브런치 아니었음 어쩔 뻔?

종이책 출간

by 존치즈버거

다음 주면 드디어 내 책이 나온다. 생각지도 않았던 종이책이라니!


밀리의 서재와 브런치가 함께 공모전을 시작했을 때만 해도 나는 내 글이 뽑힐 거라는 생각 따윈 하지 않았다. 틈날 때 차곡차곡 써놓았다가 공모전이 열리면 늘 제출했고, 제출할 때마다 또 늘 떨어졌으니까.


큰 기대 없이 글을 쓰고 한 편의 책을 만들어 마무리하는 느낌으로 공모전에 제출하면, 정신없는 일상에도 책 한 권을 완성했다는 소소한 뿌듯함이 밀려오곤 했다. 덜컥 수상을 하고 밀리의 서재에 올라왔지만 크게 인기는 없었다. 같이 뽑힌 이야기들이 속속 종이책이 되는 걸 보며 '조금 더 심도 있게 쓸 걸 그랬나?' 하는 후회도 밀려왔지만 어차피 나는 계속 쓸 거니까, 언젠가는 뭐라도 되겠지, 라는 심정으로 전심치지했었다.


그러다 봄에 갑자기 출판사로부터 연락을 받았다. 아기자기하고 트렌디한 에세이를 주로 출간하는 출판사였다. <비디오 키드의 생애>를 종이책으로 만들고 싶다는 연락에 잠시 어리둥절했다. 어? 나만 재밌는 게 아니었나 보네?


미팅을 하고 계약을 하고 원고를 여러 차례 다듬는 과정 속에 계절이 네 차례나 바뀌었다. 새로운 에피소드도 추가하고 문장과 내용에도 완성도를 더 했다. 책 한 권을 만드는데 이토록 많은 수고가 든다는 것을 새삼 실감했다. (더불어 단정하고 말쑥하게 변모하는 문장들을 바라보며 편집이라는 세계에 대한 강한 호기심이 생겨 요즘은 편집자 덕후가 되기도. 편집자나 편집에 관련된 서적을 엄청나게 구매하는 중. 정말 매력적인 직업이라는 생각이 든다.)


2019년까지만 해도 사실 나는 브런치에 대해서 잘 몰랐다. 트렌드를 잘 읽는 사람도 아니었고 브런치가 정확히 무얼 하는 곳인지도 별 관심이 없었으니까. 가끔 다음 메인 페이지에서 유용한 생활 지식이 있어 클릭하면 늘 브런치였기 때문에 나는 브런치가 생활 꿀팁을 올리는 곳인 줄 알았고...-.-;; 남편의 브런치를 시작해보라는 권유에 "나는 사람들한테 전달할 정보가 별로 없는데?" 하며 심드렁했었다. 그 이후로도 남편이 수차례 언급해서 도대체 브런치가 뭐야?라고 생각하며 둘러보았는데 내 생각과 달리 에세이도 올리고 소설도 올리고 인문학에 대한 글도 올리고, 암튼 쓰는 사람이 누구냐에 따라 다양하고 색다른 글을 접할 수 있는 본격 글쓰기 플랫폼이라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바로 작가 신청을 했다.


브런치 때문에 에세이라는 걸 처음 써봤다. 자기 이야기하는 것에 익숙하지 않았다. 소설을 쓰며 내 이야기를 녹인 적은 있어도 본격적인 내 이야기를 쓴 건 <비디오 키드의 생애>가 처음이었다. 책을 출간하겠다는 목표보다는, 평소에도 자주 책이나 영화를 주변 사람들에게 추천해왔으니까. 늘 영화를 달고 살아서 어떤 영화를 생각할 때면 항상 그때의 사람들에 대한 기억도 덩달아 길어 올릴 수 있었으니까. 그리고 그런 이야기를 할 때면 진심 즐거웠으니까 이걸 한 번 써보자, 그냥 가볍게, 라는 생각으로 어린 시절의 이야기를 무작정 쓰기 시작했다.


종이책을 낸다고 내 삶이 변할 리는 없다. 하지만 쓰는 행위 그 자체가 격려받는 기분, 그게 엄청나게 힘을 준다. 앞으로도 계속 써도 된다고, 조금 더 힘을 내 더 좋은 글을 쓰라는 다정한 응원처럼 느껴진다. 천둥벌거숭이처럼 날뛰던 문장들을 차분하게 다듬으며 나 자신도 다듬어 나갔다. 절대 포기하지 말아야지!


덕분에(종이책을 내게 되었다는 소식으로) 또 다른 기회도 얻게 되었다. 태어나 처음으로 로맨스 소설도 써보게 된 것이다. 정신없이 한 해가 갔다. 어떻게든 써내려고 분투하며, 나는 내가 글쓰기를 정말 좋아한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소박한 기억들로 하나하나 기워 만든 나의 조각보, 이 조각보가 많은 사람들에게 가닿아 온기를 전해줄 수 있으면 좋겠다. 나도 아주 잠깐 이 조각보 속에서 몸을 덮인 다음 다시 씩씩하게 앞으로 걸어 나가야지. 운이라는 게 그냥 덜컥 오는 게 아니라 결국은 내가 끊임없이 찾아 나가야 한다는 걸 새삼 깨닫게 된 한 해였다.


암튼 브런치, 무한 땡큐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