 했했던 시간과 공간속에서’ 자라났다.
결국 중요한 건 즐기되 절제할 줄 알고, 불안과 짜증보다
만족감과 스트레스가 해소되는 것을 느끼는 것이다.
■ TMI - 지금도 오락실 오락기에 '따닥이'가 통할까?
이것들을 안다면 당신은 오락실 사장님에게 걸려서
싸다구를 맞아봤을 것이다.
예전 오락기의 동전투입구는 설정된 크기의 동전이
투입구를 통과하면 자성이 없는 것을 검증하고 통로를 지나
인계선을 건들면 전기신호를 주어 동전이 투입되는 것을
인식하는 원리로 작동했다.
이중에서 인계선만을 건들어 센서를 작동 시키는 방법이
1. 자동차 외이퍼 고무바킹 내부의 철선의 홈을 이용하는 방법과 2. PP밴딩선을 'ㄱ'자로 꺾어 투입구로 집어넣어
인계선을 건드는 것이었다.
다음으로는 센서에 직접 전기자극를 주는 방법으로
일명 '따닥이'로 센서 인근서 전극을 주는 것이었다.
물론, 요즘 기계에는 이 모든 방법이 통하지 않는다.
여러분의 공감(♥)은 큰 힘이 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