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롤로그
아무것도 가진 것 없는 사람을 가리켜 우리는 “쥐뿔도 없다.”라고 말한다. 가슴 아픈 관용어다. 그 관용어에 딱 어울리는 사람이 나이기 때문이다. 그렇다. 나는 쥐뿔도 없다.
대화가 즐거운 친구와 결혼해 아이를 낳고 맛집 앞에 줄을 서고 제철과일을 먹고 한가하게 누워 만화책을 보고 휴가철이면 바다로 떠나기도 하는 그럴듯한 삶을 살고 있지만 나의 본질은 ‘실패자’에 가깝다. 나는 내가 원하는 것을 제대로 성취해 본 적이 없다. 만약 내가 가진 것이 있다면 그것은 8할이 타인의 도움으로 이루어진 일이다. 나 자신만 놓고 보자면 어쩐지 투명인간에 가깝다. 어쩌다 이렇게 되었을까 생각해 본다. 꿈을 너무 원대하게 꾼 탓일까? 누가 시키지도 않은 일인데. 고로 누구도 탓할 수도 없다. 오로지 내가 책임져야 하는 좌절이고 결과다. ‘만약에’ 라든지 ‘과거에 이런 선택을 했다면’ 같은 가정법 또한 나의 사전에서 사라졌다. 어차피 망할 테니 계속하는 수밖에 없다는 식의 사고 전환은 가능해졌다. 누군가는 망함의 원인이 실패에 무감한 요상한 나의 멘탈을 원인이라 말했지만, 이런 멘탈을 갖기까지 내가 얼마나 많은 ‘시무룩함’을 겪어야 했는지 상대방은 알 수 없기에 딱히 해명하고 싶은 마음도 없다.
실패자로 살면서 제일 좋은 일은 내가 실패했음을 마음껏 인정할 수 있다는 데 있다. 어느 정도 위치에 올라가게 되면 실패를 인정하기가 쉽지 않다. 자존심의 문제일 수도 있지만 시장이라는 이 험악한 정글은 실패 인정 자체를 무능력의 반증이라 보기 때문에. 잠재적 가치의 하락이 동반되는 도박을 하지 않기 위해 성공한 이들은 가끔 수가 빤히 보이는 핑계로 자신들의 실패를 숨긴다. 하지만 나 같은 실패 전문가들은 누구보다 시원하게 실패를 드러낼 수 있다. “나는 말이야, 작가를 꿈꾸는데 20대 시절부터 200번쯤 공모전에 떨어졌어. 아, 201번째 성공하면 되지 않냐고? 하하. 200번째 이후로는 세어보질 않아서 지금 내가 몇 번째 떨어진 건지 잘 모르겠는데.” 뭐 이렇게 자조하는 것도 더 이상 자존심에 스크래치를 주지 않는다. 마치 실패 장인이 되기 위해 도전을 감행하는 인간이 된 것처럼. 다행히 사람들은 실패를 전제로 하는 도전적 삶에 아무 관심이 없다. 간섭에서 자유로운 삽질은 지속 가능하다. 물론 이 삽질이 땅을 다지거나 씨앗을 심을 새로운 근원지를 마련하는 것이 아니라, 가능성의 세계에 나를 생매장시키는 구덩이를 만들 수도 있다는 것이 위험한 부분이긴 하다. 나는 그것마저 감수하기로 했다. 내가 조금이라도 인간적으로 훌륭한 점이 있다면 그것은 모두 글쓰기를 통해 배우고 단련한 결과이니까. 이왕 소멸될 운명이라면 인격적으로 훌륭한 인간이라도 되고 싶다고나 할까. 그것도 요원한 꿈인 건 마찬가지지만.
매일 실패의 쳇바퀴 위에 부지런히 발을 놀리다 여전히 제자리임을 확인하고 탄식으로 마무리하는 하루를 살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웬만하면 행복한 인간’이라는 수식어를 충실히 수행하는 인간이기도 하다. 지리멸렬한 나의 생을 버티게 만드는 것은 거창하거나 대단한 것들이 아니다. 누군가에게는 한심한 시간 낭비일 수도 있고, 누군가에게는 허튼 농담일 수도 있다. 이를 테면, 오랜 친구와 손편지를 주고받는 일이나, 맵기로 유명한 ㅇㅇ라면을 나만의 레시피로 10년째 점심으로 먹고 있는 일, 공원 귀퉁이 통나무 그네를 타면서 쉴 새 없이 터뜨리는 웃음 같은 것들 말이다. (실패를 견딜 맷집을 만들어 준 나의 든든한 영양소들.)
그런 이야기들에 대해 쓰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레이먼드 카버의 <별것 아닌 것 같지만, 도움이 되는>에 등장하는 제빵사의 롤빵처럼 작고 사소하지만 때론 한 사람을 살아가게 만드는 힘을 가진 것들에 관하여.
나조차 구제하지 못하는 마당에, 내가 내뱉는 이야기들이 타인을 구원할 수 있을 리는 만무하겠지만 혹시 모르지 않는가. 나의 작은 행복들이 누군가의 하루를 덥히는 작은 불씨가 될지도. 나는 빵 만드는 것에는 영 젬병이라 롤빵 대신 기쁨으로 조각조각 엮은 나의 이불보를 잘라 당신에게 건네기로 한다. 자신만의 이불에 나의 조각을 엮어주어도 좋고 혹여 아직 마련하지 못한 사람들은 나의 조각을 밑천 삼아 새로운 무언가를 엮어가길 바라는 마음으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