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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꿈에서본시인 Sep 21. 2024

저녁밥 하기 싫은 저녁

오늘은 행복한 하루를 먹고 집에 들어갑니다. 

오늘 나는 저녁은 밖에서 밥을 먹고 집에 들어가야 할 마음가짐이다. 

사흘간 연휴에 이어 추가로 사용한 연차로 이번 한 주는 정말인지 푹 쉬었다는 느낌이다. 딱히 대단한 일정으로 시간을 보낸 것도 아니지만 주 1회 출근이라는 낭만적인 한 주를 보낸 것만으로도 뿌듯한 기분이다. 그래서인지 퇴근하는 금요일의 발걸음이 더없이 가볍다. 창밖은 가을의 초입을 알리는 빗방울이 흐드러지게 흩뿌리지만 날씨와는 관계없이 설레는 기분은 상승곡선을 타고 중력을 거부한다. 퇴근하는 발걸음을 날아가지 않게 부여잡고 급상승하는 허기를 채울 오늘은 집 밖에서 저녁을 해결하고 싶은 마음이다. 외식을 선호하는 편은 아니지만, 매번 집에서 밥을 해 먹기에도 메뉴 레퍼토리가 늘 뻔하기에 마음이 싱숭생숭하거나, 오늘같이 평균 이상으로 산들거리는 마음이 들 때는 아무렇지도 않게 외식을 하고 싶은 마음이 든다. 


외식을 하면 나를 위해 남이 요리를 준비하는 그 순간을 나는 매우 좋아한다. 나는 그 찰나가 매번 맘에 들어 흘깃 보이는 주방을 바라보며(하지만 아쉽게도 주방이 전혀 보이지 않는 식당도 많다) 공간에서 이리저리 움직이는 손동작을 빤히 바라본다. 무엇을 위해 그들은 저렇게 분주하게 움직일까. 어떤 음식을 완성하기 위해서 저리도 바삐 행동하는 걸까 하면서 나는 침착하게 타인의 노동을 지켜본다. 대단한 입맛을 가진 것도, 굉장한 미식가이기에 식당을 선별하는 것도 아닌 나는 꽤나 단순하다. 내게는 요리사가 음식을 만드는 순간, 직원이 음식을 제공하고 손님이 맛있게 먹고 나서 식당을 떠나는 모든 과정이 나는 전체 요리같이 느껴져서 어떤 한 메뉴만을 위해 외식을 즐기려고 하지 않는 것 같다. 내가 선택한 음식이 테이블에 정성스럽게 올려진 것을 바라보며 오늘도 이렇게 따듯한 한 상이 차려진 것이 단순하게 기쁘다. 식당에서는 돈을 지불하면 음식이 나온다는 명백한 관계를 갖지만 먹고사는 행위에 단순한 차가운 논리는 적합하지 않다. 오히려 나는 돈을 내면 음식이 만들어지는 과정으로 쉽게 잊힌 관념에 반기를 든다. 그 과정에서 숨겨진 누군가의 바쁜 움직임과 손놀림을 망각해 가는 사람들이 아쉽다. 유년기에 괜히 식사 전 반드시 오늘의 양식을 준비주신 농부와 선생님께 감사의 인사를 드리는 게 아니었다. 


늦은 저녁시간 즈음 하루를 마무리하는 친구를 마중 나갔다가 집으로 걸어오면서, 오늘 하루는 어땠는지 무슨 일이 있었는지 안부를 묻는다. 한편에는 오늘 저녁을 무얼 먹어야 하는지 머리를 굴리면서. 늦은 저녁 시간이라 그런지 다들 집으로 돌아가는 발걸음으로 분주한 영업시간에는 식당 선택권이 많지 않다. 나는 아쉬운 마음을 재촉하며 주변 식당을 이리저리 둘러본다. 

집으로 가는 길에 기억 속에서 좋았던 냉면집을 발견했지만 아슬아슬한 마감시간이 걸렸다. 애초부터 식사시간이 느린 나에게 빠듯한 1시간 남짓한 영업마감시간은 다음기회에 라는 선택지만 들이민다. 아쉬움을 뒤로한 채 이미 머릿속은 냉면으로 가득 찼는데, 내 선택지였던 기회가 눈앞에서 사라지면 더없이 주체할 수 없는 미련으로 온 마음을 사로잡힌다. 머리를 굴려서 이미 전에 가보았던 떡볶이집도 생각해 보았다. 애매한 영업시간도 문제였지만 이미 내 마음은 냉면. 동행자가 있음에도 민망하게 메뉴선택권은 이미 냉면이었다. 

엉겁결에 조금은 늦은 시간까지도 열려있는 만두집을 갔다. 만두를 좋아하는 내가 이따금씩 방문하던 프랜차이즈 영업점인데, 각종 면류도 팔고 있어서 (특히나 냉면) 어떤 메뉴 실패에 대한 부담 없이 메뉴를 선택했다. 이렇게 또 하루를 행복한 한 끼와 마무리할 수 있다는 생각이 문득 들어 그것만으로 행복한 기분이 들었다. 오랜만에 먹은 냉면도 맛있었고, 즐거운 식사를 같이한 동행자가 있어 더없이 즐거웠고, 그리고 오늘 하루를 이렇게 보낼 수 있다는 사실에 나는 그저 감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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