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말인지 한 여름이다. 7월의 막바지를 달리는 월말의 계절감은 뭉게구름이 피어난 멋들어진 파란 하늘의 배경과는 어긋나게 뜨거운 햇살과 강한 자외선 그리고 후덥지근한 무거운 공기를 전해주며 사람들에게 탄식을 일으킬 뿐이다. 이렇게 더운 적이 있었던가 하면서 과거의 기억을 되돌려 보지만, 현재를 살고 있는 바보 같은 나의 기억력으로 지금보다 더울 수는 없었던 추억 속의 여름은 마냥 평온하기만 하다. 갑작스러운 비소식이며 예측을 불허하는 날씨의 변덕스러움은 인간들이 만들어낸 기후위기의 당연한 결과라는 뉴스가 성적표처럼 두려움을 자극한다. 우리는 현재의 38도, 39도라는 생경한 온도의 수치가 정상으로 받아들여질 때, 당혹스러움 보다는 미래에 다가올 두려움을 더 걱정하며 지금의 안락함을 즐겨야 하는 것은 아닌지 냉소적인 마음으로 오늘을 살아가야 하는 것일까.
평일에는 오피스의 차단된 공간 탓에 더위를 잊을 정도로 세찬 냉풍으로 설정된 일상을 보낸다. 겉옷을 챙겨 입지 않으면 안 되는 시간을 보내다가 주말이면 갑자기 다른 나라를 방문한 이방인처럼 갑자기 마주한 기온차는 더욱 큰 괴리감을 던진다. 외부에서 근무하는 노동자들은 언감생심인 불만을 느끼며 한도 끝도 없는 인간의 무력함을 한심하게 생각했다. 그래도 주말에 선풍이 하나만으로 살포시 불어오는 바람에 그늘진 공간이 있다는 것. 조금이나마 여름이라는 계절을 마주하고 살아가고 있다는 것을 느끼며 한 주를 보낸다.
하지만 강렬한 온도의 불쾌감은 늘 밖에서만 발생하지만은 않았다. 직장에서 마주해야 했던 아무렇지도 않은 말들은 쌓이고 쌓여서 불쾌지수를 높인다. 그것들은 아주 작아서 각각의 대화 속에서 미세먼지처럼 틈을 비집고 들어오기에 마치 대화당시에는 아무렇지도 않은 말들이었다. '**님은 운동을 좀 더 하면 좋아 보이텐데.', '요즘 얼굴 좋아 보여요. 굉장히 마르셨네요. 채식하면서 이 병따개는 열 수 있어요?" 칭찬으로 버무려진 탓에 그것이 힐난인지 조언인지 격려인지도 모를 그런 말들. '내가 보기에 이건 안 팔려. 팔리지도 않는 이런 제안은 왜 한 거지?' 주관적인 기준에 빗대어 판단 내리는 피드백들. 급하게 준비해야 하는 거니까 점심은 먹을 생각하지 말고 11시 30분에 갑자기 바로 준비해 달라는 자료, '결혼은 해야지, 사귀는 사람은 있고?', 나도 결혼생각이 없었는데 애를 낳고 길러보니까 그래도 결혼하는 게 맞는 것 같다는 자기 기준에 정당화된 인생관념을 아무렇지도 않게 피력하며 인생관을 강요하는 상사. 답답한 공기가 아니더라도 한 여름의 따가운 햇살보다 더 강렬한 불쾌감이 스멀스멀 느껴진다. 이런 직장에서의 오류들은 어제오늘 발생한 것들도 아니다. 맥락을 분리해서 따로 떼어 나열하더라도 이미 사회에서 문제점으로 공론화되면서 무엇이 잘못되었는지도 알게 되는 것들이지만, 막상 이런 말들은 극히 개인화되어 개개인에게 직접적으로 대면하였을 때는 그 객관화가 잘 성립되지 않는다. 당사자들에게 거론된 말들은 그저 온라인에서 논란이 되는 누군가의 이야기일 뿐 동일한 텍스트와 워딩이 아니더라도 같은 뉘앙스임에도 스스로가 비치지 않는 제삼자의 이야깃거리에 그치지 않는다.
나 스스로라고 돌이켜 보았을 때 그런 사회관계에서 자유로울 수 있었을까. 사람 위에 사람 없음을 매번 상기함에도 불구하고 회사라는 틀 안에서 벌어지는 인간관계 속 스스로를 드높이지 않으면 도태되는 가려진 룰 탓에 스스로를 잊어버린 적이 한두 번이 아니었음을 생각해 본다. 불합리한 의견에도 수긍하고 받아들였다면 무력해지는 기분 탓에 무엇인지 손해 보고 싶지 않은 마음이 울컥 드는 적이 많았다. 말이 길어지고 계속 동의반복되는 의견을 다른 수식어로 교차하기에 바쁜 무례하게 강요된 말들이 상대를 향한 공격이 아닌 스스로를 때리는 무기가 되어 씁쓸한 무게감만 되돌아온 적이 많았다. 자신의 언행이 집단이 묵인한 잘못된 배려 속에 어쩔 수 없이 발생한 사려 깊지 못한 개인의 책임이었다고 스스로를 다독여보기도 했지만, 그것은 무언가 단단히 잘못된 상황 속에 집단이 강요하는 기준을 긍정하는 결과로 이어지지는 않았다.
매년 불쾌지수가 높아만 가는 온도의 상승은 단순 기후위기로 만들어진 결론이 아닐 것이다. 어떤 현상에는 복잡한 이유와 과정이 서로 얽히고 섞여있어 그 원인의 근거조차 무엇이 시작인지도 모를 다양한 인과관계가 묶여있음을 짐작해 본다. 기후가 변하듯 사람도 변한다. 편의와 효율 그리고 능력주의와 절대적인 생산성으로 모든 것이 상업화될 수 있는 시대. 이에 따라 사람들의 사고가 시대에 따라 점점 편협하고 서로를 경계하고 비난하고 경쟁의 대상이 되며 시기와 기준의 잣대가 되어감을 나는 느낀다. 사회가 절대적인 수치 안에 묵인하고 있는 잘못된 방식이 사람들 스스로를 더욱 서로 불쾌하게 만드는 것은 어쩌면 자연스러운 자연의 섭리인지 모른다. 지금 드는 이 울컥 대는 짜증은 한여름의 이상기온이 만들어낸 더운 햇살 탓인가? 아니면 내가 살아가고 있는 사회를 향한 마음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