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떤 결정을 할지는 온전히 당신의 몫
“운이 없었을 뿐이야.”라고 누군가를 위로하면서도, 속으로는 ‘계속된 불운에는 반드시 너만의 행동 패턴이 있을 것이다.’라고 생각하는 편이다. 타인뿐만 아니라 나의 행동에도. 나는 문제가 생기면 항상 그 원인의 근저를 찾기 위해 분투한다. (but 원인을 찾아도 끊임없이 실수를 반복하는 인간이라는 것이 문제!) 미신이나 징크스에는 콧방귀를 뀌고, 뉴에이지풍의 치유요법이나 자연치료 같은 것은 더더욱 믿지 않는다. ‘집안 대대로 내려오는 비법’이라는 수식어를 달고 있다면 진저리부터 친다. 뼛속까지 문과 체질이라 통계학이나 수학에 대해서는 완벽한 문외한이지만, 나에게 무언가를 믿느냐고 물으면 그나마 데이터라고 답할 수 있겠다.
하지만 인간은 아이러니한 존재. 인간사 원인과 결과는 수학적 수식으로 증명이 가능하다 말하면서도(조기 수포자였던 나에겐 불가침의 영역이지만), 선택의 기로에 서거나 갈등이 왔을 때면 기대는 것이 있으니 바로 ‘해결의 책’이다. 일종의 길티 플레져라고나 할까.
해결의 책은 예능프로에 등장하며 처음 존재를 알렸다. 매뉴얼에는 포함되어 있지 않지만 책에 손을 올리고 답을 구하는 사람들의 포즈는 대체로 경건하다. 자신의 고민 사항을 집중해 외친 뒤 무작위로 책의 페이지를 연다. 그 페이지 위에 써진 글귀가 고민의 답이 되는 것이다. 어쩔 때는 예, 아니오 같은 명확한 대답이 나오기도 하지만 가끔은 던진 질문에 비해 선문답과 같은 대답이 돌아오기도 한다. 당연하지, 얘는 사람이 아니라 책인데.
머리 아픈 고민이 생긴 날이면 나는 핸드폰을 손에 쥐고 해결의 신 어플을 터치한다. 이제는 그 두꺼운 책 한 권이 작은 기기 안에 들어있다. 눈을 감고 속으로 고민을 말하며 검지로 액정을 정성껏 문지른다. 손가락 움직임을 따라 돌던 빛이 멈추고 책이 펼쳐진다.
때론 내가 원하는 답을, 때론 뚱딴지같은 소리를 해결책이랍시고 내놓고는 하지만 내가 해결의 책을 끊을 수 없는 것은 내가 원하는 답을 내놓을 때까지 해결의 책은 대답을 해준다는 사실 때문이다. 이 얼마나 간사한 위안인가. (다만 한 번도 같은 대답이 나오지 않았다는 사실은 놀랍다.)
실수할 수도 있는 나이의 유효기간은 언제까지일까? 불현듯 어른이 되는 것도 모자라 눈을 떠보니 ‘어른’의 세계에 훌쩍 발 담갔다. 마음은 여전히 10대의 한적한 어느 시절이라 한다면 사람들은 웃겠지. 냉소적인 얼굴로 세상의 이치에 대해 주절거려도 속에서는 아직도 대관절 사는 게 뭔지 모르겠다 읊조리는 어린아이 하나가 바들바들 몸을 떨고 있다. 나이가 꼭 경험에 비례하진 않아서 여전히 모르는 것 투성이인데 내가 살아온 만큼 책임은 져야겠고. 얼마나 정색하고 자기 일을 잘 처리하느냐가 능력의 반증이라면 반증인데, 다만 내가 할 수 있는 것은 숨을 고르고 감정을 숨기는 것뿐. 가끔은 터무니없을 정도로 삶에 무지한 나 자신에 놀라기도 한다. 그럴 땐 화장실에 가는 척 잠시 숨어 인터넷을 뒤지는 방법이 있긴 하다. 고단한 하루가 끝나면 방 안에 누워 나 자신을 자책하게 된다. 이러지 말았어야지, 이런 말은 하지 말았어야지, 조금 더 명확하게 의사표현을 했어야지, 싫은 건 싫다고 왜 말을 못 해. 어디서부터 문제일까 자꾸만 따지다 보면 결국은 나라는 인간이 태어난 게 문제다. 이런 식으로 생각하면 야식으로 찌운 몸무게가 무색하게 나 자신이 아무런 무게도 가지지 않은 사람인 것 같다. 내가 진짜 이 세계에서 역할을 하고 있긴 한 건가? 먼지 같은 영혼의 무게로 지상에서 이토록 많은 발자국을 찍었다는 사실이 새삼 의아하게 느껴진다.
지금의 결과를 만들어낸 원인을 되짚지만, 제 머리 못 깎는 중처럼 나라는 인간의 문제에서는 도무지 객관적인 판단을 내릴 수 없다. 남 탓을 하기 시작하면 그때부터 타성이 시작된다는 것만은 안다. 인생은 말년이라 누가 말했던가, 편견에 젖어 구질구질한 고집만 가진 노인이 될까 두려워 도리질 치고 다시금 마음을 다진다.
나름 이성적이며 합리적이라 자부하지만 누군들 그렇지 않을까. 기술로는 선진국 반열에 들었으면서도 여전히 점쟁이를 대동해 회사 터를 점지하는 대기업의 이야기도 풍문으로 들려오니. 한국 사람이라면 무릇 눈부신 발전 속에서도 샤머니즘만은 잊지 않았으니 나도 그 대열에 태연하게 입성해보는 기분으로 펼쳐보는 것이 해결의 책이다. 이름만큼 명쾌한 답을 준다면 좋겠지만, 인생에 답은 없다. 친구를 만나 고민을 털어놓아도 사실상 친구에게 답을 듣기 위함이 아닌 공감을 원하는 것임을 우리는 안다. 자기 삶을 자신보다 이해할 사람이 누구일까.
가끔은 운에 맡겨도 좋은 날이 있다. 그저 서성이고만 있었는데 단지 그곳에 있었다는 이유로 오해를 받는 날도 있다. 의도와는 다르게 해석된 말들에 상처를 받는 날도 있다. 또 어떤 날은 노력해도 전혀 통하지 않는 날도 있다. 내가 피, 땀, 눈물로 쌓은 하루하루가 물거품이 되어 파도 속에 부서지는 순간. 매정하지만 내가 들인 시간보다 조금 더 많은 시간이 필요한 일들도 있다. 그걸 누구보다 내가 잘 알기에 조급함이 들 때면 해결의 책을 편다. 질문과는 전혀 다른 방향의 말을 해주는 이 요상한 요물이 때로는 이치에 맞는 말보다 더 큰 위로를 주는 날도 있다. 지금 나의 챕터가 비극으로 끝나지 않게 농담 한 줄을 추가하는 것처럼 한없이 가볍게 내 삶을 운에 맡기는 것이다. 내가 원하는 답을 들을 때까지 액정을 한없이 문지르다 보면 섬광처럼 걸맞은 답이 오기도 하니까. 잠시 쉬었다 가는 기분으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