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래전이다. 강남역 5번 출구. 지금도 이 장소를 똑똑히 기억하는 것은 그때 나를 뒤덮은 무더운 열기 때문만은 아니다. 나는 불투명한 미래에 지쳐있었고 가벼운 옷차림에도 걸음은 늘 무거웠다. 강남역은 우리나라에서 하루 유동 인구가 제일 많은 곳이라고 한다. 기원을 알 수 없는 사람들과 매일 각양각색의 만남이 이루어졌다. 어떤 날은 쏟아지는 사람들을 등지고 걷고 어떤 날은 그들과 걸음을 맞추어 걸었다. 어깨를 부딪쳐도 우리는 타인이었고 미안하다는 말조차 나눌 여유가 없었다. 매일 똑같은 풍경, 내 손에 들린 방부제 덩어리의 빵. 나는 앞만 보고 걸었지만 정작 아무것도 볼 수 없었다. 내 목적지는 그곳에 위치한 대형 어학원이었다.
빠른 걸음을 잠시 멈추었던 것은 커피 값을 고민하기 위해서였다. 내가 선호하는 맛을 가진 커피점은 가격대가 높았고, 사이즈를 최대로 마실 수 있으나 어딘가 심심한 커피맛을 가진 다른 곳은 그에 비해 저렴한 가격을 가지고 있었다. 머릿속으로 수많은 경우의 수를 가늠하는 사이 내 시야를 뚫고 들어 온 것이 있었다.
눈이 마주친 순간 나는 얼어붙고 말았다. 바퀴가 달린 낡은 나무 상자를 지지대 삼아 버티고 있는 상체에는 핏줄이 솟아있었지만 그의 하반신은 기다란 고무천에 싸여 맥없이 늘어져있었다. 움직이지 않고 가만히 앉아 있어도 땀이 비 오듯 쏟아지는 한여름의 땡볕 아래 시커멓게 그을린 얼굴. 빨간 바구니 위에 맴도는 헐거운 동전의 짤랑거림. 그는 수많은 발길 아래 엎드려 몇 푼의 동정을 갈구하고 있었지만 누구 하나 그를 바라보지 않았다. 심지어 내려다보는 사람조차 없었다. 그는 누구보다 선명하게 그 자리에 존재했지만 사람이 아닌 사물처럼 그저 그곳에 ‘있었을’ 뿐이었다. 완벽한 한낮의 유령.
나의 가슴이 두방망이질 친 것은 나를 향해 전속력으로 질주하는 그의 시선에 대한 분석이 끝난 후였다. 보아서는 안 되는 장면을 본 사람처럼 나는 말할 수 없는 부끄러움을 느꼈다. ‘사람이었다.’ 이 짧은 문장은 미세한 칼날이 달린 부품처럼 내 속을 마구 돌아다니며 고통을 주었다. 나는 그 순간 붉게 달아오르는 내 얼굴의 피부 조직을 하나하나 느낄 수 있었다. 그가 사람이 아니고 무어란 말인가?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그와 눈이 마주치기 전까지 그를 ‘사람’이라고 생각한 적이 없었다. 나는 지나가는 사람들을 붙잡고 묻고 싶었다. 저 사람이 내 눈에만 보입니까? 저 사람은 지금 무얼 하고 있나요? 저 사람은 어디에서 왔고 왜 저렇게 엎드려 있어야 하고 나는 왜 저 사람을 이제야 사람이라고 부르는 걸까요? 왜 아무도 저 사람이 보이지 않는 것처럼 행동하죠?
나는 그 날 커피를 마시지 않았다. 커피값을 두고 고민하는 일에 더 이상 신경을 쏟고 싶지 않았다. 집으로 돌아가 컴퓨터 앞에 앉아 고민을 했다. 검색부터 난관이었다. 나는 그를 무어라 불러야 할지 몰랐다. 그의 존재 앞에 붙을 깔끔한 명사가 없었다. 사과, 장갑, 노인, 변호사, 하이드라이드. 존재를 정의할 명사가 이토록 많은데도 그를 지칭할 명사를 나는 알지 못했다. 나는 두고두고 마음속에 그 사람을 품고 있다 치부를 꺼내듯 주위 사람들에게 그때의 감정에 대해 이야기를 시작했다. 그리고 알게 되었다. 우리는 그를 불러야 할 단어를 찾지 못한 것이 아니라 찾고 싶은 마음이 없었다는 것을. 그의 장애를 인식했지만 그저 피해야 할 장애물 정도로 치부하고 있었음을. 친구들은 인내심을 가지고 내 말에 대답했지만, 자신이 지지 않아도 될 짐을 나눠 받은 사람처럼 달갑지 않은 표정을 지었다.
‘우리가 굳이 그런 문제까지 생각할 필요가 있을까?’라는 말보다 나를 더 상처 받게 한 것은 오히려 그들의 존재를 당연한 듯 수긍하는 사람들의 태도였다. 그러니까, 그런 사람들은 쭉 있어왔고 앞으로도 있을 것이며 그렇기에 별로 대수롭지 않은 문제라는 식의 태도. 그렇게 말하는 사람들은 길거리에서 구걸하는 대부분의 사람들에게 따라붙는 잔혹한 소문들에 대해서도 귀가 밝았다. 숨 한 번 쉬지 않고 무표정하게 그 소문들에 대해 말했고 일그러지는 내 얼굴을 보며 씁쓸하게 미소를 지었다. ‘네가 아직 순진해서 그래. 네가 아직 세상을 잘 몰라서 그래.’ 강압적인 위로의 말 앞에서 나는 생각했다. 세상을 아는 것이 타인의 존엄을 함구하는 것이라면 나는 죽어도 세상을 알고 싶지 않다고. 이후에도 몇 번 나의 물음은 이어졌지만 언제나 질문은 미끄러지고 종국에는 하찮게 내쳐졌다. 다정한 나의 타인들이 거대한 벽처럼 느껴졌다.
나는 질문을 멈추었다. 혼자 인터넷 검색을 하며 그들의 이야기를 알고자 했지만 대부분의 사람들은 통행을 제한하고 미관을 해치는 그들을 제거하기 위해 구청에 민원을 넣는 방법에 대해서만 고민할 뿐, 그들의 삶에 대해서는 아무도 관심이 없었다.
나는 눈을 감는다. 지레 겁먹고 조금 더 깊이 들여다보지 못한 나 자신과 무기력한 감정을 숨기기 위해 냉소로 가장한 어린 날의 표정들이 지나간다. 그리고 여전히 많은 나날이 부끄러움으로 채워지고 있음에, 그저 ‘부끄럽다’는 말을 하고 싶다. 나는 한동안 눈을 뜰 수 없다.
사소한 한 순간이 내게 거대한 질문을 남겼다. 사회라는 이름의 옷 안에 감춰진 수많은 상처와 고통들을 훔쳐보게 만들었다. 이것은 ‘나’라는 개인이 홀로 불덩어리가 된 채 타오른다 해서 해결될 일이 아님을 이제는 안다. 나는 전사도 아니고 권력자도 아니며 평범한 하루하루도 최선의 힘으로 버텨야 하는 미물에 지나지 않는다. 그럼에도 그 눈빛을 품고 있다는 이유만으로 나는 강력한 힘을 하나 가지게 되었는데, 그것은 바로 타인의 존엄성에 대한 존중이다. 내가 아무리 수치를 느낄지언정 나는 누군가의 털끝 하나도 망가뜨리고 싶은 사람은 되고 싶지 않다. 정말 아이러니한 일이지 않은가. 내가 결코 사람이라 생각하지 않은 존재가 도리어 나를 사람 되게 만들었다는 사실이.
그때 나를 향해 날아든 칼날 같은 눈빛은 내 가슴 정중앙을 과녁으로 삼았지만 나는 그것을 비수로 기억하지 않는다. 그것은 시간을 더하며 내 마음속 무거운 추가 되었다. 내가 무기력에 젖은 타성을 ‘냉철’한 시각이라 분장할 때면 그 추는 있는 힘껏 나의 양심을 눌러 나를 제자리로 돌려놓는다. 또한 그 추는 자성을 가지고 있어 내가 아무런 이유도 없이 관성의 힘으로 걸음을 재촉할 때, 세상의 사소하고 낮은 자리들 앞에서 멈추게 만든다. 안락한 삶 속에서도 끝없이 그것들에 시선을 붙들게 만드는 것은 뜨거운 태양 아래 나를 붙잡아 둔 그때의 그 시선 때문이다.
요즘도 가끔 강남역에 간다. 새로 단장한 건물 아래는 으리으리한 상점들이 즐비하고 여전히 기원을 알 수 없이 점처럼 쏟아져 쫓기 듯 걸음을 옮긴다. 그러나 ‘그들’은 이제 없다. 사람들의 행렬을 홍해처럼 가르고 지면에 딱 붙어 우리의 양심을 건드리던 그들 말이다. 나는 그들을 기억하지만, 그들이 어디로 갔는지 알 수 없다. 그들이 흘러간 궤적을 가늠하며 나는 내 삶을 뒤돌아본다. 그들과 나는 무엇이 다른 것인가. 생물학적인 분류를 넘어 사회학적으로 인간임을 인정받기 위해서는 무엇이 더 필요한 것인가. 도대체 그 기준을 내리는 것은 누구인가. 나만 판정관들의 존재를 모르는 것인가.
10년 전 그날은 이제 먼 과거가 되었다. 그들의 존재를 명쾌하게 정의할 명사를 나는 여전히 찾지 못했다.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다만 부끄러워하는 것이다. 그들은 사라졌지만 그 빈자리를 대신하는 수많은 유령들의 존재 앞에 문득 서늘해지는 심장을 움켜쥔다. 부끄러움이 멈추는 날이 오리라는 희망을 멈춘 지 오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조금 더 눈을 크게 뜨고 어두운 곳을 보는 것은 여전히 과거의 눈빛을 간직한 덕이리라. 우리가 보지 못한 곳에 여전히 웅크리고 있을 사람을 그리며 고백을 마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