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들이 품은 진실

이렇게 힘든 봉사를 굳이 선택하는 그 사람들은 누구였나

by 쿠드

봉사 당일의 날씨


6월 중순, 이른 무더위가 며칠째 계속해서 이어졌다. 심지어는 37도까지 올라갔는데, 이는 봉사 바로 직전 날이었다. 그런데 다행히도 봉사 당일은 날씨가 비교적 선선했다. 대프리카답게 선선한 날씨라는 것도 무려 31도였긴 하지만. 그래도 가장 더웠던 전날에 비해 6도나 낮은 온도였고, 강수확률이 40%였기에 구름도 많아서 강한 자외선은 피할 수 있었다. '좋은 일을 하는 사람은 하늘도 돕는다(어디서 주워들은 말인지..?) '는 식의 말처럼 좋은 일을 하는 날 하늘도 우리를 돕는 게 아닐까란 생각을 잠시 했다.


행복한 집 프로젝트라는 봉사


이번에 한 봉사는 '소화신협과 함께하는 행복한 집 프로젝트'라는 봉사였다. 장판을 도배하고 가구를 옮기고 낡은 벽지를 떼어내고 다시 붙이는 일이었다. 장판을 깐다거나 새 벽지를 붙이는 일은 전문가 분들이 직접 하였고, 네댓 명의 자원봉사자들은 짐이나 가구를 옮기거나 벽지를 떼어내고, 도배가 끝난 방에 다시 물건과 가구를 옮기는 작업을 했다. 프로젝트로 선정된 집은 할머니와 손자 둘이서 사는 조손가정 집안이었다. 집안의 자세한 사정은 잘 알지 못하지만 노인과 아이 둘이 사는 집은 예상대로 '잘' 관리되어 온 집이 아니었다. 세월이 묻은 가구들과 놔두면 쓸 데가 있겠거니 하며 모아둔 먼지 쌓인 짐들이 가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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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배장판을 위해 꺼내놓은 짐들, 다시 제자리 시켜야 함




땀 범벅.. 쉽지 않았던 봉사


처음에 도착해서 어떻게 해야 하는지에 대한 대강의 설명을 듣고, 짐을 하나 둘 옮기기 시작했다. 짐을 옮기고 전문가분들의 말에 따라 가구를 이리저리 배치하다 보니 금세 땀에 흥건히 젖었다. 안 그래도 자유분방한 나의 땀샘이 활발하게 움직이기 시작한 것이다. 이럴 줄 알고 챙겨 온 손수건 하나를 목에 두르고, 검은색 팔토시를 오른팔에 착용했다. 팔토시는 시원하게 하려는 목적도 있었지만 대부분 이마와 얼굴에 흐르는 땀을 닦는 용도로 사용했다. 안 챙겨 갔으면 큰 일 났겠다 싶을 정도로 유용하게 잘 사용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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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존의 벽지를 떼어내고 장판을 뜯는 작업 (feat.나)


첫 번째 방의 가구와 물건들을 다른 곳으로 옮기고 나서는 벽지를 하나하나 뜯어내야 했다. 하나씩 받은 문구용 커터 칼로 벽과 벽지 사이에 틈을 만든 다음, 그 틈에 손가락을 집어넣고 잡아서 쭈욱 뜯어내는 작업이었다. 어떤 곳은 벽지가 잘 뜯어지기도 했지만 대부분의 곳에서 벽과 벽지가 너무 잘 달라붙어져 있었고, 오래된 벽지는 잡아서 뜯길 만큼 충분히 튼튼하지 못했기 때문에 지겨운 반복 작업을 계속해서 해야 했다. 자원봉사자 4명과 도배 전문가분들 4명 그리고 신협 담당자 2명으로 총 10명이서 일을 했는데, 우리의 냉방을 책임질 가구는 선풍기 한 대가 끝이었다. 즉, 대부분의 작업을 아무런 냉방 장치의 도움 없이 진행해야 했으며 구름이 많아 온도는 낮아졌다지만 그 때문에 높아진 습도가 말썽이었다. 가만히 있어도 땀은 멈추지 않았고 내 팔토시는 점점 축축해졌다.



점심시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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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바닥에서 먹어도 맛있는 탕수육, 군만두 그리고 냉면


이 집은 안 방, 거실, 손자 방, 주방, 창고로 총 5개의 구역으로 이뤄져 있었고 우리가 작업해야 할 공간도 다섯 곳이었다. 오전 8시 30분에 시작해서 11시 40분까지 쉼 없이 내리 일했고 그때까지 대략 세 곳을 끝마칠 수 있었다. 점심은 프로젝트를 주관하는 신협에서 제공하였으며, 냉면과 탕수육 그리고 군만두를 시켜서 먹었다. 배는 고픈 상태였지만 생각보다 음식이 잘 들어가지 않았고 탕수육이나 냉면 건더기는 많이 남겼지만 냉면 국물은 끝까지 다 마셨다. 작업 중에도 물과 음료수, 에너지 드링크 등을 계속해서 마셨지만 새콤한 냉면 국물이 갈증을 해소하는데 가장 효과적이었다.


점심을 먹고 나서는 좀 널널하게 일을 했다. 옮겨야 될 짐을 다 옮긴 상태였고 이제는 전문가 분들의 영역이었다. 그들이 일을 다 마쳐야 짐을 제자리에 옮기는 우리의 일을 할 수 있었고, 자연스럽게 그 사이에 휴식을 취할 수 있는 텀이 생겼다. 휴식시간은 자연스럽게 대화로 이어졌고, 나는 자원봉사자 분들에게 궁금한 것들을 질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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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원봉사자들의 정체


왜 그들은 하고 많은 봉사들, 몸도 편하고 짧은 시간 동안 하며 앉아서 에어컨 바람을 쐴 수 있는 봉사들 중에서 굳이 이런 힘든 봉사를 선택했을까? 나는 그들이 누구인지 궁금했다. 그들에 대한 순수한 호기심이 밀려왔다. 1365(봉사신청 홈페이지)에서 이 봉사에 관한 설명(활동 특성상 남성 자원봉사자만 신청이 가능한 점 유의해주시길 바랍니다)만 봐도 이 활동이 결코 쉽지 않을 것이란 것을 쉽게 알 수 있었다. 또한 이른 더위가 찾아온 시기여서 더울 것이란 것은 당연한 것이었고, '취약계층의 주거개선' 활동인 만큼 집이 열악할 확률이 높아 냉방이 될 일이 없다는 것은 간단하게 유추해낼 수 있었을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들은 이 활동에 도움이 되고 싶다며 선뜻 지원 신청을 했다. 손익을 잘 따지는 계산적인 사람이었다면 결코 하지 않았을 선택일 것이라고 생각한다.


나를 제외한 세 명의 자원봉사자분들 중 한 분은 사회복지학과 출신으로 졸업 후 취업준비를 하고 있으며 이쪽 분야로 취직을 할 예정이라 다양한 경험을 하기 위해 신청하게 됐다고 했다. 그리고 나머지 두 분은 기계공학과 출신으로 한 분은 졸업하고 일을 하다가 퇴직을 하고 새로이 구직을 하기 위해 봉사활동을 한다고 했고 또 다른 분은 고교 졸업 후 먼저 일을 하다가 그만두고 대학에 들어온 지 얼마 되지 않았으며 이후에 취직을 준비할 때 봉사 관련 경험이 있으면 대기업 취직에 좋을 것 같다는 생각으로 봉사에 참여하게 됐다고 했다.


봉사의 진짜 이유


결국은 모두 구직에 도움을 받기 위함이었다. 납득할만한 이유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나는 이들의 답변이 다분히 사회적인 답변이었다고 생각한다. 내가 말하는 사회적인 답변이란, 보통 사람들은 처음 만난 사람과 대화를 할 때 본인의 철학이나 신념과 같은 거대 담론을 얘기하진 않는다. 그저 대화를 하기 위한 표면적이고 상대가 충분히 납득 가능한 말들을 늘여놓을 뿐이다. 본인의 철학이나 신념을 얘기하는 일은 상대방을 설득하는 과정(굳이 설득할 필요가 없긴 하지만, 상대방의 '좀 더 설명이 필요한 걸'하는 표정을 보고 있으면 얘기를 더 해주지 않을 수가 없다)이 필요하므로 시간이 충분하지 않은 상태에서는 좀처럼 꺼내기 어려운 주제이고, 또한 친분이 없는 상태에서는 이러한 주제를 잘 꺼내지 않는 것이 보통이다. 그들의 마음속에는 분명 무언가 다른 것이 있었을 것이다. 분명히.


돈을 받으며 일을 하는 입장에서도 게으름을 피우고 농땡이를 피우는 사람이 있다. 그런데 그들은 게으름이 없었다. 농땡이 피우는 모습을 단 한 번도 볼 수가 없었다. 누구 먼저랄 것 없이 먼저 나서서 하려고 했고 도움이 되고자 했다. 담당자분이 '왜 봉사하러 오셨어요? 취직 때문에? 아니면 진짜 선의의 마음이 있어서 그런가?'라고 질문했을 때 솔직하게 '구직 때문에 왔고 솔직히 선의로 오는 건 쉽지 않은 일인 것 같다'라고 말한 분이 있었다. 그렇게 솔직한 말을 하던 그분은 봉사가 끝난 후에 '그래도 도움이 된 것 같아 다행'이라는 말을 했고, 다른 한 분은 막노동을 해본 적이 있다고 말하고는 그런데 이 일이 막노동보다도 힘들었다고 말하며 웃었다.



무해한 사람들, 그들이 품은 질실


나는 이런 '무해한 사람'들이 단지 '취직에 도움'이 되기 위해서 봉사를 하지는 않는다고 생각한다. 물론 봉사의 시작은 구직이 목적이었을 수 있다. 하지만 앞에서도 말했듯이, 다른 다양한 종류의 비교적 수월한 봉사 대신에 이 봉사를 택했다는 것과, 봉사를 진행할 때 그들이 보인 태도와 그들이 했던 말들에서 나는 그들의 선량함과 가치관을 짐작해볼 수 있었다. 나는 좋은 인터뷰어가 아니기 때문에 그들의 속마음까지 알 수는 없었고, 그럴 시간도 부족했다. 하지만 때로는 당사자가 직접 하는 '말'보다 그가 보이는 '행동'과 '태도'에서 그가 품은 '진실'이 더 선명히 드러나기도 한다는 것을, 나는 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