짐을 싸고 공간을 옮기는 것 이상의 생각들
이사를 하고 두 달 남짓 넘었다. 당연하게도 두 번의 관리비가 청구되었고 그간에 나는 조금씩 출퇴근의 여럿 길목가운데 어느 방향이 빠른지, 두 대의 엘레베리터 중 어느 쪽이 먼저 올지(항상 예상은 틀리지만), 분리수거는 무슨 요일에 하는지 (이번 아파트는 화, 목, 일요일에 한다) 낯선 공간에서의 룰이 나의 행동을 일부러 끄집어내지 않아도 자연스럽게 생각할 수 있도록 습관으로 기억에 저장하며 새로운 공간에서 적응을 해 나가고 있다.
이전 6년간 살던 첫 전셋집에서의 생활은 모든 것이 그렇듯 완벽할 수는 없었지만 나 나름대로의 생활방식을 하나씩 알아가는 과정 탓에 기억이 많이 담겨 있던 곳이었다. 빽빽이 들어찬 연립주택 지역인 탓에 창문을 열면 보이는 옆집의 사람들과 노랫소리가 당연했고(저녁 11시 넘었던 팝송메들리에는 경찰신고로 대응하며 훈훈한 이웃사촌의 존재를 과시했다), 건물 최상층인 탓에 엘리베이터가 작동할 때마다 요란했던 승강기 기계음, 계절마다 은은하게 풍기던 귀갓길의 꽃내음과 건물이 언덕에 있어 서울하늘을 온전히 받아들인 거실창을 물들이던 저녁노을은 그렇게 과거가 되었다. 빈 공간에 하니씩 채워지는 나의 의도는 누군가의 의견이 섞인 것이 아니라 온전히 스스로의 결정에 의해 만들어진 이유로 존재해야 했기에, 나는 가뿐한 책임감과 지워진 무게감을 느끼며 그곳에서의 매일을 보냈다. 그 가운데 모두가 말하는 혼자서 사는 재미가 이런 거였구나 하며, 나라는 인간은 홀로 있을 때 무엇을 생각하는지, 고독과 외로움의 차이는 무엇인지 또 그 과정을 어떻게 받아들이고 나는 헤쳐나갈 수 있을지를 생각했다. 빈 공간을 메워보려고 그간 유심히 보던 가구나, 소품, 유명하다던 제품들을 구매하기도 해 보았고, 때로는 낯선 사람들을 초대해 어색한 분위기로 스스로 짊어지고 있던 먹먹한 감정을 메꿔보려고도 했다. 그것들은 한낱 시기에 불구한 시도였지만 그때 그 당시에 나에게 필요했던 부분이었고, 여전히 나는 그 방법을 모른 채 나는 어떤 삶으로 나를 돌보아야 할지 고민 중인 삶을 보내고 있다.
직장이 멀었던 것도 아니었고 딱히 집에 하자가 있었던 것도 아니었기에 뜬금없이 이사를 결정하게 된 이유에 대해 가족들은 궁금증을 가졌지만 표면적으로 드러난 아무런 이유만으로 나는 모호하게 그 대답을 대신했다. 떠날 때를 알아야 한다는 것. 그것은 항상 분명한 이유가 되어 결론이 되지 않아도 일어날 일은 일어나야 하는 것처럼 나는 느꼈다. 막상 이사를 결정하고 주말마다 여러 부동산중개소에 연락을 하고 각각의 물건을 방문하며 (나는 두 달 정도 총 6명의 대략 12개 정도의 집을 보러 다녔다) 마치 한동안 취미가 남의 집을 보러 다니는 사람처럼 가격대비 형성된 사람들의 생활과 삶의 흔적을 엿보았다. 이 집은 공간이 아쉬워서 안되고, 저 집은 가격이 예산에 크게 벗어나서 안되고, 어느 것 하나 쉽사리 결정되지 않는 가운데 진척이 없어 보이는 집 찾기는 이사를 결정한 과거의 나에게 다시 돌아가고 싶은 충동을 던지면서도 스스로가 내뱉은 말에 대한 무게감을 지우며 나는 다시금 운명의 집을 만나기만을 고대하며 발품을 팔았다. (이미 나는 세 달 전부터 집주인에게 계약연장에 대한 거부의사를 밝히고 집을 내놓음과 동시에 새로운 세입자가 결정된 상태였다: 놀랍게도 집을 내놓자마자 내가 살던 집을 보러 온 새로운 세입자는 보자마자 입주를 결정했다!)
누가 봐도 팔리지 않아 재고처럼 쌓여버려 빨리 처리해버리고 싶은 집의 계약을 재촉이던 중개인(심지어 그 집은 현관문의 아귀가 맞지도 않았다), 생각지도 못한 위치에 독특한 구조를 가진 집을 소개하던 또 다른 중개인, 과연 집을 중개하고 싶은 것인지 알 수 없는 소극적인 말투로 슬그머니 집을 보여주던 중개인 등등 나는 서로 다른 사람들을 만나고 집을 보며 그들이 보여준 집을 무게추를 삼고 나는 내가 이사를 하려던 이유가 무엇이었는지, 앞으로 보내고 싶은 공간은 어떤 곳인지 이런저런 생각을 담으며 질문하고 질문했다.
깊은 고민이 무색하게도 중개당일에 엉뚱하게 업데이트되어 연락한 매물건을 보고 나는 그날 결정을 내렸고 나는 이사를 했다. 이전 세입자와 이삿날이 딱 들어맞지 않아 금전상 거래가 바로 진행되지는 못했지만, 그 덕분에 이삿날이 여유롭게 진행되었고 (입주 전 사전에 짐을 미리 옮겨둘 수 있도록 배려해 주셨다) 이전 과정에서 발품이 덕을 본 탓인지 모든 것이 순탄하게 진행된 이사를 마무리했다.
추억이 깃든 짐들을 하나씩 박스에 넣어가며, 방 하나가 있던 작은 전셋집에는 보이지 않는 짐은 왜 이렇게 많던지 나는 나의 수납실력이 놀라운 것인지 아니면 익숙한 짐 자체를 내 시야에서 지워버린 것은 아닌지 다시 한번 인간의 익숙함에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가구라고 해봤자 싱글침대, 식탁, 서랍장이 전부였지만 그마저도 침대는 가져오기도 번거로워서 중고거래로 나눔 하고 식탁은 이케아 제품이라 분리해서 정리해 두었는데도 간소해지지 않는 물건들은 조금도 줄어들지 않아 보였다. 어찌어찌 1톤 트럭에 정리된 짐은 내가 기대하던 나의 미니멀리즘과는 거리가 멀어 보였다. (놀랍게도 나는 새로 산 소파에서 이 글을 작성하고 있다) 여전히 희망은 미니멀리스트를 꿈꾸지만 채워진 공간은 이상과 거리가 멀다. 공간이 바뀜에 따라 내가 만들어온 계획이 또 달라졌음을 알게 되었고 절대 변하지 않을 것이라고 굳게 믿어온 취향은 정치인의 공약만큼이나 바람에 휘청이는 변덕임을 깨달았다. 결코 추가로 구매하지 않을 결심인 가구를 나는 어째서인지 호탕하게 구매하기 시작했으며 (전세금의 단위에 익숙해진 나머지 나는 씀씀이가 커졌다: 다행히 지금은 다시 현실을 자각했다) 드래곤볼을 모으듯 내게 부족한 지금의 무언가에 귀 기울이고 현재 갖춰지지 못한 재화에 대한 예민한 촉각을 곤두세웠다.
나는 몇 년 뒤에 또다시 짐을 싸면서 똑같은 고민을 안고 기억을 뒤적이며 이사준비를 하고 있을 것이다. 그때도 이사의 이유가 무엇인지 왜 갑자기 결정을 하게 되었는지 애매모호한 답변으로 주변에게 이사의 목적을 이야기하며 알지도 못하던 사람들과의 만남가운데 나만의 공간을 찾아 나서며 반복되는 모습으로 나를 돌아보고 있겠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