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 계단 오르기

엉덩이씨 살아있습니까?

by 존치즈버거


다시 태어나면 순두부가 되고 싶다고 늘 생각했다. 포들포들하게 콩을 갈아 정성으로 만들어진, 아기 엉덩이보다 더 보들보들한 순두부가 되어 (내 기준) 다섯 손가락 안에 드는 지구 최고 별미 순두부찌개의 일원이 되는 것. 누군가의 맛난 한 끼를 책임지고 끝나는 삶, 이 얼마나 깔끔하고 명징한 결말인가! 지리멸렬한 인간사, 하지 말아야 할 것을 알면서도 해버리고 그로 인해 고통받고, 정작 해야만 하는 일에 서툴러 또 한 번 고통받고. 좋고 싫음의 무한 굴레. 삶이 무엇인가를 생각하면 이런저런 상념들이 파도처럼 밀려온다. 끊임없이 롤러코스터를 타는 기분으로 수십 년을 보낸다는 생각만 하면 앉은자리에서도 멀미가 온다. 다음 생애는 꼭 순두부가 되고 말테야. 나의 이 우스운 망상은 여기서부터 시작됐다.


그러나 살아있는 동안 어쨌거나 나는 인간이다. 부여받은 생명의 존귀함을 알기에 인간으로서 최선을 다 하는 것이 도리가 아닐까. 나는 오늘도 먹고 싸고 입고 벗고 하다 말다를 반복한다. 차라리 나무라면 한 자리에만 있을 텐데 인간은 아쉽게도 관절과 근육이 있다. 움직여야 한다. 고집스럽게 누워만 있는 것도 불가능한 일은 아니겠지만, 본래 움직이는 존재로 설계된 인간이기에 움직이지 않으면 일어날 불상사가 나는 무섭다. 게다가 무언가를 성취하기 위해서는 움직여야 한다. 그래서 나도 매일 움직인다. 움직이는 것은 괴롭다. 그래서 인생이 괴롭다. 뭐 이런 식의 궤변을 늘여놓으며 자연스럽게 신세한탄을 하면, 그날의 운동은 미룰 수 있다. 그렇게 몇 년을 미뤘던가. 이제는 운동하지 않으면 살만 찌는 것이 아니라, 몸이 망가지는 나이가 왔다.


이런 내가 ‘계단 오르기’라니! 이 시작에는 엘리베이터가 있다. 나는 12층에 산다. 바로 집 앞에 초중고가 나란히 모여있는 만큼 아이들도 많은 동네다. 그리고 이 아이들은 비슷한 시간에 등교를 한다. 나도 아이가 있다. 제일 꼭대기인 27층에서 멈춰 선 숫자. 26층에서 한 번, 다시 25층에서 한 번. 숫자가 멈출 때마다 침을 삼킨다. 드디어 도착한 12층에서 문이 열리면 만원 지하철을 방불케 하는 승강기 내부에 입이 ‘떡’ 벌어진다. 아이 손을 잡고 어쩔 수 없이 계단으로 향한다. 아침마다 엘리베이터를 통해 운을 시험하는 일에 지치자 그냥 계단을 이용하기로 한 것이다.


아이를 등원시키면 시작되는 온전한 나의 하루. 엄마라는 꼬리표를 잠시 내려놨을 뿐인데도 어쩐지 가뿐한 발걸음이다. 내친김에 올라오는 것도 계단을 선택했다. 그리고 맛본 신세계. 겨우 12층이라 생각했던 나의 오만함은 목적지에 다다른 순간 무참히 깨졌다. 처음 며칠은 입에서 침이 흘렀다. 김밥 옆구리 터지듯 입이 다물어지지 않았다. 내 폐에서 그런 이상한 소리가 날 줄은 몰랐다. 어디서 속절없이 풍선 바람 빠지는 소리가 나는가 싶어 괜히 뒤를 돌아보았다. 다리를 썼는데 손은 왜 떨리는 것일까? 가까스로 비밀번호를 누르고 문을 여니, 현관 거울에 비친 것은 산발이 된 망나니 하나. 봉두난발을 하고서는 시원하게 욕을 내뱉으며 숨을 골랐다. 그제야 나의 신체 기능을 돌아볼 수 있었다.


두 번째 날. 첫날의 굴욕이 생각나 나는 엘리베이터와 계단 사이에서 잠시 고민을 했다. 누가 시키지도 않은 고행을 할 필요가 있을까. 엘리베이터야 기다리다 보면 오는 것을. 하지만 가만히 생각해보니 계단 오르기야말로, 나의 무게를 온전히 견디며 중력을 거슬러 나아가는 일이 아닌가? 눈에 보이진 않지만 나 또한 어깨에 이고 진 짐이 산더미다. 이 정도에 승복하면 남은 나날을 어찌 견딜까 싶은 노파심이 들었다. 자세를 곧게 펴고 누구보다 씩씩하게 팔을 휘두르며 발바닥 뒤꿈치를 바닥에 온전히 디딘 후 신체의 중심부에 힘을 주어야 한다. 넘어지지 않기 위해 신체의 중심을 잡으면 자연스럽게 턱이 당겨지며 시선도 앞을 향한다. 정신없는 하루 중 계단을 오르는 순간이 제일 곧은 자세로 세상을 똑바로 마주하는 시간이었다.


어릴 때는 오르락내리락하는 것이 쉬웠다. 계단뿐일까. 동네 뒷산을 날다람쥐처럼 오르고 높은 언덕도 놀이기구마냥 반가워해 마지않았다. 구르고 자빠지고 평소보다 조금 더 에너지를 써도 힘든지 모르던 나날이 있었다. 나는 또래에 비해 별난 축에 속했고 남들의 기대 없이도 항상 어딘가로 전진하던 아이였다. 다만 커갈수록 오르고 내리는 기복이 반복되었고 성과의 장벽에 크게 부딪힌 나는 이리저리 멍든 채로 어른이 되었다. 이상만 많아 사회적 충족요건을 채우지 못한 채 끊임없는 반복되던 하강. 어딘가에 정말로 인간보다 훨씬 더 고차원의 존재가 있어 나를 지켜보는 기분. 나는 그의 장난감처럼 매일 내던져져 바닥을 치고 튀어 오르기를 반복했다. 이 정도 삶에 만족하라는 듯 보이지 않는 손바닥으로 내 얼굴을 짓이기는 것에 맞서 몇 번이고 앞으로 나아가려 했지만 그럴 때마다 튕겨 나갔고 나는 실패만이 나를 유일하게 끌어당기는 중력이라 믿었다. 덕분에 엉덩이는 근육 대신 맷집만 세지더니 급기야 돌덩이를 매단 것처럼 무거워졌다.


계단을 오른다. 계단을 오르면서 숨도 고르고 마음도 고른다. 볼트를 조이듯 팽팽해진 다리 근육과 밀물처럼 코끝에서 찰랑이는 나의 숨을 느끼면 내가 얼마나 생생하게 살아있는지 느낄 수 있다. 차마 받쳐주지 못한 체력의 한계를 시원한 욕지기로 날리다 행여나 행실 나쁜 이웃으로 비칠까 주위를 두리번거리기도 한다. 현관에 다다라 문을 열 때는 남모르는 희열도 느낀다. 계단 오르기에서 제일 좋은 점은 단순히 오른 숫자가 아니라, 한 층도 멈추지 않고 성실히 올라온 과정이 중요하다는 것이다. 성과에 목마른 내게는 작은 위로가 된다. 아무도 봐주지 않지만, 내가 발 디딘 만큼 내 몸에 고스란히 증거가 되어 나타나니깐.


여전히 12층 계단을 오르고 헉헉 몰아치는 숨을 고르는 나이지만, 처음 오르던 날보다는 나아졌다. 가끔은 15층이나 20층까지 오르기도 한다. 운동을 취미로 하는 사람들에게는 우스운 수준이겠지만, 나처럼 순두부를 꿈꾸는 사람에게는 이렇게 시작한 움직임이 삶의 질을 달라지게 만들었다. 작은 움직임이 시작되자 미세하지만 하루의 에너지도 보폭을 늘려나가고 있다. 가만히 앉아만 있어도 숨이 차는 날들. 매일 어디론가 벅차게 달려 나가는 나의 마음을 받아내기에 몸의 균형이 맞지 않았었나 보다. 그토록 오르길 소망하면서도 정작 나를 기능하게 하는 육신을 작동시키는 일에는 왜 이리 무지했던 걸까. 다행히 나의 불찰을 돌아보기에 날들은 충분하다. 생각해보면 삶도 계단도 내려오기는 참 쉽다. 막상 올라가면 잘 오를 거면서 오르지도 않고 겁부터 먹는다. 요행을 바라는 심정 없이 매일 공백을 메워나가듯, 이 소박한 운동으로 하루아침에 몸짱이 되길 바라지는 않는다. 오르다 보면 뭐라도 되겠지 싶은 심정으로, 오르다 보면 금세 집 앞이다. 문을 열고 맘껏 너부러진다. 내일은 더 높이 올라야지.


*이 글은 수정을 거쳐 월간샘터 2021년 9월호에 실렸다.

https://www.isamtoh.com/monthly/monthly01_view.asp?seqid=3052&year_v=2021&month_v=9&category=824&category_name=[Special%20Theme]%20%BF%EE%B5%BF%BD%C0%B0%FC