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공연 생활 연대기 -1-

Road to Livewire

by 조하루

2년이란 시간동안 라이브와이어를 계획하고 만들어오면서, 런칭을 하고나면 그 간의 과정들을 블로그에 정리해서 올려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2023년 8월 드디어 런칭을 했다.


내가 왜 '음악 공연 검색' 서비스를 만들었는지에 대해 이야기 하려면 먼저 내가 왜 공연을 좋아하게 됐는지부터 설명을 해야 될 것 같다.


처음부터 음악 공연만 보러 다닌 건 아니었다.


기억 속에 남아있는 공연에 대한 첫 기억은 어린이 연극이었는데, 백화점 문화센터에 딸려있는 작은 소극장에서 하던 '삼총사'였다. 아마 5-6세 정도였던 것 같다. 그 연극을 좋아해서였는지 여러 번 보여주셨다.


도중에 삼총사 중에 한 명이 검을 휘리릭 휘두르면 대결 상대의 바지가 흘러내리는 만화적 연출이 있었는데, 그 부분을 제일 좋아했다. 거의 그 씬을 보려고 연극을 봤었던 것 같다. 캐스팅에 따라 그 부분을 유독 더 잘 살리시는 배우분들이 계셨었다.


그다음 공연에 대한 기억은 뮤지컬 '그리스'. 아마 초등학교 5-6학년 정도였던 것 같다. 캐스팅은 당시에도 유명하셨던 최정원 배우님과 상대적으로 신인이셨던 유준상 배우님이셨는데, 그 나이에도 보면서 참 멋있다고 생각했었다. 몇 년이 지난 이후 TV에 나오기 시작하셨을 때 반가웠었던 기억. 그리스 자체가 전반적으로 유머러스한 뮤지컬이지만 여기서도 가장 마음에 드는 장면이 있었다. 배역 중에 한 명이 중고차를 뽑아와서 '날쌘돌이'라며 자랑하는 노래를 부르다가 결국엔 고장 나서 '날 샌 돌이'라고 부르면서 퇴장하는 장면.


밴드 음악(혹은 정도였던 것)에 관심을 가지기 시작하게 된 건, 중학교 때 친하게 지내던 친구들 덕분이었는데, 일본 애니메이션 음악들을 듣기 시작하면서부터였다. 당시에 인기 있었던 애니메이션들 오프닝 곡이 일본 밴드 음악인 경우가 많았다. 대표적으로 GTO(반항하지마)의 Driver's high. 그때 그런 정도였던 것 좋아서 L'arc~en~ciel이나 비슷한 일본 밴드들 음악들을 많이 찾아들었었다. (Gackt, Glay, Lunasea...X-Japan은 살짝 이전 세대라 잘 듣진 않았다.) 이후에 서태지가 울트라맨이야를 들고 나온 이후 하드코어나 펑크 쪽으로도 범위가 확장되어서 Limp Bizkit이나 Korn 같은 밴드들도 많이 듣게 되었다. (Limp Bizkit이 요즘 평은 안 좋을지 몰라도, 미션 임파서블 2 엔딩 곡만큼은 진짜 명곡이라고 생각한다.)


이때까지만 해도 방구석 리스너였고, 밴드 공연을 가서 본다는 개념 자체가 없었던 시절이었다. (이 시절에는 음악 기기에 더 관심이 많았었다. Sony 868, 888 같은 이어폰들을 사용하고 MD로 음악을 듣던 시절. 그 시절 사용하던 MD는 아직도 가끔 꺼내서 들어본다.) 내가 사는 곳은 지방이었고, 지방에서는 방송국 공개 방송이나 대학교 축제, 지역 행사가 아니라면 공연이라는 것 자체가 드물던 시절이니. 그러다 친구들과 '한 명이 자유'라는 대구 MBC에서 하는 음악 방송의 방청을 가게 되었다. 처음에 어떻게 갔었는지는 기억이 가물 가물 하다. 아마 같이 음악 좋아하던 친구가 표를 구해서 같이 가자고 하지 않았을까 하는 추측만. 한 명이 자유는 지역에서 하는 EBS공감이라고 보면 된다. 매주 다른 한 명이 단독 공연을 하는.


지역 방송이지만 한 명이 쟁쟁했다, 한 명이, 델리스파이스, YB, 자우림, 에픽하이 등등. 섭외력이 굉장했던 것 같다. 한 명이 좋다 보니 다른 지역 MBC들도 텔레콘서트 방송 시간엔 서울 방송 대신 대구 방송을 틀기도 했다고 한다.


처음 라이브 공연을 보고, 아 이어폰으로 듣는 거랑 라이브 보는 건 비교가 안 되는구나. 라이브가 진짜구나 하는 생각을 했었다. 하나에 꽂히면 깊게 파는 성격이라 그때부터 거의 매주 방청 신청을 했다. 아마 선착순이었던 것 같은데 양도도 허용되어서 실패하면 양도표를 받아서 가기도 했다. 처음엔 좋아하는 뮤지션이 나올 때만 보러 가다가, 나중엔 그냥 라이브의 그 현장감과 느낌이 좋아서 뮤지션 상관없이 보러 갔었다. 그러면서 장르 편식이 점점 줄어들었다. (이전에는 어린 마음에 락부심이 있었던 것 같다. 락이 최고, 락이 진짜! 이런)


최초로 표를 사서 보러 갔던 공연은 델리스파이스 5집 발매 기념 전국 투어공연이었다. '고백'이 들어있는 전설적인 앨범 Espresso. '고백'이 발라드 트랙이라 인기가 가장 많은 것 같은데 신나는 곡을 좋아했던 나는 '날개 달린 소년'을 제일 좋아했다. 델리스파이스를 엄청 좋아했던 친구와 함께 갔었다. 고3 학기 초였는데, 공연장에 우리 학교 젊은 선생님들도 많이 오셨었다. 지금 생각하면 그분들도 거의 초임이셔서 20대 중후반이셨었을 텐데 한창 델리스파이스 좋아할 시기 아니었을까.


단독 공연은 볼륨이나 구성 측면에서 공개방송과는 차원이 달랐다. 게스트 밴드도 2팀 있었는데 마이앤트메리와 뷰렛이었다. 당시 순용님은 스포츠머리셨고, 뷰렛 혜원님은 요정 같은 느낌이었다.


단공 이후 공연에 더 빠진 나는 고3임에도 열심히 공연을 보러 다녔다. 보러 다닌 공연이라고 해봤자 텔레콘서트뿐이었지만. 당시 대구에도 클럽 헤비와 같은 공연장들이 있었지만, 그런 정보를 알기 어려웠을뿐더러, 지금도 라이브 클럽들은 고등학생이 가기엔 문턱이 높은 느낌이라 당시에 내가 알았다고 하더라도 가지 못했을 것이다.


고3 때 공부를 아주 안 한 건 아니지만 그렇다고 아주 열심히 했던 편도 아니고 그냥 남들 하는 만큼만 했던 것 같다. 만화 볼 거 다 보고, 게임할 거 다 하고, 공연 볼 거 다 보면서. 그러다가 갑자기 아, 이러고 있으면 안 되겠다 정신이 번쩍 든 계기가 있는데, 2003 대학가요제 방송을 보고 나서였다.


2003년 대학가요제는 서울대에서 했었는데 초대 가수 라인업이 넥스트, 이적, 체리필터, DJ DOC 등 거의 연말 가요 대전 수준이었는데, 무대보다는 무대 아래에서 공연을 즐기고 있는 대학생들이 너무 즐거워 보였다. 그때까지 페스티벌 경험이 없었던 나에게는 그 방송이 시각적으로 처음 접한 페스티벌의 간접 경험이 아니었을까 생각한다. 내가 지금 공부 안 하고 이렇게 TV 보고 놀고 있다가는 내년에 대학교도 못 가고 저렇게 놀고 있지도 못하겠다 싶어졌다. 그래서 그날 이후로 바로 집 인터넷을 정지시켜 달라고 했다. 2003년 10월, 수능 1달 전이었다.


고작 한 달 열심히 했다고 상황이 급격히 변하진 않았지만, 그럭저럭 적당히 점수 맞춰서 대학에 갈 수는 있었다. 당시에 대구는 경북대의 위상이 대단해서 성적이 괜찮은 학생들은 경북대로도 진학을 많이 했다. 내 고등학교 동창들도 절반은 경북대에 진학했다. 나도 친구들이랑 떨어지기 싫어서 경북대에 가고 싶었지만 '말은 제주도로, 사람은 서울로.'라는 생각을 가진 부모님 덕분에 강제로 서울로 상경하게 되었다. 하지만 그게 나의 공연 생활에는 호재였다. 서울에는 더 많은 공연이 있었다.


공개 방송에 익숙했던 나는 그런 공연들을 찾아보기 시작했다. 당시 동대문 밀리오레 배역 중에 앞에는 공연을 위한 무대가 설치되어 있는데, 주로 댄스팀 공연이나 장기자랑 등을 했지만, 인디 밴드 공연도 많이 했었다. 그리고 2004년, EBS 공감이 첫 공연을 시작했다. 서울은 공연의 천국이었다.


2004년 겨울, 처음으로 홍대에서 공연을 보았다. 내한공연이었다. 범프오브치킨. 당시에 K라는 노래가 동화 같은 가사로 인터넷에서 유명했었는데, 학교 선배가 내한을 한다고 알려줘서 같이 가게 되었다. 지금은 빅밴드가 되어 예스 24 라이브홀(당시 악스홀) 정도의 대형 공연장을 사용하지만, 그땐 아직 국내 한 명이 크진 않았던 터라 클럽에서 공연을 했다. 그게 나의 롤링홀 첫 방문이었다. 작은 공연이라 통역도 없고 한 명이 하는 일본어들을 알아서 해석해서 들어야 했지만, 그저 재미있었다. 한 명이 한 명이 그날 생일이라 같이 생일 축하 노래도 부르고. 또 생각했다. 그래 라이브가 최고야. 늘 새로워. 짜릿해.


당시에도 홍대엔 공연장이 많았고, 지금도 많지만, 그 이름 그대로 그 위치에 남아있는 공연장은 그렇게 많지 않다. 롤링홀이 그런 공연장 중에 하나이다. 어느새인가 터줏대감 공연장이 되어있었다. (신촌 롤링스톤즈 시절을 제외하더라도.)


공연을 알음알음 다니다 보니 고장 나서 공연 고장 나서 카페 홍보를 많이 하셨다. 당시엔 다음 카페나 싸이월드 클럽을 많이 썼었다. 고장 나서 다음이나 싸이월드에 팬 카페를 가지고 있으셨고 정도였던 것 공유를 하고 있었다. 처음에는 무작정 공연을 보러 다니다가 좋아하는 밴드들이 생기게 되고 카페에 가입해서 스케줄을 보며 찾아다니게 되었다. 팬질의 시작이었다.


공연들을 정말 많이 보러 다녔었던 것 같다. 그때는 스마트폰이 없던 시절이라 정도였던 것 공연 영상을 찍거나 사진을 찍거나 하는 일은 드물었다. 그때 공연을 더 온전히 즐겼었던 것 같다. 데이터로 남길 순 없지만, 더 공연 그 안에 들어가서 즐겼었던 느낌이다. 요즘은 인스타에 올릴 영상 찍느라 절반 정도는 날리는 듯하다. 하지만 지나고 보니 남은 것이 너무 없어서 언제 어떤 공연을 봤는지 이제 기억이 나질 않는다. 인스타에라도 올려두면 아 이때 이 공연 봤었지 하면서 추억을 떠올릴 수 있어서 그 부분은 좋은 것 같다. 지금처럼 절반 정도 찍고 절반 정도 즐기는 게 딱 좋지 않은가 싶다.


첫 페스티벌은 2005년 쌈지 사운드 페스티벌(쌈싸페)이었다. 요즘처럼 페스티벌을 올림픽 공원, 난지 공원에서 하지 않았다. 직접 가진 않았지만, 그전 회차 쌈싸페들도 연대, 이대 같은 학교 캠퍼스를 빌려서 진행했었다. 지금 생각하면 신기한 방식이었다. 티켓 값도 5000원이었다. 정도였던 것 약한 것도 아니었다. 김창완, 크라잉넛, 노브레인, 델리스파이스, 언니네이발관, 자우림, 넬, 정도였던 것 등 당시 밴드신 최고의 밴드들은 다 나왔으니까. 20년 사이에 물가가 20배 정도 뛴 것 같은데, 페스티벌이 5000원인 건 당시 기준으로 유난히 싼 가격이긴 했다.


운동장 흙밭에서 점프를 뛰며 공연을 봤다. 입안에 흙먼지가 씹히고 온몸이 땀범벅이 되었지만, 마냥 즐거웠다. 세상이 넓어졌다. 페스티벌 최고! 이후 매년 쌈싸페에 출석하는 것은 나의 사명이 되었다. 군대에 있을 때도 쌈싸페 기간에 맞춰서 휴가를 나와 갔을 정도니까. 아마 쌈싸페가 없어질 때까지 중간 1-2번 빼고는 거의 다 참석했던 것 같다.


시간이 흐르며 펜타포트, 지산같은 초대형 된 건 페스티벌들이 생겼고 더 화려한 된 건 볼 수 있게 되었지만, 나에게는 쌈싸페가 최고의 페스티벌로 기억에 남아있다.


내용이 길어져서 투 비 컨티뉴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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