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얼마나 친한가요?
직원 A가 손바닥만 한 편지봉투를 건넨다. 장소만 달랐다면 뭔가 로맨틱한 느낌이라도 들었겠지만, 사내 카페테리아에서 건네받은 편지 봉투는 주문한 커피를 받지 못해 주변을 맴돌며 우왕좌왕하는 직원들의 발걸음만큼이나 경황이 없으며, 바리스타와 고객 사이와 비슷하게 선을 긋는 사적인 거리감 안에서 교환되는 일종의 규칙적인 업무 같다.
이번 주 초에 파티션 너머로 이미 호들갑을 떠는 직원들의 말소리에 분위기를 전달받아 이미 직원 A는 이 결혼을 한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다. (아무리 조용히 말해도 직원들 모두의 귀는 열려있다) 다른 동료들에게 청첩장을 돌리는 A님을 저 멀리 눈인사로 아는 체를 하며, 축하한다는 눈짓으로 애매한 예의를 표하기는 했지만 그때 별도의 인사가 없기에 나는 내가 그 청첩장을 건네받을 거라고는 미처 생각하지 못했다. 약간의 실망감을 마음에 품으며 나는 내심 청첩장을 건네받을 것을 기대하면서 예비신부에게 축하라도 전하고 싶었던가?
직원 A와는 겹치는 업무가 전혀 없기에 나는 사내에서 지나가며 인사만 나누던 사이로 지내고 있었다. 하지만 그마저도 팀이 이동함에 따라 다른 층을 쓰게 되면서 더더욱 볼일이 없게 되었다. 직원 A와는 그나마 입사가 비슷한 시기의 경력사원으로 입사교육을 같이 받은 터인지 나에게 미묘한 유대감은 확실하게 있어서, 오며 가며 지나치는 엘리베이터만이 유일한 연결고리였다. 사적인 이야기를 할 시간도 없었기에 같은 빌딩 속 동료와 직원들 사이의 입으로 전해 들은 A님의 결혼소식은 꽤나 의외였다. 직접 본인에게 들은 바도 아니었기에 사회생활이 그러하듯 나는 가십을 들은 듯 못 들은 척을 하며 태연하게 지내고 있었다.
그런데 직원 A가 오늘 같은 팀에 다른 파트에 속한 다른 동료들과 함께 청첩장을 주며 본인의 결혼식에 초대를 했다. 이런 기회가 아니면 절대 함께 모이지 않은 조합의 구성원들이 작은 테이블에 둘러앉았다. 친분이 넘치지도 않는 적절한 선을 지키는 동료들과 함께 결혼이라는 사적인 얘기를 공적으로 돌려 이야기하는 것은 떠들썩한 적막을 남겼다. 청첩장에는 좁쌀만큼 한 크기로 신랑신부 얼굴(본인인증이 거의 불가능하게 작은)이 프린팅 되어있다. 인물사진뒤로 유난히 푸른 하늘배경에 휘날리는 하얀 웨딩드레스의 휘날림이 과장된 우아함을 연출하며 의아한 분위기를 내뿜었다. 다른 동료는 이런 특이한 청첩장은 처음 본다며 혀를 내둘렀다. 자연스럽게 신혼여행지는 어디인지 궁금해하는 질문에 이미 열 번은 더 말했을 것 같은 스케줄을 1주 후의 예비신부는 순차적으로 침착하게 그녀의 유럽 일정표를 읊어대며 갑갑한 파티션의 오피스에서 벗어남을 진심으로 행복해했다. 그녀의 행선지가 조금도 궁금하지도 않았지만 청첩장과 함께 주스 한잔을 건네받은 나는 이 자리에서 맞장구를 치는 것이 조금이라도 간직한 동료애라고 생각하며 연신 과장된 반응을 보였다. 사진 뒷장에 새겨진 세로줄 가로줄이 교차된 예식장의 지도 다음으로 눈에 띄는 날짜는 다음 주 토요일. 그들에게는 오매불망 기다리며 고대하던 날짜가 나에겐 갑작스러운 일정으로 당혹스러움을 던졌지만 나는 나도 모르게 직원 A에게 참석을 약속했다. 왜지?
나는 결혼식을 별로 좋아하지 않는다. 그 의미에는 여러 가지 뉘앙스가 있지만 동료의 결혼식은 확실히 좋아하지 않는다. 진심으로 축하하는 마음가짐이 없는 병풍 같은 존재감으로 머릿수를 채우려 노력하는 한국 결혼식의 체계 때문이기도 하지만 친하지도 그렇다고 안 친하지도 않은 애매한 거리감을 애써 확인하려 드는 명확한 의도에 불참이라는 분명한 답이 던지는 마음의 표현이 부담스럽기 때문이다. 이건 아마 청첩장을 건네는 당사자도 그러하겠지만 받는 사람도 똑같은 고민을 하고 불편한 종이의 무게감을 애써 무시한다.
축하할 일이 있을 때 함께 축하해 줄 수 있다는 것. 진심으로 사람을 마주하고 축하의 감정만 전달할 수 있으면 좋으련만, 인간관계에서 묶인 여러 이득의 교환에서 이뤄진 감정의 교환이 나는 버겁다. 때문에 씁쓸한 마음으로 친하지도 않은 동료가 건네준 청첩장만큼이나 불편한 마음이 드는 건 왜인지 감정을 강요하는 느낌까지 들기도 해서 애써 그 마음을 외면하려 하는지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