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john ater Mar 23. 2020

들어가기에 앞서

첫 번째

 대학교 졸업 후, 목표하던 대학원 진학에 실패하였고 늦은 나이에 취준을 시작했습니다. 나이 때문에 조바심이 나기도 했지만 어서 어엿한 성인으로서 돈을 벌고 싶어서 더욱 조바심이 났습니다. 게다가 진지하게 장래에 대해 고민하기 시작했을 때부터 어떠한 일을 하고 싶다거나, 특정 직업을 갖고 싶다는 생각을 하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어떤 일이든 돈이 된다면 할 만하다는 자세로, 취업사이트에 올라오는 모든 공고에 기웃거렸습니다. 그중에서 그나마 승산이 있거나, 돈을 많이 줄 것 같은 곳을 골라 지원하였습니다.

그 기간들이 정확히 언제부터 언제였고, 어떠한 날들이었는지 기억은 나지 않습니다. 다만 그때를 떠올리면 집 근처의 인력사무소로 향하는 깜깜한 골목길과 저녁에 가까운 새벽 공기가 떠오릅니다. 인력사무소를 통해서 알선되는 일용직 잡부일은, 원하는 때에 당장 일할 수 있어 취업 관련 일정을 맞추기 좋고, 일이 끝나자마자 일당을 현금으로 받을 수 있어 좋았습니다. 일할 때 잡생각이 나지 않는 건 덤이었습니다. 낮에는 일용직 잡부 일을 하고, 밤에는 이력서를 쓰는 날들이 계속되었습니다. 일을 하다가 다들 담배를 피우거나, 잠깐 앉아 쉬고 있을 때 핸드폰으로 합격자 조회를 했습니다. 그리고는 불합격 통보를 읽고 일을 하러 돌아갔습니다. 그런 일들이 계속되자 간절함이 생겼습니다.

 나름의 간절함 덕분이었는지, 적당히 먼 시간 내에 취업을 하게 되었습니다.

첫 취업한 회사는 여러모로 재밌는 곳이라는 생각을 했습니다. 구글 닥스로 이력서를 받는 것도 신기하였지만, 신입 지원자에게 원하는 연봉의 액수를 구체적으로 기입하게 하는 항목도 낯설었습니다. 넷플릭스의 인사체계를 표방하기도 했습니다. 

밑져야 본전이라는 생각으로, 다소 현실성 없는 금액을 희망연봉으로 적고 취업을 확정 지었습니다.




p.s

젊은 사람이 취업이 안 돼서 인력사무소에 들락거리는 것이 안타까웠는지, 평소 소장님은 제가 일이 없어 허탕을 치고 집으로 돌아가지 않게 다른 사람보다 우선으로 일을 내주었습니다. 그래서 마음속으로 항상 고마움을 갖고 있었습니다. 첫 취업한 회사 면접을 보고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인력사무소의 소장님을 우연히 만났습니다. 하지만 제가 인사를 드리자 소장님은 저를 잘 모르는 눈치였습니다. 평소의 작업복이 아닌 정장 차림으로 인사를 드리니 더욱이 알아보기 어려웠을 겁니다. 제 소개를 하고 난 후, 인사를 드리고 돌아서는 길에 이런 생각이 들었습니다. 면접 결과에 따라, 소장님을 다시는 보지 못하게 되거나, 언제 그랬냐는 듯 다시 작업복을 입고 새벽마다 인사드리게 될 상황이 아이러니 하면서도 안타까웠습니다. 그리고는 취업을 하더라도, 간혹 운동 겸 용돈벌이로 주말에 인력사무소에 나가서 일도 하고 소장님을 뵙고 싶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하다못해 취업을 하게 되면 음료수 한 병이라서 사 들고 가서 고맙다고 인사를 드리자고 마음먹었습니다. 물론, 취업을 한 뒤 다시 볼 일은 없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