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비의 품격이 아니라, 기억의 온도를 나누다
■ 사실 강남, 강북의 차이가 없어진지는 오래됐다.
서울 모 백화점 과일코너를 지나갈 때, ‘특등급 프리미엄 꿀사과 – 한 알 10,000원’이라는 표지가 눈에 띄었다. 나는 처음 그걸 봤을 때 잠시 멈춰 섰다. ‘우와, 사과 한 알이 만 원이라니?’ 놀라서 잠시 바라봤는데, 관심이 있는 걸로 착각한 직원분이 말했다.
“농약 없이 키운 프리미엄 사과예요. 껍질째 드셔도 됩니다.” 그 옆에는 제수용이라고 적힌 샤인머스캣 한 송이가 4만 8천원에 나란히 놓여 있었다. 포장은 금박 리본, 사과는 명품처럼 쿠션에 눕혀 있었다. '우리 조상님이 샤인머스캣을 아시려나..'
아내는 내 생각을 눈치 챘는지 슬쩍 다른 코너로 밀며 말했다. “그래도 선물이나 제수용으로는 이런 게 좋아. 깔끔하잖아.” 그 말이 틀린 건 아니다. 강남(또는 프리미엄 브랜드)의 소비는 깔끔함과 브랜딩으로 가치와 품격을 포장하는 기술이있다. 정제된 포장과 가격은 다른 한편으로는 보증과 신뢰였다.
문득, 얼마 전 재래시장 한쪽 골목에서 본, 한 소쿠리에 담긴 천원어치 고사리가 떠올랐다. 소쿠리에 대충 담겨 있는듯 보였지만, 그 고사리엔 가판대 뒤에 있는 할머님의 정성이 그대로 묻어 있을거 같았다. “아저씨, 이건 내가 직접 말린 거예요. 나물무치면 향이 달라요.” 할머니의 표정과 손끝을 보면, 필요하지 않아도 사고 싶은 뭉클함이 올라왔다.
강남의 사과는 ‘보증과 품격’을 추구하고, 강북의 고사리는 ‘정과 진심’을 팔았다. 사과는 남에게 주는 선물용이었고, 고사리는 내가 만들어 먹을 반찬용이었다. 나에게는 하나는 ‘내가 쓰기엔 아깝고 남주기엔 그럴듯한 보여주기 위한 소비’, 다른 하나는 ‘살아가기 위한 가성비를 충족한 소비’로 느껴졌다.
둘다 필요한 목적과 쓰임이 있기에 옳고 그름을 따지기 보다는 개인의 만족과 효용성에 따라서 소비하는 것이, '무조건 비싸고 좋은 것', '싸고 그냥 저냥 쓸만한 것'만을 찾는 것보다 낫다는 것을 나이가 들면서 배워간다.
요즘 소비트랜드는 많이 바뀌었다. '인스타그래머블(Instaramabke)', '있어빌리티', '하차감' 등 개인 만족만큼 남에게 보여주는 것도 중요하다. 필요보다 ‘보여짐’이 중요하고, 선택보다 '남들이 알아 주는가'와 플랫폼과 다른 소비자의 ‘추천’이 앞선다. 무엇보다, AI 알고리즘이 '너에게 또는 네가 속한 세대와 그룹에 꼭 맞는 상품' 이라며 우리 대신 소비의 기준을 세워준다.
하지만 알고리즘은 소요를 계산할 뿐, 마음의 필요성은 모른다. 자신의 능력과 만족도에 따른 소비습관은 다양하다. 누군가에겐 예쁜 쓰레기가 나에게는 은전 한닙만큼 소중할 수도 있고, 어디에서는 무엇보다 비싼것이, 어디에서는 종이한장보다 못할수도 있다.
부모로서 아이들을 키우면서 경계해야 할 것은 미숙한 부모의 소비 습관이 아이에게 그대로 물려질수 있다는 것이다. 어린 아이의 성장이 걱정되어 “무설탕 유기농 젤리”, “수입 유산균 스낵” 등 가격보다 ‘안심’이 중요하고 그 신뢰를 브랜드로 확인할 수 밖에 없는 시기에는 선별의 집착이 이해될 수 있지만, 아이가 면역력이 생기고 기호가 편식으로 고착될 수 있는 시기에 기존 유아 방식에 집착하는 것은 오히려 아이를 고립시키는 악수가 될 수 있다.
예를들어, 친구집에 놀러가는 아이에게 집에서 먹는 간식과 과일을 들려보내는 것은 때로는 실례가 될수도 있다.(아이가 알러지가 있는 경우라면 당연히 예외이지만, 호스트에게 먼저 물어보지 않고 일상적이지 않은 성의표현은 '우리 아이는 이것만 먹어요'라는 표현으로 비춰져 자칫 불쾌감을 줄 수도 있다는 것이다.) 하지만 반면, 아이가 듣는 앞에서 “애 셋인데 이게 낫지. 먹다 버려도 덜 아깝잖아.” 라는 식의 지나친 저가 중심의 소비습관은, 자본주의 시대에 가치와 효율성을 구분하는 안목을 키워준다는 측면에서 가성비의 의미를 왜곡할 수 있으므로 주의가 필요하다.
며칠 전, 큰아이가 나에게 후다닥 달려와 사과 한조각을 내밀었다.
“아빠, 막내가 할머니랑 백화점 갔다가 사과가 너무 먹고 싶다고 졸라서, 결국 할머니가 한개에 만원짜리 사과를 사서 깍아줬어. 이거야 먹어봐. 근데 맛이 달라!"
보고 지나치기만 했던 그 한알 만원 사과를 영접하게 되다니 나도 경건한 마음으로 한입 배어물고, 잠시 생각하다(정말 더 맛있어서 놀랐었다) 대답했다.
“그래, 정말 맛있다. 할머니가 막내 생각해준 마음이 담겨서 더 맛있는거 같네.”
첫째도 고개를 격하게 흔들며 말했다.
“할머니가 막내 정말 사랑하나봐, 한 알에 만원짜리 사과도 사주시고!”
이미 벌어진 일에 이런저런 이야기는 의미는 없었다. 맛있었으면 됐지. 아이들이 할머니가 그만큼 자기들을 사랑한다는 것을 알게 됐는데 만원이면 싸다라는 생각이 들었다. 충분히 가치가 있었다.
■ TMI: 샤인머스킷은 제수용 과일로 가능할까?
- 할 수 있다.
흔히들 ''홍동백서(紅東白西, 제사 때 신위를 기준으로 붉은 과실은 동쪽, 흰 과실은 서쪽에 차리는 격식)’와 ‘조율이시’ (대추·밤·배·감)"라고 하는데, 성균관유도회총본부에 따르면 사실 이것은 옛 문헌에도 없는 표현이라고 한다.
오히려 2022년에 차례상 간소화 의견 등을 반영한 일명 ‘요즘 차례상 표준안’을 내놨다. 해당 안에는 술과 나물, 김치, 그리고 과일 4가지가 담겨 있다. 특히 과일에는 ‘샤인머스캣’ 같은 것도 괜찮다고 했다. 또 따듯한 구이와 떡국, 심지어 스파게티도 가능하다는 의견을 제시했다.
다만 시대가 바뀌며 과일 시장도, 가족 구성도, 제사의 실천 방식도 바뀌고 있기때문에, 고가의 품종이나 희귀과일이 올라가는 것은 ‘정성’의 표현으로 볼 수 있고, 과거의 틀 안에서 크게 벗어나는 것이 아니면 긍정적으로 받아들일 여지도 충분하다고 보았다.
하지만 지나친 허례허식보다 중요한 것은 '마음’이라며, '귀신은 해외도 쫓아간다'며, 연휴에 해외여행 간다고 제사 빼먹지말고 조촐하게라도 마음을 표현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출처: “차례상에 스파게티·샤인머스캣 가능?” 성균관 유학자 답변 보니, 이데일리(2024.02.10))
■ AI 시대 육아 메시지
알고리즘이 ‘필요’를 권해주는 시대일수록, 부모는 ‘가치’를 가르쳐야 한다. 가격이 아니라 마음의 기준, 단순한 만족을 주는 소비가 아니라 의미와 정서를 나눌수 있는 소비, 아이는 우리가 고른 사과의 브랜드보다, 함께 깎아 먹은 그 순간을 기억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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