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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존치즈버거 Sep 18. 2023

취한 사람의 시간

 닭발은 슬픔이다. 닭발을 닮은 손가락이 세 개 달린, 그 남자의 온정이 너의 슬픔에 쐐기를 박는다. 네 슬픔은 어쩌면 딱 그 정도, 취한 너의 시간이 갉아먹고 남은 너의 가치는 딱 그 정도, 그게 너다. 네가 어김없이 전화 다이얼을 누른 그 시간, 어쩌면 매일 똑같은 시간 똑같은 곳으로 배달을 하는 남자신의 일과처럼 너의 전화를 기다리고 있었는지도 모른다.


 여느 날과 다름없이 맥주 12병을 주문하는 너의 목소리에 베어나는 그 아득한 권태를 아는 그 사람의 호의는 그 월급의 10퍼센트. 너에게 그의 방값이 얼마고 그의 굶주림이 어떤지는 상관없겠지. 시답지 않은 개그 프로에 입이 찢어지게 웃다가, 웃음의 극한과 맞물린 울음의 꼭지는 여과 없이 방바닥에 쏟아지고, 너는 부끄러움 없이 맨바닥에 몸을 비비 문대면서 짐승처럼 슬픔을 토해낸다.


 그 남자는 말이 없었다. 돼지오줌보처럼 부은 대가리를 문밖으로 슬쩍 내밀 때, 밀려오던 역한 기름 냄새와 땀에 절은 고약한 악취들, 너는 사람의 체취를 잊은 지 오래다, 거리낌 없이 그와 손이 닿을 때 그의 떨리던 눈빛을 보지 못했을 뿐이다. 덜거덕 거리며 몸을 비비는 술병의 차가운 음성을 뚫고, 어눌하게 혀를 놀리는 사내에게 너는 경멸의 시선을 보낸다. 아무것도, 저이보다 무엇 하나 제대로 해내지 못하는 자신을 수치스러워 하기는커녕, 어디서 감히 네깟 게 뭔데 감히 나를 불러 세우냐고, 자비를 배우지 못한 짐승의 눈으로 너는 그를 바라본다. 조용히 내민 손에 들려 있는 닭발. 취한 너의 몸은 굳은 채 흘러내린다. 괜찮을 거라는, 무턱대고 쏟아지는 그의 대답에 너는 던지듯 돈을 건네고 굳게 다시 문을 잠근다. 저벅저벅 그가 멀어져 가는 소리 끊기고 나서야 너는 비로소 안다, 그가 하는 말이 무엇인지. 얼굴이 달아오른 채로, 너는 너의 새로운 손가락에 입을 맞춘다.


 취한다는 것은 특권이다. 적어도 너는 매일, 그 특권에 취해 굽어보아야 할 모든 것에 무심하다. 해진 바지의 밑단에도 곰팡이 식물원을 방불케 하는 부엌에도 전구가 나간 컴컴한 안방에서도 너는 자유롭다. 너의 자유는 곧 폭력, 너는 억압을 벗어나고자 또 다른 억압에 발을 들여, 팔다리를 묶고 목구멍을 늘리고, 홀로 지구의 반대편으로 안쪽으로 바깥으로 죽음으로 절망으로 그리고 무관심한 밤의 한가운데로 날아간다. 무거운 육체를 허리춤에 끼고, 사선으로 흐르는 공기의 흐름을 바라보며.


 치밀어 오르는 구역질과 또한 치밀어 오르는 식욕은 너를 괴롭게 만든다. 너는 당장 식욕을 느끼지 않으면서도 모든 것을 잊고자 기름이 줄줄 흐르는 햄버거를 입 안으로 밀어 넣는다. 씹는 행위에만 몰두하기 위해 너는 의도적으로 쩍쩍 입을 벌려 소리를 낸다. 매복하여 때를 노리는 거짓말 같은 기억은 시도 때도 없이 팝콘처럼 튀어 올라 너를 미치게 만든다. 왜 하필? 그렇다고 해서 오늘이 특별한 날은 아니다. 상처를 이끌어내 자기 연민에 빠져야만 할 필요성이 있는 날이 아니었다는 데 너 또한 동의한다.


 여느 때와 같이 특징 없고 단조로운 일상이며 너는 여전히 방안을 우두커니 지킬 뿐이다. 너는 단숨에 햄버거를 해치우고 텐더 그릴 치킨을 잡아들었다. 한 번 더 구역질이 밀려온다. 너는 치킨을 입에 넣으며 닭의 모가지가 처참히 잘려 나가는 상상 한다. 바닥을 구르는 붉은 모가지, 힘없이 축 처진 닭의 벼슬이 네 앞으로 달려들 때 너는 다시 술병을 집어 든다. 그리고 너는 바라본다, 저 너머의 세계를, 세계의 바깥을, 절대로 네 힘으로 도달할 수 없는 진짜의 삶을. 너는 종종 그것을 바라본다, 지그시, 때로는 멍하니 응시하고 잠에 빠진다. 그것들은 움직임이 너무나 빠르다. 너는 다소 경직된 동작으로 눈을 끔뻑인다. 분명 무언가가 너의 눈앞에서 나타났다 사라졌다. 나타남과 사라짐, 나직이 뱉어내는 너의 음성에서는 두려움과 장난이 느껴진다.


 너는 앨리스가 보았던 고양이의 웃음이 자신에게도 나타나고 있다고 믿는다. 실체는 없다. 실체 없는 것의 실체를 찾기 위해 너는 다시 목구멍을 벌린다. 너는 진지하게 무언가에 대해 생각을 하는 것처럼 고개를 갸웃거리지만 이내 대수롭지 않게 하던 일에 몰두한다. 너의 일이란 그저 먹고 마시는 것, 마시고 먹는 것, 그리고 토해내고 다시 살아나는 것. 버려지지 못한 축축하게 늘어진 양배추가 너의 검지에 닿았다. 시체를 떠올린다. 시체는 또 다른 형상과 이야기를 만들어 나간다. 몇 번의 연상을 지속하는 동안에도 너는 쓰레기를 꼼꼼하게 치워나간다. 아무래도 그것들은 친구가 되어주지 못한다. 곧장 너의 생각들도 찌꺼기와 함께 봉투 속에 담긴다. 너는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이 의자에 앉아 깍지 낀 손을 배 위에 올려놓는다. 다시금 거세게 너를 방해한다, 그가 너의 서사를 훔친다, 그의 영향력이 너를 서사를 방해한다.


 0.5포인트의 가는 펜이 수첩 위에서 부드럽게 굴러간다. 너는 분명 공포를 느끼면서도 혹시 잊어버린 다른 기억들이 더 있지 않을까 조심스레 눈을 굴린다. 천장을 본다, 책상을 본다, 손을 본다, 몸을 젖혀 뒤집힌 세상을 본다, 떠오르는 것은 없다. 너는 불현듯 다가 온 종말의 계시를 믿기로 한다, 그렇다면 의미는? 너는 곧 기억을 잊은 것인지 잃은 것인지 고민한다. 허무한 시간이 지나고 너는 용기 있게 대면을 하기로 한다. 생선의 살을 모조리 발라내듯 천천히 오늘의 기억을 해부해 나간다. 너는 거대함 앞에 무릎을 꿇은 지 오래다. 밥을 먹음과 동시에 상처를 받고 있었고 이를 닦는 동시에 고통을 감내하고 있었다. 지리멸렬한 일상을 매일 똑같은 얼굴로 마주하고 있을 거라는 착각에서 너는 벗어나야 한다.


 잊힌 것, 네 안에서 도망간 모든 기억들은 사실상 너의 머릿속에서만 달아났을 뿐, 너의 발에 그녀의 심장에 그녀의 엉덩이에 그녀의 겨드랑이 속에 모두 내재되어 있다. 너는 그것을 알고 있었다, 어쩌면 명백히. 너의 몸을 구석구석 훔치면 자신도 세헤라자데가 될 것임을 확신할 수 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너의 모든 감각을 차단한 것은, 겁쟁이의 성향에 지나지 않는 것. 너는 극도로 예민해질 수 있는 능력을, 남을 단번에 미워할 수 있는 옹졸한 마음을, 작은 것에도 상처받을 수 있는 오래된 슬픔을 지니고 있었다.


 술병에 머리를 박고 끙끙 앓는 소리로, 가끔 네가 너를 부를 때. 이름이 두 개인 여자의 뒷모습을 볼 때. 너는 그 누구에게도 상처받은 것들에 대해 나열하고 싶어 하지 않았다. 이것이 너의 단조로운 일상의 비밀이라고도 할 수 있다. 너는 은밀하기 위해 은신하고 자신을 가두고 절제를 하고 있는 것이라 믿으며, 다시금 목구멍을 벌려 지옥을 삼키고.


 너는 두려웠다. 공포와 절망, 상처와 치유. 단어들이 차례차례 머리를 강타하고, 너는 참지 못해 펜을 든다. 공허한 기록의 광장 위에 선택받은 붉은 점들은 무던히 제자리를 찾아갔고 순식간에 광장은 붉게 물든다, 어찌나 힘찬 기세였는지 붉은 황혼은 그 뒤로 그 뒤로 계속해서 퍼져나가고 있었다. 이내 붉은 첨탑의 날카로운 꼭지가 너의 시야를 흐려 놓았다.


 너는 과거로만 흐르는 오늘을 마주하며 너 자신이 어째서 쓸 수 없는지에 대한 사유를 만들어 내기 시작한다. 쓸 수 없는 것인지 쓸모없는 것인지 인지를 해, 이 멍텅구리 같은 인간아! 너는 종종 자신이 지구의 자전을 느낄 수 있을 만큼 느리고 지루한 시간을 보내고 있다고 생각했고, 생각하고, 생각한다. 그건 너의 착각일 수도 있고 아닐 수도 있다. 어쨌든 너는 과거 짧았던 몇 년의 시간을 지우기 위해 갖은 노력을 한다, 노력은 ‘할 수밖에’라는 단정적인 동사를 동반한다, 고 주절거리면서. 정신을 차려보니 남은 건 잔해와 같은 과거의 순간들, 너는 그것들을 찢어내고 아무도 볼 수 없는 공간에 포박시켜 놓았다. 너 자신조차 들여다보지 않는, 검고 푹 꺼지고 바싹 마른 그 어둠으로. 고통, 고통, 고통 그리고 짧은 시간의 즐거움 몇 줄, 다시 상처와 상처의 반복 후에 느끼는 위안과 다정한 사이와 사이의 종말. 너는 어제 깊은 절망에 빠졌고 좌절했다. 오늘의 너는 변화된 시간 속에 몇몇 단어들만 새로워졌을 뿐 여전히 너의 세계는 정체와 침체의 중간쯤.  


 너는 이유 모를 웃음을 삼키며 바삭하게 익어버린 페이지를 넘긴다. 너의 바람대로 그것이 만들어진 사실이라 할지라도, 혹은 그렇지 않다 해도 상관이 없어졌다. 어차피 그 기억들은 다시 흘러버릴 테고 또 너는 새로운 기억들을 생산해 가며 자신의 불행에 주석을 달 것이다. 너는 잠시 바닥에 앉아 허리를 의지 다리 사이에 기대었다. 다시 초인종이 울린다. 공허한 거실을 지나 가까스로 네 작은 방에 떨어지는 울음. 그 울음 바깥에 손가락이 세 개인 남자가 맥주 12병과 기름에 절어있는 닭발을 내밀 것이다.


 닭은 너의 슬픔, 슬픔이 증명하는 싸구려 닭발, 방 안에 갇힌 피를 더럽히는 짐승, 곧 닭의 부리가 되어 너는 너의 손을 쪼아 먹을 것이다. 잔뜩 움츠린 포장지 속의 닭발을 받아 들고, 너는 그 불쌍한 남자를 경멸할 것이다. 너는 곧 죽는다, 다른 이름의 네가 너를 죽이고 닭발에 관한 이 이야기는 파편처럼 퍼져 네 죽음의 주석이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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