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릴 때부터 라디오를 자주 들었다.
제법 유창한 발음으로 영어 단어를 섞어 쓰며 시니컬하지만 세련된 유머로 상대를 웃기던 사람.
"전 사랑을 해 본 적 없는 것 같아요."라며 서울을 한 번도 벗어난 적 없는 말투로 조근조근 말하던 뮤지션.
'아휴, 서울 사람들은 증말 깍쟁이들이다.' 이런 생각도 했었지만 나는 아직 뭘 모르는 나이였고.
어쨌거나 그는 말솜씨만큼이나 노래는 또 얼마나 잘하던가.
20대 초반에 <무지개>라는 음악으로 주목을 끌었다.
열광적으로 사모하지는 않았지만, 언제나 리스트에서 빠지지 않는 가수.
(내가 좋아하던 여명을 닮아 외모 이상형이기도 했던 가수.)
조규찬이 그랬다.
생각난다.
13살 크리스마스 주간.
이소라의 프로포즈에 조트리오가 나왔다.
방영되는 내내 그 프로그램을 보았지만 조트리오만큼은 이상하게 선명히 기억난다.
그날 그들은 이제는 금지곡(원곡 가수의 만행 때문에... like 정바비)이 되어버린
알 켈리의 'I believe I can fly'와 자신들의 노래인 '모델' 그리고 '눈물 내리는 날'을 불렀다.
세상에 어떻게 이렇게 노래를 잘해? 그것도 형제가 다?
조규찬의 실력이야 증명된 바지만, 조규만과 조규천은 다 뭐야?
돌림자를 쓰는 유교 집안사람들이 이렇게 서방세계의 이국적 흥취가 느껴지게 노래를 잘 부르다니.
어린 나이에도 편견에 휩싸여 있었는지 이런 생각을 하며 그들의 무대를 넋 놓고 지켜보았다.
세 사람 모두 개성 있는 음색으로 마음을 끌었지만, 그중 조규찬은 단연 돋보였다.
'최애'(나는 이승환의 30년 팬이다.)라고 불릴만한 가수는 따로 있었지만 조규찬은 늘 마음 한 구석을 차지하는 사람이 됐다. 이승환과 마찬가지로 조규찬이 게스트로 나오는 라디오 프로는 달력에 날짜를 표시하고 꼭 듣곤 했다. 권투에서 쨉을 날리듯, 방심하는 사이 툭툭 날오던 그의 유머에 쿡쿡 배를 잡고 웃던 어린이. 늦게 잔다는 잔소리가 두려워 레시바를 꽂은 채 이불을 뒤집어썼었다. 라디오가 끝나면 항상 땀에 푹 절어있었고 그런 날들은 쭉 이어졌다.
고등학교 시절에는 조규찬의 'thank you'라는 노래에 꽂혔다. 등교 길에는 물론이고 하교 길에도 그 노래가 내 친구가 되어주었다. 당시에는 CD플레이어를 가지고 다녔는데, 그것은 뛸 때면 소리가 멈추는 특징이 있었다. 버스를 가까스로 놓치는 순간에도 나는 뛰지 않았다. 버스는 기다리면 되지만 노래가 끊기는 것은 참을 수 없었다. 지금은 그런 행위를 가리켜 '허세'라고들 하겠지만, 나는 그만큼 낭만이 있었다 변명하겠다.
그런 시절들이 이어지다 어른이 됐고, 나는 그를 한동안 잊고 살았다.
그가 꾸준히 음악을 발표하고 있음을, (그가 매달 열심히 작업한 결과물을 내놓았던 시점으로부터) 1년 뒤에 알게 되었다.
2018년 6월 7일 발매된 '비 온 날'을 시작으로 'Deja vu', '그날의 온기', '해 지는 바닷가에서 스털링과 나는', '혜원', '런커', '사라지지 않는 것'을 지나 2021년 4월 8일 발매된 'Back to you'까지. 나는 밀린 숙제를 해나가는 아이처럼 그가 만든 노래를 천천히 감상했고 매달 그의 신곡을 기다리는 기쁨을 맛보았다. 35곡의 최근 그의 노래는 여러 의미에서 나에게 힘을 주고 자극을 주었다. 아니, 이 나이에도 이런 감각을 가지다니! 사실 재능으로 한 분야를 파다 보면 어느 사이 자기만의 공식이 생겨 초보 시절보다 더 빠르고 능숙하게 만들 수 있다. 하지만 싱싱한 감각을 유지하는 것은 오로지 창작자의 노력에 달려 있다는 생각이 든다. 분야를 막론하고 기막히게 노련하지만 예전보다는 지루한 작품을 만들어내는 창작자들을 많이 보아왔으니까.
게다가 가사는 또 어떠한가. 앞서 말한 듯 조규찬의 노래에서는 요즘 말로 치면 예의 그 '힙스터'같은 멜로디와 바이브에 서울깍쟁이 같은 가사가 어우러져 듣고만 있어도 나 자신이 마치 유행의 한복판에 있는 기분을 만들게 해 주었다. 단지 분위기나 스타일만이 아니라 조규찬이라는 사람의 성대는 그 자체로 최고의 악기가 되어주었다. 빌보드와 그래미 시상식을 보며 성장했지만 가끔 기대와 다른 라이브 실력을 보여주는 외국 가수들을 볼 때면, 나는 늘 조규찬을 비롯한 우리나라의 여러 실력 있는 가수들을 떠올리곤 했었다. 조규찬은 결혼 후 얼바인이었나? 아무튼 샴페인이라는 단어가 들어간 미국의 어디 대학으로 유학도 갔다 왔다. 보컬 전공이었는데 시험을 봐서 장학금을 받는다고 했다. 이렇게 노래를 잘하는데도 또 배울 것이 있다는 점이 놀라웠던 기억이 난다. 지금처럼 인터넷이 발달한 시대에 그가 나왔다면 외국에서도 꽤 주목을 받았을 텐데 안타깝다. 그가 대만 가수 도철(데이비드 타오)의 노래를 번안해 불렀는데 그 노래도 엄청났다. 덕분에 도철이라는 가수를 알게 되었고 그걸 계기로 대만 음악도 한참을 들었었다.
아무튼.
근래 발표된 노래들도 가사가 예술이었는데. '그날의 온기'에서 나온 '교회 친구 지형이~'라는 부분에서는 교회를 다닌 적도 없는 내가 왠지 그 친구를 다시 만나고 싶다는 생각이 들게 만들었다. 오래된 가수에서 이제는 한물간 가수의 넋두리를 들으면서는 실제로 조규찬 형님이 이런 마음을 가지고 계실까 그의 유튜브에 가서 10줄이 넘는 댓글을 달기도 했다. 나만 아니라 많은 팬들이 그랬고 결국 그는 자기 이야기가 아니라 보편적 정서에 대한 노래라 해명을 하기도. '운석 충돌 전야'도, 자신의 아내이자 가수 헤이의 본명인 혜원이라는 이름을 제목으로 내세운 '혜원'도, 지나간 젊음을 회상하며 쓸쓸하게 앉아있는 상대를 보며 현실이 그래!!! 하며 객관적 판단을 내리나 그래도 나는 네 옆에 있겠다는 위로를 건네는 'lucky man'도, 조지 마이클이 신나게 엉덩이 춤을 추던 80년대를 떠올리게 만드는 '뉴 웨이브 도시'도 모든 노래가 나의 마음을 흔들어 재꼈다.
창작물은 허구이나 창조한 주체를 반영하듯, 조규찬의 노래 가사들은 어떤 영감에서 시작되었으나 그 안에 깃든 관점은 그의 것이겠지. 영원할 줄 알았던 '전성기'가 지나가고 어쩐지 변방으로 밀려난 느낌은 그 나이쯤 되면 다들 느끼는 감정이 아닐까. 다만 조규찬은 그런 노래를 하면서도 겁나 멋진 그루브와 목소리로 '요즘 아이들'을 가뿐히 발라버린다는 것이 킬링 포인트.
나는 내가 원하는 꿈도 이뤄본 적 없고, 내가 정한 목표의 근처에도 가본 적 없다.
단지 나이가 젊다는 이유로 '전성기'를 맞아 본 적은 있지만 누구나 그런 시절은 있겠지.
나이를 먹어가며 내가 원하는 사람이 '나는' 될 수 없음을 깨닫고, 도전하는 만큼 실패를 받아들이는 일에도 능숙해졌다. 그럼에도 여전히 꿈을 꾸는 미련한 인간으로 산다. 자연스럽게 조바심을 느낀다. 뭐가 되고 싶다가도 내가 원하는 그 무언가가 도대체 무엇인지 알 수 없다. 이 나이를 먹을 때까지 나는 뭘 했나 싶다. 물론 세간의 평가는 다를 수 있지만, 내가 그렇게 느끼고 있다는 게 중요하니까. 이런저런 생각이 들어 마음이 혼란할 때 듣게 된 조규찬은 최고의 선택이었다. 입에 발린 구호 대신 누구나 공평한 마음으로 살고 또 늙어가고 있다는 위로를 건넨다. 무한 경쟁에서 살아남지 못한 내가 미련한 게 아니라 세상의 속도가 조금 더 빨라진 거라고 말해주기도 한다. 이런 천재도 그런 기분을 느끼는데 나라고 뭐 별 수 있나, 싶은 마음이 들어 후련해지기도 한다. 조규찬의 노래를 듣고 있으면 이상하게 조바심이 없어진다. 하던 대로 해보자, 라는 각오가 든다고 해야 하나?
게다가 이 정도 노래라면 모두 들어줘야 하는 거 아닌가 싶은데 정작 가수 본인은 '날 좀 봐봐!' 하는 느낌 없이 무던히 곡을 내고 간간이 유튜브로 라이브도 한다. 나이 들어도 변하지 않는 그의 시크함! 호들갑 떨지 않고 묵묵히 최고의 결과물을 만들어 내는 조규찬이 너무 좋다. 탁월한 음악을 찾아 듣는 리스너로 남아 있는 내 자신도 좋다ㅎㅎ
역주행 바람이 불어 다시금 재조명받는 그룹들처럼, 조규찬의 노래도 사람들이 많이 들어줬으면 좋겠다. 그리고 그가 어떤 행보를 밟아왔는지 알았으면 좋겠고 나이를 들어도 여전히 신선한 쾌감을 선사하는 그의 감각에 놀라워했으면 좋겠다. 더불어 그가 얼마나 재미있는 사람인지 더 많은 사람들이 알아줬으면 좋겠다. 조규찬은 우리 나라 음악사에서 훨씬 더 주목받아야 하는 사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