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소 단상

by 존치즈버거


나는 불안이 많다. 발을 동동 구르며 미리부터 걱정하는 타입은 아니다. 그러니까 내 불안은 굉장히 막연하고 정체가 불분명하다. 불안이 엄습할 때면 마치 안개에 둘러싸이는 기분이랄까.


선택도 잘하고 판단도 빠르고 성격도 급한 편이라 친한 친구들에게 이런 이야기를 하면 의아해한다. "네가? 전혀 아닌 것 같은데." 그러니까 나는 불안이 많은 사람들이 보이는 증세 같은 게 없다. 하지만 나는 안다. 내가 불안하다는 것을.


불안할 때면 특히 집중이 안 된다. 가라앉기보다는 붕 뜬다. 그래서 계속 서 있는 편이다. 뭔가 분주해 보이면서도 아무것도 하지 않는 상태다. 글쓰기와는 정반대. 글을 쓸 때는 무위도식하는 한량처럼 보이는데 내면이 엄청나게 시끄럽고 바쁘고 정신이 없다. 그래서 불안이 오면 글을 못 쓴다. 글뿐만이 아니라 내가 해야 할 모든 것들에서 손을 놓고 만다.


나는 흔히 부정적인 감정이라 일컬어지는 것들에 수용적인 태도를 취하는 편이다. 우울이나 상심, 좌절과 짜증마저 달게 삼키려 노력한다. 그것들도 나의 일부니까. 그래서 상황이 허락하면 그 감정에 스스로를 던진다. 절인무처럼 푸욱 몸과 마음을 담그고 그것들의 정체를 분석하려 애쓴다. 그런데 불안은 좀 다르다. 불안은 나를 불편하게 만든다. 나의 일상을 방해하고 나를 무기력하게 만든다. 스스로가 너무나도 무능하고 멍청한 인간처럼 느끼게 한다. 진짜 싫다. 징조만 가득한 공포 영화 안에 갇힌 기분. 자꾸 뒤돌아보고 멈칫하게 된다.


그리하여 나는 불안을 이기기 위해 하던 대로(?) 불안에 관한 책들을 여럿 사보았다. 제목에 불안이 들어간 책도 사고, 불안이라는 특정 감정을 다루는 심리학 책도 보았고, 정신병리학적으로 불안을 다루는 전문서적도 읽어 보았다. 뭐 읽을 때는 아, 그렇구나! 혼자 명쾌하게 이해한 척 하지만 하나도 해결되는 것이 없었다. 나를 괴롭히는 불안은 명확한 대상이 있는 게 아니니까. 차라리 이 장소 저 장소 바쁘게 돌아다니며 물리적으로 해결해야 하는, 그러니까 촌각을 다투는 일에서 오는 불안이 좀 더 나을지도 모른다. 그건 명확한 승패를 나눌 수 있으니까. 그런데 이 막막한 어둠의 기운은 뭐람. 혓바늘처럼, 놔두면 없어지긴 하는데 없어지기 전까지 계속 거슬리고 사람 신경질 나게 만드는 이 감각.


그냥저냥 그렇게 살았다. 다만 불안에 KO패 당하지 않으려 일부러 몸을 움직이기는 했다. 눈에 보이는 거 아무거나 했다. 그러다 알게 되었다. 나는 불안이 오면 청소를 해야 한다는 것을. 평소에도 청소는 하지만 불안할 땐 조금 더 집요하고 섬세하게 청소를 한다. 귀찮아서 외면했던 작고 구석진 곳의 먼지들을 닦아 낸다. 어지럽게 늘어져 있는 화장대도 정리해 보고 이불 커버도 바꾼다. 뚜렷하게 해결되는 일은 없지만 내가 머무르는 장소가 한결 새롭게 정돈되었다는 것만으로도 실타래가 풀리는 기분.


빅터 프랭클의 <죽음의 수용소에서>는 나에게 많은 영향을 주었다. 유태인 수용소에서 살아남은 사람들의 이야기. 살아남은 사람들은 소량의 물로 목을 적시는 대신 얼굴을 씻었다. 살육을 위해 존엄의 모든 요소를 제거하는 나치들. 개새끼들. 하지만 최악의 상황에서도 존엄을 포기하지 않은 사람들은 어떻게 해서든 스스로를 지켜냈다. 이게 내 무의식 속에 내내 떠돌았나 보다. 그러니까 불안이 올 때면 청소를 하는 행위가 사실은 살기 위한 발버둥이었음을 깨닫게 된 것이다. (꿈보다 해몽이라고 이렇게 글로 쓰니 엄청나게 자의식 과잉이 된 사람 같지만...) 먼지를 닦고 털어내며 내 안의 심산한 마음도 어느 정도 쓰레기통으로 슝-하고 던져버리게 된다. 단순 노동이 주는 몰입감 때문이기도 하지만 어쩐지 수행하는 마음으로 쓸고 닦기. 나를 포기하지 않기 위한 돌봄.


불현듯 불안이 내 자존감의 바로미터라는 생각이 들었다. 나는 내가 집요하게 나 자신을 탐구하고 파헤치고 용기 있게 대면하고 있다고 믿었는데 아니었던 것이다. 나를 믿지 못하고 내가 한없이 쓸모없어 보이는 그 모든 원인을 차단하고 그냥 안개 같은 불안에 스스로를 가둔 것이었다. 왜냐면 그렇게 깨닫고 나면 내가 왜 자존감이 낮아지고 나 자신이 싫어지는지 이유를 마주해야 하니까. 그건 너무 복잡하고 힘들고 막상 마주하면 나 스스로 해결할 수 있는 일일테고 그러면 해야 하는데 나는 사실 게으름뱅이니까.


그래서 청소를 하거나 영어공부 같은 것을 하면 마음이 놓이나 보다. 이건 눈에 확연하게 보이는, 그러니까 나 자신을 위한 유익한 행위이니까. 무엇보다 (오늘의 집에 나오는 멋쟁이 집처럼 완벽하게 깨끗하진 않지만) 정돈된 환경에서는 어쩐지 나 자신도 제법 괜찮은 삶을 살고 있다는 착각(?)마저 들게 된다. 그래, 이 정도면 성공했어, 예전을 생각해 봐, 어느 때보다 어른스럽구나. 어떤 복잡하고 어려운 행위보다 더 안도감을 주는 청소.


생각해 보면 확실히 주변이 어수선하고 지저분할 때는 내 정신도 산만했다. 당장 처리해야 할 다른 일들이 많다거나 마음이 콩밭에 가 있다거나. 나이를 먹을수록 내 주변을 정돈할 수 있게 삶 자체를 심플하게 만들어 가고 있는 것 같기도 하다. 일종의 자기 통제인데, 타인이 나를 통제하게 만들지 않으려면 나 자신이 나를 완벽히 컨트롤할 수 있어야 한다는 나만의 철학이 생겼다. 그렇다고 가혹하게 나를 몰아세우는 것은 아니다. 그러니까 이것도 내가 불행하지 않을 범위 안에서만. 아무튼 오늘 낮에 집을 정돈하며 이런 생각을 했다. 매일 조금씩 보이지 않는 곳들까지 꼼꼼하게 닦아내며 내 안에 묵은 번민들도 털어내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