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은 사람에게

복잡한 마음으로 한 주를 보내며 스스로를 바라본다.

by 꿈에서본시인

지하철을 기다리며, 스크린 도어에 붙은 시 한 구절을 눈여겨보았다. 정확한 구절은 기억나지 않지만 대략적으로 그 내용은 '작은 사람한테는 크게 보이는 일이 사고가 큰 사람에게는 사소한 일로 여겨진다'라고 쓰여있었다. 그 문구가 문득 내 시야에 걸려 나에게 다가왔던 이유는 내가 겪고 있는 상황을 나는 과연 객관적으로 받아들이고 삶을 살아갈 수 있는가 하는 지금의 고민 때문이었다.

한 주를 채우고도 넘쳐버린 업무의 스트레스는 직업에 대한 회의와 스스로가 결정한 과거의 선택에 대한 의문만을 남기며, 결코 답을 찾을 수 없는 막막함만 남겼다. 아직도 해결할 길이 없어 보이는 어두운 터널 속에 갇혀버린 것 같은 나는 사람들과의 관계에서 소속감을 잃어버린 이유로 문제의 근본을 탓해보려 했다. 하지만 얼추 맞아떨어지는 것 같은 주관적인 공식은 문제의 근본 원인을 제대로 파악하지 못한 탓인지 이런저런 시뮬레이션을 통해 불완전한 결괏값만 내보이며 감정적으로 남은 스스로만 들춰내기 일쑤였다. 깔끔하게 떨어지는 공식이 있다면 나는 결코 주저하지 않고 행동으로 실천했을 터인데, 답을 내고 행동으로 이끌지 못한 간극사이에서 고뇌하는 스스로가 너무나도 작아 보여 나는 그 모양새를 모른 척해보려 해도 감출길 없는 자아를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지 망설였다. 아마 나는 내 생각 이상으로 작아져버린 나를 감정이라는 순간으로 과장되게 포장해서 문제의 본질을 꿰뚫어 보지 못하게 스스로를 막아내고 있는지 모른다. 그 글귀의 누군가처럼 아무렇지도 않게 큰 사람인척 지금을 사소한 찰나로 여길 법도 한데, 나는 아직도 여전히 지금을 살아가고 있다는 충실한 좌우명 아래 오늘을 전부로 미래를 판단하려 애쓰려고 하는 것일까. 인간이 살면 얼마나 살아간다고 유한한 삶의 자각도 없이 현실에 집착하게 되면 이렇게 모든 걸 떠안고 집착하게 되는 무한한 욕심만을 지고 나아간다.


마음을 추스르지 못한 나와는 다르게 크리스마스를 맞아 딸을 둔 거래처 이사님은 이동 중인 차 안에서 초등학교 저학년인 자녀이야기를 슬그머니 꺼내며 아직도 산타를 믿고 있다는 순수한 아이의 마음을 애틋하게 꺼내 보인다. 이제 곧 10살이 되었으니 10살이 되면 더 이상 산타는 찾아오지 않는다는 본인 가족의 규칙을 설파하며 (아마 전 세계의 10살의 어린이들도 산타를 못 만나다는 가정하에) 올 해는 따로 선물을 준비하지 않아도 됨을 토로하면서도, 동시에 작년까지 몰래 한 귀퉁이에 미리 준비한 선물을 들키지 않기 위해 노력했던 아슬아슬한 스릴을 헛헛한 마음으로 내비쳤다. 그 이야기를 하며 아이와 함께 한 해를 거듭하며 시간을 바라보는 부모의 마음속에는 세세하게 파편화된 막막함과 불안감은 조금도 찾아볼 수가 없었다. 막연하게 느껴진 '큰 사람이 바라보는 사소한 일'이란 아마 누군가를 생각하고 사랑하는 마음으로 치우쳐버린 편향된 관심 탓에 불쾌하고 걱정되는 일 따위는 머릿속에서 후순위가 되어버린다는 의미는 아닐까.


주말이 되어 아무와도 얘기하지 않고 어디에도 나가지 않고 특별한 일이 없이 하루를 보내는 날이 있는가 하면, 말도 안 되는 문제가 생겨서 일이 지연되거나 신뢰를 받지 못하는 상황이 생겨 사람과의 관계가 멀어졌다고 느껴져 온갖 스트레스로 기분이 바닥으로 내려간 하루를 보낸 시간도 있었다. 그게 모두 한 주 동안 발생한 일이었는데, 요즘 내부사정으로 인해 오르락내리락 거리는 환율 마냥 엎치락뒤치락 거리는 유연한 감정의 곡선 그래프에 나는 조금도 익숙해지지가 않는다. 신기하게도 이런 일련의 시간이 쌓여 한 사람이 짊어지는 삶이 인간이라는 존재라니. 오늘을 살고 내일을 기다리는 나는 구차한 변명으로 남은 하루를 메꾸며 이런 변변치 않은 방식으로나마 스스로를 다독여 보려는지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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