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맥은 유지하게 해주자
한국의 이공계 연구 수준이 매우 높아졌다. 호주전략정책연구소(ASPI)에서 작년 발표한 자료를 보면 한국은 64개 분야 가운데 24개 분야에서 5위 안에 들었다. 반면 우리가 많이 비교해 온 일본은 8개 분야에서만 5위 안에 들었다 [1]. 논문의 질을 봐도 상당한 수준에 도달했다. 2020년부터 2022년 사이 출판된 논문 가운데 피인용 상위 10퍼센트 논문 수를 비교해 봐도 한국은 9위, 일본은 13위였다. 이 정도라면 시간이 지났을 때 노벨상도 나오지 않을까?
그러나 아이러니하게도 이공계의 인기는 20년도 더 전부터 떨어져 왔다. UNIST는 울산에 있는 과기원인데, 신입생 충원율이 2022년 102.0%, 2023년 100.3%, 2024년 98.3%로 떨어지고 있다 [3]. 서울대 화공과 대학원 지원자의 수 역시 줄어들고 있다는 기사가 나왔다 [4]. 다른 학과들도 크게 차이가 없을 것이다.
그 와중에 정부의 이공계 연구비 정책은 매우 아쉽다 [5,6]. 세수가 부족해서인지 정부는 기존에 잘 해온 연구마저 연구비를 줄였고, 소규모 연구실에서 요긴하게 혜택을 받아온 생애 첫 연구와 기본연구를 없앴다. 돈이 없으니 허리띠를 졸라매고 특정 분야에 연구비를 몰아주는 것이 더 낫다고 생각하는 것 같다.
하지만, 돈이 없다고 살림살이를 다 팔아버릴 수는 없는 것 아닌가? 이렇게 인건비를 줄이면 대학원생 인건비조차 줄 수 없어지고 [7], 이공계 대학원의 인기는 더 떨어지게 될 것이고, 후속 세대 양성이 어려워진다. 지금의 대학원생 가운데 일부는 미래에 교수가 될 텐데, 인원이 줄어들면, 그리고 특정 분야에만 교수가 배출되면, 한국의 학계가 산업의 변화에 취약해지지 않았겠는가?누가 5년 전에 양자컴퓨터와 AI가 이렇게 인기가 높아질지 알았겠는가? 적어도 고루고루 명맥을 유지할 수 있게 해줘야 하지 않는가?
[1] 매일경제, 2024년 8월 29일, [단독] 韓日 기술력 20년 새 역전 성공... 호주 싱크탱크, “한국 성과에서 일본 할 일 많을 것”
[2] 대학지성 In&Out, 2024년 8월 11일, 日과학기술지표 보고서 '피인용 상위 10% 과학논문 수, 한국이 일본 제쳐'
[3] 경상일보, 2024년 10월 8일, 울산 과학기술연구 경고등 켜졌다
[4] 헤럴드경제, 2025년 2월 24일, 서울대 화공 석박사 경쟁률 3개 학기 연속 하락
[5] 연합뉴스, 2024년 10월 25일, "기초과학 예산 늘었지만 과제수는 줄어… 인력양성 생태계 붕괴"
[6] 오마이뉴스, 2024년 9월 5일, 우수' 평가받은 R&D사업 30%도 내년 예산 깎였다
[7] 머니투데이, 2024년 8월 21일, 하루 10시간 이상 연구실 근무… 알바 등 다른 소득활동 어려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