첫 자취로 한 곳에서 6년을 살아본 기록을 전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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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은 추적추적거리며 비가 옵니다. 비가 오거나, 눈이 오거나 햇살이 비치거나 날씨의 계절변화를 저는 제가 거실로 칭하는 부엌과 연결된 공간에 놓인 식탁에 앉아 밖을 내다보는 것으로 감상합니다. 꽤 낭만적이라고요? 어떻게 보면 그런 셈이기도 하겠네요. 그래서 방 하나 공간쯤은 거뜬히 나올듯한 테라스가 딸린 이 집을 저는 처음 보았을 때부터 맘에 들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아마 그 당시에는 어렴풋이 생각되던 내 모습이 지금 식탁에 어두커니 앉아 창밖을 멍하니 내다보는 제 모습이었을지요.
오늘은 테라스에 대해 얘기하고 싶네요. 이곳은 비가 오거나, 눈이 쌓이면 테라스로 바로 나갈 수 있는 것이 장점이지만 약간의 턱이 있어서 당연히 별도의 신발을 신고 나가야 할 것 같은 구조입니다. (아마 물이 넘치거나, 더러움을 방지하기 위해 구조상 턱이 존재하는 것 같습니다) 때문에 저는 매번 창문을 넘어 탈주하는 듯한 불편한 느낌을 안고 테라스로 나갑니다. 턱이 없이 거실과 발코니창이 스무스하게 연결되었다면 조금 느낌이 달랐겠지요? 아무튼 여름에는 저는 햇볕이 잘 드는 그 공간을, 겨울에는 소복소복 눈이 쌓이는 곳을 어떻게 사용할지 매우 흥미롭게 스스로를 지켜보기로 했습니다.
그전에 이 집 발코니의 분명한 특징을 몇 가지 언급하지 않으면 안 되겠네요. 제 건물은 다세대 낮은 높이의 주택집이 모여있는 동네라 주변으로 30~40 센티미터 정도 좁은 간격으로 옆건물이 다닥다닥 붙어있습니다. 제가 창밖으로 바라보는 바로 맞은편으로 동일하게 4층 높이의 다세대주택이 있고, 저희 테라스와 같이 그쪽도 옥상이 있습니다. 차이점으로는 그쪽 건물은 누군가의 테라스 공간이 아닌 단순히 옥상이라는 점이 차이라고 하겠네요. 그 옆을 대각선으로 마주하고는 5층 높이의 주택 겸 사무실의 복합 건물이 있습니다. 그쪽은 4층이 저처럼 거주지이기에 약간의 발코니 형식의 공간이 있는데, 이곳 또한 제 층과 비슷한 높이에 위치해 있어 거의 팔만 뻗으면 사유공간을 침해할 수 있을 정도의 이웃사촌이 될 수 있는 거리입니다.
이전에 얘기했었던가요? 사실 테라스는 4층의 옆집과 공유하는 공간을 임의로 반을 나눠 사용하는 구조임을. 저의 테라스는 나무판자의 울타리로 구획되어 반을 가렸습니다. 울타리판은 제 키보다 높고 빽빽하지만 나무와 나무사이의 틈사이로 힐눈을 뜨고 매섭게 바라보면 옆집 테라스에 뭐가 있나 보일 정도 헐겁습니다. 입주당시 건물이 새로 세워졌을 때 이 울타리는 놀랍게도 끈과 철사로 나무판을 지지하고 있었습니다. 세찬 바람과 폭풍우가 지나간 몇 년 후의 여름에 고정된 못이 벽을 기이한 소리와 함께 긁어 내려가며 우당탕탕 무너진 것은 그리지 않아도 예상이 가능한 시나리오였기에 지금에서는 꽤나 인상 깊은 추억이네요. 걱정은 마세요. 그 이후 건물관리자에게 요청으로 철강 프레임을 사용하여 구조를 단단히 하였습니다. 다만 울타리 형태의 나무판자는 여전히 그대로 재활용하였기에 실눈 뜨기의 옆집 염탐은 가능합니다.
옆건물과 또 다른 옆건물의 염탐은 아주 쉽습니다. 저희 테라스는 완전히 근접하게 주변 건물에 개방되어 있어서 그들도 제 거실을, 저 또한 그들의 거실을 바라볼 수 있거든요. 하지만 저는 그렇게 낯선 이와 친밀감을 추구하는 개방적인 사람이 아니기에 초기에는 적잖이 당혹스러웠습니다. 아마 당신은 강제적으로 사적영역을 공용공간으로 향유하는 넓은 아량을 베풀 방법을 찾으실 수 있겠지요? 그렇다고 저는 가림막이나 갈대조각, 흔히들 설치하는 그물망 혹은 잎사귀 모양 구조물로 테라스를 막지 않았습니다. (꽤나 다양한 방식으로 개인 태라스를 가리는 구조물이 인터넷에 많이 판매되고 있습니다) 물론 저도 생각을 안 해본 것은 아닙니다. 특히 옆건물의 옥상에서 타인이 빨래를 널려고 올라오거나, 텐트를 설치하고 낭만의 저녁을 보내는 것에 깜짝 놀라며 그들을 마치 제 집에 들어온 침입자처럼 여겼을 때 저는 바로 가림막이라는 세 단어를 이미 쇼핑창에 검색하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시간은 신기하게도 사람을 적응시킵니다. 침입자 같은 그들도 어느새 익숙해져서 테이블에 앉아 이렇게 한적하게 바라볼 수 있게 되었습니다. 대각선 옆집의 거주자는 어느새 흰 시폰 커튼으로 프라이버시를 지켰습니다. 제가 그들이 초대한 손님들이 가끔 테라스에 나와 담소를 나누거나 담배를 피우면, 여기 사람이 있습니다 라는 표시로 조명을 켜거나 창문을 오히려 열어서 제 존재를 각인시킵니다. 그들도 너무 근접한 공간에 살아있는 생물을 보면 조금 섬뜩하게 놀라더라고요. 인간이란 이렇게 이상한가 봅니다. 분명 사람들이 살고 있는 집들이 모여있는데, 실제 거주하고 있는 사람을 바라보게 되면 신기하게 놀라면서 불편함을 느끼는 이유는 무엇일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