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은 지옥 같아도 너는 정말 괜찮을 거야

by 존치즈버거


요즘 남편과 같이 요가를 한다. 화요일 수업은 소도구를 이용한 근력 위주의 필라테스 수업이었다. 둘 다 땀을 한 바가지 흘리고 돌아와서는 운동한 게 아까워 제대로 먹질 않았다. 아이를 재우고 잠자리에 드니 벌써 12시. 그제야 배가 고파 남편과 누워 먹고 싶은 것들에 대해 끝없이 이야기했다. 언제 뭐 먹자, 이때는 뭐 먹자 이야기하다 결국 새벽 1시가 넘어서 잠에 들었다. 목요일에 장어를 먹기로 약속하고서.


회사에서 일찍 돌아온 남편과 아이의 손을 잡고 집 앞 장어집에 갔다. 커다란 통유리를 가진 가게의 내부가 훤히 보였고 늘 저기 한 번 가보고 싶은데 생각만 하던 곳. 가게는 어수선했다. 소금구이 장어는 맛있었다. 청하를 시켰다. 남편은 피곤해 한 잔만 마셨다. 나머지는 내가 다 마셨다. 맛있다, 맛있다 연발하다 배가 부르니 소화도 시킬 겸 과거 이야기를 나눴다. 과거에 우리는 한국이 아닌 외국 어느 도시에 같이 있었다. 그 과거에 우리는 떼로 뭉쳐 다녔다. 그때 우린 연인은 아니었다. 안 친하다고 하기에는 너무 자주 얼굴을 봤고 친하다고 하기에는 둘이서만 있으면 어색한 사이. 사실상 남. 결혼할 줄 몰라서 흉한 꼴도 자주 보여줬다. 나는 그 당시 너무 괴로웠다. 매일 술 마시지 않으면 잠들 수 없을 만큼. 아직도 가끔 악몽을 꾼다. 거기에 갇혀 있는 꿈. 잠에서 깨면 현실이 어떻든 그때보다 낫다고 안도한다. 남편과 연인이 되고 난 이후부터 공유할 특정한 도시가 있다는 사실이 새삼 반갑게 느껴졌다. 그 도시가 마냥 밉지만은 않은 곳이 되었다. 비로소 그곳에서 탈출한 기분이 든다.


"다시는 20대로 돌아가고 싶지 않아."

내가 이렇게 말하자 남편도 그렇다고 했다. 지금의 생각을 가지고 다시 돌아간대도 20대는 너무 힘들었다고, 지금이 좋다고. 나도 그렇다고 했다. 다만 다시 돌아간다면 분수에 맞지 않는 사색 대신 실리적인 일을 좀 더 하고 싶다는 미련은 남지만. 나는 20대가 얼마나 망한 시간이었는지 돌림노래처럼 또 말했다. 남편은 듣고 들었던 이야기인데도 처음 듣는 사람처럼 묵묵히 고개를 끄덕였다.

나는 또 이런 말을 했다. 가끔 이른 낮에 방을 쓸고 닦고 화분에 물을 주고 커피 한 잔을 하며 정신없이 웃고 뛰는 딸과 강아지를 바라보고 있으면 내가 썩 괜찮게 살고 있는 기분이 든다고. 그리 넉넉하거나 삶이 허무해질 만큼 성공해본 적도 없지만 매일 좋아하는 일을 하며 더 나은 미래를 꿈꾸는 삶이란. 남들에게는 별 거 아닌 지금 내 삶이, 나의 20대에는 전혀 가질 수 없는 낭만과도 같다는 사실을 누가 알까.


생각해보면 그렇다. 조금 지루한 일과를 마치고 잠든 아이의 이마를 쓸어주는 무탈함, 화요일 밤에 넉넉한 사이즈 침대에 누워 먹고 싶은 것을 말하고 약속한 날짜에 약속을 지킬 수 있다는 것. 우리가 약속한 것들에 우리가 직접 가닿을 수 있는 삶. 대단한 성공이나 업적은 없어도 어찌 됐건 매일 과정 속에 머무를 수 있다는 것. 나의 속내가 어떻든 누군가에게는 나의 매일이 사치처럼 보일 수도 있겠지. 그러니 감사하자고.


매일 감사를 말할 수 있는 삶은 어쩌면 그 자체만으로도 성공한 것이 아닐까. 우리가 약속한 식당에, 우리의 생각대로 앉아, 지금의 우리 삶이 퍽 괜찮다는 이야기를 하며 속으로 이런 생각을 갈무리했다.


"타임머신이 있다면 그냥 잠깐 돌아가서 내 20대한테 너무 걱정 말라고 지금은 지옥 같아 보여도 너는 괜찮아질 거라고 그 말은 꼭 좀 해주고 싶다."

자리를 뜨면서 나는 이렇게 말했다. 그때 웅크리고 앉아 차라리 죽어버렸으면 좋겠다고, 이렇게 살다 간 모든 게 망할 거라고, 스스로를 매일 괴롭히던 내게 끌어안을 수 있는 누군가와 맛있는 저녁식사를 하는 모습을 보여주고 싶다는 생각. 네가 그토록 바라던 대문호는 못 됐지만, 겨우 장어구이 하나에도 과거의 나를 위로할 수 있는 여유를 가지게 되었다고 꼭 좀 전해주고 싶었다.


가게를 나오는데 바람이 차가웠다. 산책하자던 아이가 마트에서 껌 8개를 사고는 그만 집으로 가자고 했다. 우리는 뛰어서 집으로 왔다. 강아지가 우릴 반겼고 온기가 밀려왔다. 목요일 밤도 가지런히 서로를 정돈했다. 앞으로도 쭉 이렇게 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20대의 내가 상상도 못 할 삶을 나는 정말 살고 있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